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코끼리는 사람을 태우고, 통나무 위에서 균형을 잡고, 하모니카를 불며 묘기를 배운다.
나는 아들에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했다.
인생이라는 쇼 무대에 오르려면 묘기가 필요하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다 아들이 점점 말이 줄었다.
눈빛에 절망이 깃들고, 어깨가 굳어갔다.
사춘기려니, 피곤해서려니 하고 넘겼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대학생이 된 아들이 어느 날, 자퇴서를 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 안달인 학교를 스스로 걷어찼다.
“왜?” 나는 울부짖었다.
“조금만 참으면 취업이 보장되는데 왜?”
하지만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파잔 코끼리는 자기 의지가 없어.
스스로의 능력을 잊고, 도전하는 법을 모른 채 산다.
너도 아버지처럼, 아이를 그렇게 만들고 싶은 거야?”
그 말이 심장을 후벼팠다.
아버지의 파잔, 나의 파잔,
그리고 이제는 아들에게로 이어진 파잔.
나는 고리를 끊지 못했다.
하지만 깨달았다.
이제라도 내리쳐야 할 쇠갈고리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다그침을 멈췄다.
그게 유일한 사죄였다.
아들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세상.
유리창 너머로만 보던 무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그는 관객이 아니라 배우가 되었다.
어쩌면 언젠가, 그 무대 위에서
나와 나란히 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는,
굴복이 아니라 자유의 몸짓으로,
우리 둘 다 같은 무대에서
함께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