‘파잔(Phajaan)’은 동물 쇼에 등장하는 코끼리가 거쳐야 하는 의식이다.
훈련이 쉬운 아기를 잡기 위해, 어미를 먼저 죽인다.
코끼리가 강한 모계사회를 이루기 때문이다.
결박된 코끼리는 쇠갈고리로 찔리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때까지 고통을 견딘다.
그렇게 코끼리는 체념을 배우고, 살아남기 위해 자의식을 버린다.
어린 날의 나는 파잔 코끼리 같았다.
아버지는 엄격함으로 자식의 기를 꺾었다.
버르장머리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그날은 초상집이 됐다.
반항하고 울고, 다락방에 갇히고, 밥을 굶어도 소용없었다.
결국은 제풀에 지쳐 굴복했다.
아버지의 헛기침만 들어도 세포들이 긴장했다.
주변은 가정교육이라 했지만, 내겐 공포였다.
가끔 아버지가 출타하면 동생들과 “독립”을 외쳤지만,
귀가 소리에 다시 바람 앞 풀처럼 엎드렸다.
굴다리 밑에서 떨다 돌아오던 그 시절,
나는 평생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대학 시절, 친구가 조심스레 말했다.
“넌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아. 늘 테두리 안에 머물려고 해.”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꾹 눌러 담고 살았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길들여진 코끼리’가 되었다.
아버지의 파잔 의식은 완벽했다.
낯선 것은 위험하다고 믿었고, 궁금증마저 삼켰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조금이라도 앞서가길 바라는 욕심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수라상처럼 공부거리를 늘어놓았다.
처음엔 고분고분하던 아들이 점점 엇박자를 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면 나무라고, 틀리면 꾸짖고,
쉬고 싶다 하면 윽박질렀다.
잘해도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