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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Sep 11. 2021

03. 현실의 의사와 슬의생 의사 1

적당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음

요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속편까지 방영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는  산부인과 의사도 나오고 소아외과 의사도 나오고 신경외과, 흉부외과 의사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목들이다. 아마 일부러 그런 과목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처럼 이미 많은 의과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이 아닌 비인기과 의사들을 다루어 주고 있어서다.  슬의생을 포함하여 과거 "뉴하트"라든가 "골든 타임", "하얀 거탑" 또 얼마 전에 방영한 "낭만 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 등 병원이 무대인 드라마들이 몇 편 있었다. 궁금한 의료계의 속사정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나는 의학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대체로 뻔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병원이 무대일 뿐 로맨스 드라마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만 주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내가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처럼 멋지고 능력도 좋고 잘생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서 우울해진다. 나는 낭만 닥터 김사부처럼 대단한 능력도 없고 슬의생의 산부인과 의사 앙석형처럼  인간미가 있지도 않고  없고, 닥터스의 김래원처럼 멋지지도 않다.  다행히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 주인공인 멋진 의사는 모두 드라마 안의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유일하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보다 보면 아무래도 몰입이 되고 드라마에 빨려 들어가서 실제의 세상이고 실존하는 인물처럼 착각하게 된다. 몰입의 정도가 크고 착각의 정도가 심할수록 현실의 나는 그만큼 초라해진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라는 글에서 여우는 높이 달려 있는 포도는 맛이 없는 신포도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정신 승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우에게 있어  포도가 신포도가 아니고 맛있는 포도라면, 그럼에도 자신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포도라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나에게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신포도와 같다. 저런 인물은 현실에서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실제로도 그렇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은  왜 현실의 의사는 드라마 속의 의사처럼 할 수가 없는지 슬의생 2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그냥 가볍게 슬의생 2 드라마의 옥에 티 정도로 생각해도 되겠다. 내가 드라마를 쭉 본 것이 아니고 아내와 직원들에게 들은 산부인과 관련 주제에 대하여 내 의견을 붙인 것이라 정확한 내용이 아닐 수 있으니 그 점은 양해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총 3가지 사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며 이번은 첫 번째 사례로 임신 중에 유방암이 발견된 산모의 사례에 관한 내 의견이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은 부부가 갑자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임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초음파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난 후 부부는 출산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산모가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는 점이다. 유방외과 교수는 임신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 항암 치료는 출산 후로 연기하여야 하고 태아를 포기한다면 우선 선행 항암 치료를 하고 수술 치료를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산모는  아기를 낳고 나서   항암 치료를 받겠다고 하고 남편은  항암 치료를 받고 산모의 건강과 생명을 구하려고 한다.

이때 주인공인 산부인과 의사는  "아기랑 엄마랑 다 건강해야지, 아기만 건강하면 어떡해요? 아기가 엄마 보려고 나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해요? 임신 중이라고 항암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  임신 중에도 항암 하실 수 있고, 하는 분 많으세요."라고 말한다. 드라마는 이어지고 있어 아직 결과는 모른다.


임신 중에 암이 발견되는 사례가 더러 있다. 사례의 경우처럼 유방암도 있고 자궁암도 있고 그 외 모든 종류의 암이 생길 수 있다. 이때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할  경우 태아에 대한 영향 때문에 문제가 간단치 않다. 또한 자궁 경부암처럼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적 치료를 하는 경우도 문제다. 당연히 태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특히 임신 중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유방암의 초기 증상이 멍울이 만져지는 것인데 임신 중에는 유방이 커져서 멍울이 잘 만져지지 않는다. 유방암의 초기 진단 검사인 유방암 X 선 검사를 임신 중에는 받지 않는 것도 유방암의 발견을 어렵게 만든다. 유방암이 진행되어 겨드랑이 임파선이 붓는 경우도 임신 중에 종종 생기는 부유방 팽대 때문에 구분하기 어렵다. 내가 아는 어떤 산부인과 의사도 자신이 진료하던 산모가 임신 말기까지 유방암인 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출산하고 말기 유방암으로 사망한 경우가 있었다.


임신 중의 악성 종양의 치료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산모를 구하고 아기를 포기하는 것, 둘째 산모가 치료를 미루고 아기를 출산하는 것.

내가 경험하거나 들은 사례에서는 첫 번째 선택을 하는 부부들이 많았다.  특히 임신 12주 이내로 낙태 수술에 따르는 위험이 그리 높지 않은 경우에는 산모의 건강을 우선하는 경향이다.  다만 임신 중기 이후에 발견된 악성 종양일 경우 산모들마다 선택이 다르다. 임신 중기인 4개월부터는 3, 4 개월만 버티면 일찍 조산해서라도 아기도 산모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간 동안 악성 종양이 얼마나  진행이 많이 안되고 버텨 주느냐 하는 것이다.

자궁경부암이나 갑상선 암의 경우는 진행이 느린 암이라 3, 4 개월 정도 늦어져도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방암은 진행이 빠른 암이라 3, 4개월은 매우 중요한 기간이다. 따라서 유방암의 경우 치료 없이 미룬다면 산모의 건강을 확보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유방암의 경우 0기나 1기에서 치료할 경우 10년 생존율이 90%를 넘고 거의 완치도 바라볼 수 있지만  주변 장기에 전이가 된 3기는 10년 생존율이 30%, 4기는 0%다. 그래서 다른 암도 그렇지만 특히 유방암도 얼마나 일찍 치료를 시작하는지가 생존율에 크게 영향을 준다.


어떤 종류의 암에 대한 것이든 항암 치료는 임신 주수에 관계없이 태아에게 위험하여 절대 금기다. 물론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다는 전제하에서다. 항암 치료를 할 경우 태아에게 끼치는 위험은 두 가지다. 첫째 기형의 발생이고 둘째 기능의 이상이다. 기형의 발생은 임신 4개월 이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장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드라마 속의 의사도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문제는 뇌 기능, 시각 기능, 청각 기능 등 기능의 이상은  임신 전 기간에 걸쳐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아기의 기형 혹은 기능의 이상을 감수해서 장애아를 낳으면서까지 자신의 치료를 택할 산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아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따라서 위 산모의 경우 현실적으로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아기를 포기하고 유방암 치료를 받거나 유방암 치료를 포기하고 아기를 낳거나.


유방암 치료를 받아 산모의 건강도 확보하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치료 방향을 정해서는 안된다.

현실의 의사는 기적보다는 실제의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언을 해야 한다. 드라마 속의 의사는 기적과 우연을 바라면서 조언해도 문제가 없다. 아무도 죽지 않으며 아무도 소송에 휘말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드라마 작가라는 신이 보살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 속의 의사는 신이 보살펴 주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무신론자인 나에게는) 인간미도 없이 잔인하고 드라마 속의 의사는 인간미가 넘치고 멋있다.


두 번째 사례에 대한 의견은 다음 편에 싣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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