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한 시간

마음대로 안 되는 삶 (feat. 배신감)

by 설온우

아내가 아들과 함께 모임이 있어 외출한 주말, 딸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볶음밥을 만들어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커피와 음료수를 한잔 들고 내려가서 딸아이에게 물었다.

"딸~ 오늘 엄마 없는데 하고 싶은 거 없어?"

역시나, 포켓몬과 티니핑이 튀어나온다. 이 두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지만 날이 따뜻해 바닥에 닿자마자 녹는 눈을 보면서, 눈사람을 왜 못 만드는지 한참을 설명하는데, 아내가 뛰쳐나가며 했던 마지막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여보~ 딸 목욕 즘 시켜줘~~"

다른 건 잘 잊어버리면서 왜 이런 건 안 까먹는 건지...... 딸을 어르고 달래서 목욕을 하러 들어갔는데, 또 입욕제가 없다고 난리다. 사실 내가 쓰려고 몇 개를 사뒀는데, 아내가 홀라당 애들한테 쓴 모양이다.

"아빠가 사놓은 건데 엄마가 몰래 너희한테 사용한 거야. 엄마가 잘했어? 잘못했어?"

라는 조금 짓궂은 질문으로 시선을 돌린 뒤 2시간의 목욕 대장정을 마쳤다.


그 후, 간식과 점심을 간단히 먹고 딸이랑 레슬링 한판을 신나게 하고 있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딸이 아내에게 하는 말이,

"아빠가 조금 놀아줬는데, 아주 조금만 재미있었어요~ 엄마랑 밖에 나가요~"

딸...... 아빠 눈에서 순간 살기를 보인 것 같은데 느끼고 하는 말이니??




딸이 저럴 때마다

"아빠는 이제 너랑 안 놀아~"

하며 뾰로통해 있는 척 하지만, 결국 딸의 애교에 무너져 내린다. 아이고~ 이런 줏대 없는 인간아......


삶이란 게 이런 것 같다. 한혜진이란 모델이 어느 방송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몸밖에 없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공감이다. 정말 생각한 대로 되는 건 없다.


50살에 은퇴하고자 하는 계획도 내 마음대로 될 리 없다. 마음속에 숨겨둔 이 무엇도 내 마음대로 될 리 없을 테다. 하지만 그래도 해보겠다고 책을 읽고, 동영상을 보고,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이 이런 걸 내가 어쩌랴. 수능을 망쳤을 땐, 인생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그 덕에 내가 원하는 과를 갔고, 취직이 어렵다고 뉴스에서 난리였지만 하다 보니 대기업에 입사했다. 5년만 다니고 퇴사하겠다고 했지만, 이직까지 해가며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냥 살아진 것 같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함이 있었다. 과외로 등록금을 벌어 복수 전공에 교직자격증까지 따며 열심히 살았고, 대기업에 취업해서는 기숙사에서 새벽에 일어나 수원에서 서울로 영어회화를 하러 다녔다. (평균 퇴근시간이 10시일 때다.) 내 플래너 제일 앞장에는 1주일에 책 한 권 읽기란 동일 문구가 10년이 넘게 쓰여 있고, 지키려 노력한다.


이렇게 살았기에 내 삶이 살아진 걸 테다. 마음대로 된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살아졌다. 그러니까 너무 생각대로 되지 않음에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하는 노력이 내가 생각하던 결과를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그래도 나름 괜찮은 길로 안내한다. 삐쳐있는 나에게 딸이 자주 하는 말처럼.

"아빠도 엄마만큼 너무 좋아요~응응??"



P.S)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못살겠다 진짜."라지만...... 사실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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