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욕심이었나
결국 사람이야! 의심하지마!
과연 구성원들은 조금 더 나은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하기는 하는 걸까?
난 지금도 그들이 그럴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그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
전 팀장은 데이터를 조작하다가 퇴사를 당했는데, 그 일을 아주 앞장서서 헌신하던 부장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은 전 팀장이 날아갈 때도 살아남았는데, 그의 변명이 가관이었다.
'난 팀장이 시키는 대로 했고, 그 외의 일은 알지 못한다. 난 실험도 직접 하지 않았다.'
결국 그 부장은 아무런 제제 없이, 부장이 시키는 대로 실험하던 과장 후배 녀석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위서를 작성했다. 반면 그는 그때 잘 받은 평가와 현 팀장에게 보이는 엄청난 헌신을 바탕으로 소위 지금도 잘 나간다.
또 다른 부장 하나는, 전 팀장이랑 이상한 과제 하나를 뚝딱뚝딱하더니 평가를 잘 받기 시작했다.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연구였는데 결국 그 과제는 없어졌음에도, 그 당시 받은 평가를 바탕으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중간관리자 하나는 인성도 실력도 바닥이다. 경험도 부족하다. 하지만 시대를 잘 타고난 덕에, 그 일 아니면 시킬 일이 없단다. 그래서 중간관리자다.
이런 조직이 잘 굴러갈 리 만무하다. 오만과 편견이 가득하고, 후배들에게는 무시와 경멸이 뒤따른다. 다행히 난 그들과 큰 연차 차이가 나지 않고, 한 술자리에서
'난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라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 선을 지켜달라.'
라고 선전포고 해놓은 덕에 얽히진 않는다. 하지만 후배들은 다른 이야기다.
이런 환경이기에 후배들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나은 조직을 만들고픈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자기 목소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뒤에 숨어있겠다는 사람이 더 많단 느낌을 받은 것이다.
업무와 연관된 현타는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했는데, 사람에게 오는 이 괴리감은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뒤 정신을 차렸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나 스스로 하고 있었다. 업무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이 업무보다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는데 이 기간 동안 난 업무만 했다. 신입이 둘이나 들어왔지만 아직 이야기도 못했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내 할 일만 하면 됐지란 생각. 퇴사를 늘 마음속에 품고 사는 나에게 어느 순간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난 회사를 그만뒀을 때 사람이 남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대로는 실패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겨우 돌아왔다. 하지만 깨져 나가는 믿음이 다시 단단해 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번째 다시 읽은 <버티는 자에 대하여>의 마지막 책장의 글처럼 마음속에 지키고 싶은 문장 하나를 움켜쥐고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걸까. 회사를 십수 년 다녔지만 아직도 어렵고 힘들다. 벌써 6개월이나 지나버렸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나 스스로에게 실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