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관주의 의사의 세상 살이
저녁 메뉴는 감자탕
아내는 등산을 좋아한다. 며칠 전에는 청계산에 갔고 그제는 지리산에 이박 삼일로 갔다.
어느 날 휴일 오후에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북한산 밤골 쪽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침 저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내는 북한산에서 멀지 않은 만수면옥이라는 집에서 불고기를 먹고 싶어 했다. 티맵으로 확인해보니 내가 있는 병원에서 자동차로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 집이었다. 전철도 없는 장소였다. 나는 병원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음 편히 식사를 할 만큼 큰 배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혼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365일 24시간 출산 산모를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30분 이내의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50분 거리 정도의 부모님 댁도 자주 가지 못하고 두 달에 한번 정도 간다. 1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처갓집은 일 년에 한 번도 가기 어렵다.
모처럼 아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아내는 중간쯤 장소인 홍제동의 어느 집을 선택했다. 감자탕 집이다. 아내가 곱창과 더불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물론 나는 감자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감자탕으로 유명한 응암동 근처에 개업했을 때도 거의 간 적이 없다.
어느 의사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휴일 저녁 메뉴를 결정하는 과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길어서 나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잠에 들기 전 뒤척이는 장면'을 묘사하는 페이지만 30여 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 장황한 전개 때문에 어느 편집자로부터는 출판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물론 그 30 페이지는 4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그 책의 1%도 차지하지 않는 아주 적은 일부분이기는 하다. 책을 읽어 보지 않아 프루스트가 뒤척이는 장면에 30 페이지나 쓴 이유는 모르겠다. 단순히 책의 분량을 늘이기 위하여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를 속박하는 삶의 한계들
나와 아내가 먹을 저녁 메뉴의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 것은 당연히 두 사람의 음식 선호도다. 그러나 그것 말고 나에게 영향을 끼친 또 한 가지는 음식점이 위치한 거리다. 강남 삼성동의 곱창집이 아무리 맛이 있어도 나는 가지 못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지만 마이 아트 뮤지엄의 전시 초대권을 받고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한계를 안고 산다. 한계는 여러 가지로 생기며 사람마다 다르다.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나 체력이 안되어서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살면서 생기는 한계는 이런 경제적 한계나 체력적 한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 장황하게 이야기한 감자탕처럼 시간 혹은 거리에 따르는 한계도 있다. 이것을 나는 시공간적 한계라고 이름을 붙여 보겠다.
먼 외국으로의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하면서 하루나 이틀만 시간을 내는 사람은 없다. 부산까지 10분 만에 갈 수 없는 것도 시공간적 한계 중 하나다. 그런 한계는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니 억울할 것은 없다. 제주도처럼 누구는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가는데 나는 걷거나 배를 타고 수십일에 걸쳐서 가는 수밖에 없다면 조금은 억울할 것도 같다.
경제적, 시공간적 한계와 더불어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계가 하나 더 있다. 어쩌면 사실 가장 크게 삶의 모습을 규정짓는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마음의 한계다.
어릴 때부터 굵은 밧줄에 묶여 있던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혼자 힘으로 밧줄을 끊을 수 있을 만큼 자라서도 밧줄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힘이 없는 어릴 때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밧줄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생긴 선입견 때문이라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부른다.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말로 노예근성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말하는 기준에 따르자면 그것이 마음의 한계다.
오늘 먹은 감자탕도 사실 엄밀하게는 시공간의 한계라기보다 내 마음의 한계에서 초래된 메뉴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30분 거리나 1시간 거리나 50보 100보다. 병원에 와서 1시간 안에 출산되는 급속 분만 산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일 년이나 이년에 한번 생길까 말까 하는 정도다. 그리고 그런 경우 정 안되면 병원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빨리 전원 하라고 지시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월 분만이 10여 명 남짓한 소규모 병원에서 급속 분만을 걱정해서 갈 곳을 못 가고, 할 일을 못 한다는 것은 나 자신만 인정하지 않는 변명일 것이다.
한계의 대물림
우리 아이들은 생선을 못 먹는다. 내가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다 보니 집에서 아내가 생선 요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주 먹지 않다 보니 아이들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부모가 가진 한계가 자녀에게도 대물림되는 것 아닌가 싶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흙수저 이야기도 같은 결국은 같은 이야기이다. 식성의 경우에는 남자는 군대 갔다 옴으로써 변하기도 하는데 생선을 못 먹던 아들은 군대 갔다 온 후에는 생선은 물론 회도 먹게 바뀌었다. 여자의 경우는 군대는 가지 않는 대신 임신 출산 기간을 거치면서 입맛이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평소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하던 사람이 임신 초기에 신 음식을 찾는 것도 드문 사례가 아니다. 아이들 입맛에 맞추다 보니 엄마의 입맛이 변했다는 사례도 흔하게 듣는다.
한계는 한번 설정되면 넘어서기가 아주 어렵다. 최면술사가 최면을 통해 지시한 속박을 피험자가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남자가 군대를 가는 일이나 여자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것은 일생에 한번 혹은 많아야 두세 번뿐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한계도 겨우 입맛이거나 생활 습관 정도에 불과하다. 마음의 한계는 정신과에서는 강박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에서 잭 니컬슨처럼 어떤 사람은 도로에 그어진 금을 밟으면 마음이 굉장히 불안해진다. 물론 그 영화도 나는 보지 못했다. 또는 물건이 비뚤어져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반드시 가지런히 각을 맞추어서 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다. 나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병적인 정도는 아니다.
한계의 극복 그리고 의미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계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형성되고 난 후에 넘어서려고 노력하기보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경제적 궁핍 등 타고난 한계야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한계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담배를 피울 때 주머니에 담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일도 손에 안 잡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담배 대신 휴대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휴대폰이 없으면 병원에서 오는 연락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휴대폰 없이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배터리 충전량이 적어도 나가지 않는다.
한계로 둘러 쌓여 있는 삶은 편한 삶이 아니다. 그러나 시공간적 한계든 휴대폰이라는 이름의 한계든 그것은 내가 병원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먹고살게 해 주는 것들에서 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에게 한계는 빛이자 어둠이다. 빛이 강하지 않으면 어둠도 짙지 않다.
한계 중에 가장 최악인 것은 신분의 한계다.
신분의 한계까지 있었던 조선 시대에 태어나 살아야 했다면 끔찍했을 것 같다. 양반의 삶도 마냥 편하지는 않겠지만 만일 노비로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날 먹은 감자탕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노비의 풀 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왕의 만찬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