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랑심 Sep 12. 2021

Ep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느 비관주의 의사의 세상 살이

생명체는 나이가 들면 생물학적 기능이 점점 약해지고 결국엔 그 기능이 정지되어 죽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인 수명은 생물종마다 다르고 종 내에서도 개체마다 다르다. 그래서 종 내에서 개체 간의 수명의 평균을 낸 것을 평균 수명 혹은 기대 수명이라고 부르며 그 생물종이 최대로 살 수 있는 수명을 최대 수명이라고 한다.


2019.12월 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분자생물학자 벤저민 메인과  연구진은 포유동물들의 특정 부위 DNA를 분석하여 생물의 최대 수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런 연구를 통해 그들이 예측한  인간의 수명은 38년이라고 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적은 수명이다. 그러나 인간과 비슷한 유인원인 침팬지의 수명은 39.7년으로 실제 수명과 비슷하게 맞추었다.

다른 척추동물에서 실제 수명과 연구로 예측한 수명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에 비하여 인간의 수명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의학의 발전 덕분일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로마 제국 시기 이집트에서 출생후 1년 이상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36세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

OECD가 발간한  『보건 통계 2021』을 보면 2019년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은 83.3년으로 OECD 평균인 81.0년보다 2.3년 길었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80.3년, 여자는 86.3년이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의 망둥이 과에 속하는  피그미 망둥이는 평균 수명이 8주다. 반면 북극 심해에 사는 그린란드 상어는 평균 수명이 400년 이상으로 동물 중에는  평균 수명이 가장 길다.  오래 사는 3대 척추동물은 그린란드 상어,  북극 고래,  바다 거북이다. 바다거북의 평균 수명이 150년 정도이니 인간은 그들보다는 짧지만 전체 생물종을 놓고 보았을 때 평균 수명이  결코 적은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7년에 707만 명이었다.  전체 인구 중 65세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13.8%에서 2020년 16.4% 로 증가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라고 하고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노인 인구  비율이 20%로 가장 빠르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의료계에서도 노인 의학이 주목을 받는다. 소아청소년과는 하려는 의사가 점점 없어지고 요양 병원이 늘어나는 만큼 노인 의학을 하겠다는 지원자는 과거보다 부쩍 늘었다.

의료계도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니 당연한 일이다.


나이가 들어 늙었을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활동은 하지 못하면서 반대로 삶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오히려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늘어난 수명 덕분에 과거 같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폐경기 질환이나  치매, 퇴행성 관절 질환 같은 노인성 질환이 늘어났다.

그래서 의료비를 포함하여 노후 대비 자금을 마련해 두었느냐 아니냐가 개인 차원에서 성공한 인생의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도 노인 건강과 복지에 대한 부담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GDP에서 장기요양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9년 0.4%에서 2019년 1.1%로 증가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집에서 간병하기 어려울 때  요양 병원을 이용한다. 그럭저럭 괜찮은 곳은 월 이용 비용이 200만 원이고 강남에 사는 부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는 프리미엄 요양원은 월 이용 비용이 500만 원이라고 들었다.호텔 못지않은 시설에 의료 시설도 잘 되어 있고 의료 인력도 여유 있게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돈이 없으면 늙어서도 처량한 신세가 된다. 벌어 놓은 돈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마저 없다면 참 난감한 처지다.

과거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요즘의 요양원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식히는 의미에서 잠시 딴 이야기 하나

의사가 되면 좋은 것들을 몇 가지 있다. 

첫째 사회 경제적 위치가 중위 이상이다. 둘째 큰 조직에 속하여 일을 할 수도 있고 자영업 (개업)도 가능하다. 셋째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높아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력이 허용하는 한 명퇴없이 일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병원에서   비만 치료 중 하나인 메조테라피라는 치료를 하면서 같은 주사 바늘로 여러 환자들의 피부에 주사를 놓는 탓에 C 형 간염에 수십 명이 감염된 사례가 있었다. 그 의료 사고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글이 하나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내가 갔을 때 그 병원의 원장은 나이가 80도 넘어 손을 벌벌 떨면서도 진료를 하기에 언제고 문제가 터질 줄 알았다.”

손을 벌벌 떨 정도임에도 자신의 직업 활동 (진료)을 할 수 있는 분야는 많지 않다. 물론 의사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막노동에 버금가는 분만 산부인과는 아니고  내과 의사라서 가능한 일이다.


늙은 동물의 존재 의미

여하튼 명퇴를 하지 않고 일을 하든 명퇴를 하고 요양 병원에서 생활하든, 노후 자금을 마련해 두었든 못했든 한 가지 점에서 모든 노인이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다.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현상이다. 요양원 또는 요양 병원도 노인들만의 세계로 고립되는 것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없다.

사자나 고릴라 같은 동물 집단에서는 늙은 개체는 일정 시기가 되면 무리로부터 쫓겨난다고 한다. 다만 코끼리나 고래 정도가 늙은 개체를 보호하고 집단 내에서 함께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은  늙은 개체가 가진 지식이 그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앤 이니스 대그가 지은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이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가모장 사회를 이루는 코끼리나 고래 사회는 늙은 개체를 보호하고 우대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는 나이 든 개체의 경험과 지혜가 그 집단이 살아남는데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또한  늙은 동물은  위험이 닥치면 맨 앞에 나가 무리를 지키고  다른 새끼를 돌보며 할머니 노릇도 한다.

아래는 책 중에 있는 문장이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늙어서 식량을 축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동물이 늙어서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 무언가 진화적 이유가 있음이 틀림없다. 늙은 동물이 집단에 꼭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후손에게 물려줄 훌륭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둘째, 환경과 문화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젊은 구성원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인간 사회는 동물 사회와 다르다. 빠르게 정보화가 되고 있으며 과거의 경험과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정보로 교체된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씨를 뿌려야 하는 시기나 언제 물을 주어야 하는지와 같은 정보는 별로 쓸모가 없다. 설사 필요하다 해도 경험 많은 노인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다. 코끼리 집단에서와 같이  멀리 물을 찾으러 가는 길을 아는 늙은 동물이 가진 지혜가 인간 사회에서는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젊을수록 정보 습득이 유리한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 같은 동양은 장유유서처럼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유교 문화는 이제 고리타분한 과거의 풍습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3세를 돌보는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의 역할도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거의 사라졌다.

결국 요지는 노인이 그 집단의 존립에 특별히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양의 의무로 짐이 될 뿐이다. 세월이 가면 인간 사회에서도 노인의 위치가 사자나 고릴라와 같은 동물 집단과 같아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니 이미 상당 부분 같아졌다고 본다.

며칠 전 뉴스 기사를 보니 경기도 여주에서 10대들이 60대 할머니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이를 거절하자 폭행을 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극소수의 비행 청소년의 사례라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노인에 대한 시각이 변하고 있는 증거의 하나로 보아도 될 것이다.


결국 어떤 사회가 노인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그것을 후대에도 전달하지 못하면 초래될 일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이가 듦으로써 겪게 되는 숱하게 많은 육체적  단점에 더하여 사회적 고립과 따돌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개개인은 스스로를 자신만의 방에 가두거나 아니면 파괴할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며 무엇보다 끔찍한 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 전 세계 최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다. 연령대별 자살률에서는 7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자살 사망자는 1만 3,799명으로,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26.9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자살률은 남자(38.0명)가 여자(15.8명) 보다 높았고 70세 이상 자살률도 과거보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가 박범신의 장편 소설 장편 소설 『은교』에서 노교수인 이적요는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노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보여준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미국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가 했다고 알려진 말인데 그가 어떤 상황 혹은 어떤 책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원전은 아무리 찾아도 찾지를 못했다. 어디서 했든 간에 그의 말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같이 노인 줄에 접어들고 있는 이들이 아닌  청년들에게 그 말이 얼마나 호소력 있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우울감에 빠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며 이런 점이 개선되리라는 희망도 사실 별로 없다.


고목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저 정신 승리를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글을 찾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은 정신 승리는 고목이 주었다.

나무의 줄기는 바깥쪽부터 표피, 피층, 관다발, 속의 4 부분으로 구성이 된다.  바깥쪽에 있는 표피와  피층은  외부의 충격에서 줄기를 보호하는 작용을 하고 체관과 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관다발은 수분과 영양 성분의 이동 통로 역할을 맡는 살아 있는 세포들이다.  이 세포들의 수명은  2개월 정도로 이 기간이 지나면 세포들은 죽어서 내부의 속으로 밀려나고 새로이 생긴  세포는 외부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서 내부의 속은 안으로 점점 밀려가서 단단해지지만 영양 성분의 이동 기능은 맡지 않는다. 살아 있는 세포의 역할이 없으며  영양분의 이동 기능도 담당하지 않으니  나무의 속은 나무에서 별로 필요가 없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단단한 속이 있기 때문에 나무가 커져도 쓰러지지 않고 곧게 설 수 있다. 사람에게 있어 뼈와 같은 존재다. 만일 버팀목의 역할을 하는 속이 없다면 대부분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부러지고 말 것이다.  커다란 나무로 자랄 수 없다. 한 인간의 시작이 무엇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든 태아에서 시작하였듯이 이 사회도 노인을 어떤 존재로 취급하든 그런 단단한 존재가 있어서 버텨온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Ep3. 우리를 속박하는 삶의 한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