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음
주사랑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엄마 혹은 아빠가 아기를 넣어둘 수 있도록 만든 바구니다. 서로 얼굴을 보거나 신상을 알지 않아도 되고 그냥 박스에 아기를 넣어 두면 알람이 울려서 박스 담당자가 아기를 데리고 가서 센터에서 직접 돌보거나 아니면 위탁 가정을 찾아서 연결해 준다.
내가 몇 년 전 진오비 모임에 참여하고 있을 때 자주 만나 활동 방향도 논의하기도 해서 안면이 있던 이종락 목사님께서 2009년 12월에 자신이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처음 만들었다. 처음에는 박스를 이용한 산모가 많지 않았는데 방송을 통해 존재가 알려지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요즘은 부쩍 건수가 늘었다고 한다. 2020년까지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누적 아기 수는 1,822명에 이른다고 한다. 현행법상 베이비박스는 영아 유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하지만 따로 처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집단 강간으로 아이를 낳은 미성년자입니다. 부모님이 혹시라도 아실까 봐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제 영양실조 때문인지 아기도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산모가 남긴 편지 중 하나다. 이 편지 한 장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강간으로 임신까지 할 정도로 아직도 범죄의 사각지대가 많은 환경이라는 점. 집단으로 강간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를 정도로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성폭력 상담소나 베이비박스 같은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위기 임신에 대하여 상담하고 보호해 줄 기관이 거의 없다는 점. 기형아를 산전에 진단받지 못할 정도로 미혼 임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가 단 두줄에 담겨 있다.
베이비박스를 이용하는 산모들의 사정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산모들이 놓고 간 편지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사유는 흔히 말하는 사회경제적 이유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상태에서 임신한 경우 거나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아기를 키우기 힘든 경우들이다.
아래 목록은 다양한 집단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인식 정도를 보여주는 수치다.
동성애자 3.48
미혼모 3.18
외국노동자 3.17
장애인 3.09
미혼부 3.07
영세민 2.88
이혼자 2.71
참고로 점수가 높을수록 차별이 자주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1: 전혀 없다, 4: 매우 많다).
차별 인식 정도를 보았을 때 미혼모보다 높은 것은 동성애자뿐일 정도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의식은 매우 높다. 세계적으로도 미혼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낙태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크다.
(통계 출처: 2009 한국 여성정책연구원 ‘미혼모와 그들 자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동성애자와 미혼모에 대한 차별은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유교 문화권에 있었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들에서 많이 생긴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를 해서 차별이 없도록 공감대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지만 미혼모에 대한 것은 미혼모 당사자 외에 아기라는 또 하나의 개체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차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그것이 드러난 사례가 베이비박스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지수도 낮지 않다. 장애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후천적으로 질병이나 사고에 의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본인이 잘못해서 생긴 것도 아니다. 선천적 기형 중에는 탈리도마이드의 사례처럼 원인이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많은 기형의 원인이 불명인 채로 남아 있기 때문에 미리 예방하기도 어렵다.
참고로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에 독일의 제약회사가 만들어 판매한 입덧 치료제다. 이 약은 입덧을 완화시켜 주는 작용이 있어 독일을 포함한 유럽 지역 등 전 세계 48 개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약을 사용한 수년 후부터 포코멜리아 (phocomelia)라는 기형이 갑자기 늘어났다. 포코멜리아는 사지가 제대로 발달이 되지 않아서 팔다리가 생기지 않고 손과 발만 생기거나 지느러미 모양의 팔다리 형태를 보이는 기형이다. 얼마 전 불륜으로 사회 문제가 된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는 일본인이 가진 기형이다.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사람이다. 면밀한 역학 조사를 통해 임신 초기에 임신부가 복용한 탈리도마이드가 포코멜리아의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약을 사용함으로써 약 1만 2000 명 정도가 이런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오래전 내가 건너 건너 아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부가 있었다.
부인이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하였는데 아기가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다. 임신 중에 트리플 마커 검사를 하였으나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원래도 트리플 마커 검사는 예측률 60%로 그리 높은 정확도의 검사는 아니다. 그래서 양수 검사와 같은 확진 검사로 사용되지는 않고 선별 검사라고 해서 정밀 검사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참고 자료 정도로 쓰인다. 지금은 트리플 마커 검사 대신 쿼드 마커 검사나 통합 검사가 쓰이지만 그 점은 마찬가지다. 트리플 마커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다운 증후군 아기를 출산한 것 때문에 부부는 많이 당황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 사실이 아니라 그 부부가 자신들의 아기를 입양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의사 부부로 경제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부부가 입양을 보낸 이유는 그런 장애를 가진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부 두 사람의 공통 의견이었는지 부부 어느 일방의 의견이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키워야 한다면 낳은 부모보다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키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아기가 미혼모의 아기였기 때문이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너무 어려운 가난한 집 아기였기 때문이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전설에는 상상 속의 동물이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가 비목어(比目魚)라는 물고기다. 비슷한 것으로 비익조(比翼鳥)라는 새도 있다. 비목어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항상 한쪽 면 밖에 볼 수 없어서 혼자서는 헤엄을 치면서 살 수 없다고 하며 비익조도 마찬가지로 날개가 하나뿐이라서 혼자서는 날 수 없는 새다.
사실 "비"라는 한자는 반쪽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나란히라는 의미인데 넙치와 같이 눈이 한쪽으로 나란히 있는 물고기를 보고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후대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비목어나 비익조는 서로의 처지와 같은 다른 상대를 만나서 꼭 붙어 다녀야 서로에게 부족했던 나머지 한쪽 눈이나 날개를 대신하게 되어 마치 두 눈과 날개를 가진 것처럼 잘 살아갈 수 있다.
이런 동물을 소재로 류시화 시인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를 썼고 노연화 시인은 "비익조"라는 시를 썼다.
미혼모 (한부모 가족)와 같은 사회적 약자이든 장애인과 같은 육체적 약자이든 혹은 영세민처럼 경제적 약자이든 약자에 대한 차별의 정도가 심하고 심하지 않고의 문제는 그 사회의 시민 의식의 수준과도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사회적이든 경제적이든 약자가 아니라고 해서 강자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약자든 강자든 모두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함께 조화롭게 갈 때 세상은 살만한 아름다운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한부모 가족 (미혼모)과 두부모 가족 간에, 장애가 눈에 보이는 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간에,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과 비싼 옷을 입은 사람 간에 차별이 심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서 살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인간도 완벽해서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도 없다. 기형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미혼모만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미혼모라는 것도 법적으로 혼인 관계에 있지 않아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하는 것뿐 임신부로서 혼인 관계의 임신부와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 모두 비목어거나 비익조다. 눈이 하나면서 팔이 하나인 사람을 비웃는 사람보다 바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