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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자고 했다가 바로 차임.

내가 생각하는 사귐과 그 친구가 생각하는 사귐의 무게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by 박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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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마음에 드는 애가 있어서 사귀자고 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마음 속에 사랑대신 '오로지 남자다움의 대한 강박'으로 가득차 있는데, 이 친구는 아주 드물게, 마음속에 사랑이 많았다. 길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봤는데 너무 귀여워서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온다고 했더니 비슷한 개 사진을 보내달라는 것이 아닌가.

비슷한 개를 찾아서 보여줬더니, '미치도록 귀엽다면서 이런 강쥐라면 하루 종일 껴안고 싶다'라고 말하는 친구였다.


나를 좋아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그냥 기본적으로 마음 안에 사랑이 많은 극소수의 사람. 절대 뺏길 수 없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굴었는데, '안지도 얼마 안 됐는데, 아직은 아니라'라고 그 친구는 당황을 했다. 너랑 나눈 문자의 양과 사진이 이렇게 많은데, 이 상태에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기만 하면 이게 사귀는 게 아니고 뭐냐'라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친구가 생각하는 사귐과 내가 생각하는 사귐에는 분명 차이가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맞다. 그 친구는 세상 속에서 섞여 살고 싶어 하는 사람, 나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자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곤 그에 관한 모든 기록을 지워버리고 또 숨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것 말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겐지의 조언은 명료하다. 소설가라면 소설에 전념할 것, 전념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정리하고 포기할 것. 불안과 고독과 분노와 슬픔을 뚫고 나아간 소설가만이 앞에 펼쳐진 ‘누구도 오르지 못한 산’을,

‘아무도 손대지 않은 광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겐지가 지향하는 자립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위 관계를 정리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다고 해서,

고독과 맞서 싸운다고 해서 마음을 완전히 닫고 사는 것이 아니다. 자립한 소설가의 자세는 자신의 본질을 깊이 천착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마음을 여는 고고한 자세다.

끝없이 안으로 틀어박히는 삶의 방식과는 반대되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다. 그리하여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오로지 ‘작품’으로 쏟아내는 자세다.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겐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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