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들면 나가야지

존중과 퇴사 사이

by 설온우

그래. 맞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해볼 수 있는 것들은 해보고 떠나도 된다.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 우선일 테고, 정 안된다면, 다른 일을 해본다던지, 어울리는 사람들을 바꿔본다던지 등을 해본 이후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지 모르겠다.


새해가 된 첫날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저 말이다.

"마음에 안 들면 나가야지!"

본인이 그려놓은 그림이 있는데 막상 떡하니 펼쳐 보이진 않으면서, 말 끝마다 마음에 안 들면 나가야지란 말을 꼭 가져다 붙인다. 후배 이야기든 선배 이야기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본인을 존중해 달라는데..... 난 여기서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네"라는 짧은 대답으로 내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본인이 마음에 안 들면 나가란 이야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전혀 깔려 있지 못하다. 게다가 사람을 도구로 보는 시선이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존중이라는 것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돌려 말하지 않고 정확히 '존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의 크기도 상당한 듯하다. (존경을 존중이라 잘못 말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그를 존중하지 않았나 보다. 음..... 사실 맞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존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런 감정 없이 대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배운 스킬이 하나 있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나의 어떠한 감정도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내 감정을 휘둘리지 않는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무튼, 그는 나에게 본인을 존중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는 선전포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존중이란 것은 해달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뒤돌아보면, 존중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을 텐데...... 본인에게 충분히 취해 있는 사람이라, 아마도 그는 그럴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선전포고였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무생물이 말을 한다며 신기해하면 될 일인걸. 그런데 새해 첫날부터 퇴사와 존중이라니...... 올 한 해도 쉽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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