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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Sep 11. 2021

05. 동네 산부인과 의원의 수입과 지출

적당항 제목이 생각나지 않음

대학병원에서 인턴 수련할 때 만난 외과의 어떤 교수님은 RBC 잡는 교수라는 별명이 있었다. RBC는 혈액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의 하나로 적혈구를 말한다.  그러니까 그 별명은 수술 후 출혈이 되는 혈관의 지혈을 적혈구까지 잡아낼 정도로 철저히 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것이다. 그 교수님의 전공 분야는 갑상선 외과였다. 갑상선 절제 수술은 외과 영역의 다른 수술 즉 췌장이나 십이지장 종양 제거 수술 등에 비하여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수술은 아니다. 갑상선은 목 중앙부의  피부 바로 밑에 있기 때문에 절개 과정도 간단하고 제거 수술에 걸리는 시간도 적다. 그럼에도 적혈구까지 잡아가면서 지혈을 하는 이유는 수술 후 간혹 생기는 혈종 때문이다. 혈종이란 지혈이 충분히 안되어 수술이 끝난 후 수술 부위에 피 덩어리가 고이는 현상이다. 다른 부위의 혈종은 아주 크거나 계속해서 커지는 혈종만 아니라면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상선 절제 수술 후 혈종이 생기면 비록 크기가 크지 않더라도 바로 뒤에 있는 기관지가 압박되어 호흡 곤란이 초래될 수 있다. 호흡 곤란은 얼마나 빨리 대응 조치를 취했으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지체되면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응급 상황이다. 그 교수님이 수술했던 환자가 그런 혈종에 의한 기도 압박으로 사망했다고 들었다. 그 후 교수님은 지혈에 대하여 강박적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 교수님은 워낙 지혈을 철저하게 하는 탓에 제거 수술에 걸리는 시간보다 지혈에 걸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런 이유로 교수님의 수술을 보조하는 전공의들이나 인턴이 답답한 마음에 그런 별명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철저함은 의사로서 당연한 일이고 제자로서 배워야 할 점이었다.


다행히 나는 산부인과 의사라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지혈하는 수고는 겪지 않아도 된다. 산부인과 의사는 워낙 피를 자주 그리고 많이 보다 보니 피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무덤덤해지는 경향이 있다. 똥이 더럽다고 느껴지면 외과 의사를 그만둘 때가 된 것이고 피가 무서워지면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둘 때가 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외과 의사는 주로 장을 다루니 똥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고 산부인과 의사는 정상적인 출산 과정에서도 출혈이 많이 나는 상황을 자주 보다 보니 생긴  말이다. 그러나 산부인과 분야에서도 정상적인 수준을 넘는 정도의 많은 양의 출혈이 동반되는 위험한 상황들도 적지는 않다. 출산과 관련하여 모성 사망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양수나 태지에 의한 폐색전증이고 다른 하나는 대량 출혈이다. 양수 색전증은 예측이 불가능한 병이고 사망률도 높지만 다행히 상당히 드물다. 반면 자궁 무력증에 의한 산후 출혈,   전치태반에 의한 분만 중 출혈, 태반 조기 박리증으로 인한 출혈은 대량 출혈인 수가 많은데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간혹 생긴다.


전공의 시절 어느 날 산과 교수님께서 분만실에서 산모를 실은 이동 침대 옆에서 산모의 질 쪽으로 손을 넣은 채 허겁지겁 달려 나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옆에 있는 4년 차 전공의 선생님은 침대를 밀면서 함께 달려오는 상황이라 급박한 상황으로 보였다.

"심박. 빨리 홀 블러드 5팩 신청해. 마취과 연락해."

여기서 심박이라는 단어는 나를 뜻하는 말이다.


전에 의료 분쟁이 잦은 어떤 산부인과 선생님은 전치태반인 산모를 자신의 병원에서 수술한다고 들었다. 전치태반이란 태반이 자궁의 입구를 가리고 있어서 질을 통한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수술을 해서 출산하면 되지만 자궁 하부는 지혈이 잘 안되어 대체로 출혈이 많다. 따라서 혈액은행이 준비되어 있는 대학병원에서 출산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선생님은 자신의 병원에 온 사람은 대학병원으로 전원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죽든 살든 본인의 병원에서 해결한다고 말했다고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해 들은 정보라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만일 그 선생님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한 분의 산모라도 자신이 출산을 도와주고 싶은 숭고한 사명 의식일까?


우리 병원의  진료 수입 내역을 간단히  알려드린다.

출산을 위해 입원한 병원마다 상급 병실 차액이 다르고 개인병원이냐 대학병원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 자연 분만하고 2박 3일 입원 후 퇴원하면 본인이 지불하는 비용은 45만 원가량이고 보험 공단으로부터 받는 비용이 150만 원 정도라서  총수입은 195만 원 정도다.

마찬가지로 제왕절개도 상황마다 다르지만 우리 병원에서  4박 5일 입원 후 퇴원하면 본인이 지불하는 비용은 90만 원이고 보험 공단으로부터 받는 비용은 190만 원 정도로  총수입은 280만 원 정도이다. 자연분만에 비하여 제왕절개 시 1.5배 정도 수입이 더 늘어난다. 과거에는 두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제왕절개를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이 반영되어 자연분만 시 수가가 올라가서 차이가 줄어들었다.  물론 차이가 줄었다 해도 자연분만을 했을 경우 의료 분쟁 시 패소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자연분만에 대한 유인 동기로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한 달에 자연분만 산모가 10명이고 제왕절개 산모가 1명, 총 11명이 출산했을 경우 총 입원 수입은 2230만 원이다.

자연 분만한 산모가 13명이고  제왕 절개한 산모가 2명으로  총 15명이 출산했을  경우 총 입원 수입은 3095 만원이다.

여기서 아기 난청 검사비등 각종 비급여 검사비 등이 있어 월 500만 원 정도가 추가된다.

외래 진료 수입은 들쭉날쭉 한데 평균 본인 부담액은 1500만 원 안팎이고 보험 공단에 청구하는 금액이 1200만 원 정도다.

분만 11명일 경우 입원 수입과 외래 수입을 더한 총수입은 4930만 원, 분만 15명일 경우 총수입은 5795만 원이다. 우리 병원의 월 분만 산모는 10명에서 15명 사이다.

2021년 출산 산모는 1월 15명, 2월 8명, 3월 13명, 4월 16명, 5월 9명, 6월 8명, 7월 13명, 8월 10명이다.


다음은 우리 병원의 지출 내역이다.

나를 빼고 우리 병원의 전체 직원은 9명이며 월급 총액은 2300만 원이다. 월 임대료는  3, 4층 합해서 1500만 원이고 검사 수탁료는 500만 원이다. 그 외 관리비 100만 원, 식재료비 100만 원, 의료분쟁을 대비한 배상 보험료나 기타 여러 잡비들이 있어 지출 총비용은 5000만 원 언저리다. 물론 빚에 대한 금융 이자는 제외한 비용이다.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든 외래만 진료하는 산부인과든 혹은 다른 진료과목이든 다 마찬가지로 비용을 줄이기는 사실 어렵다. 그 조절 권한이 정부 제도나 건물주 등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입을 올리는 것은 의사 자신에게 달려 있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쉬우며 그 방법은 2가지다.  환자를 많이 보거나  한 명의 환자가 더 많이 지불하고 가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환자를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산부인과의 경우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자궁암 검사와 같이 과거 비급여 진료 항목도 지금은 공단 검진으로 흡수되어 검진 센터나 내과에서 받는 분들도 많다.

결국 위의 산부인과 선생님처럼 전치태반 산모도 전원 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병원에서 수술하거나 아니면 소위 말하는 과잉 진료라는 것을 해서 질염 환자가 수십만 원의 검진 비용을 내고 가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교과서적인 진료를 해도 운영이 되는 병원이라면 그런 유혹에 그리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은 분만 산부인과가 많지 않아서 지방에는 아예 1곳의 분만 병원도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1시간 이상 멀리 원정 출산을 가야 한다고 들었다. 지방에 사는 산모는 대도시로 원정 출산을 가고 대도시에 사는 부자나 권력자의 부인이나 딸은 외국으로 원정 출산을 간다.

그러므로 그 많던 분만 산부인과는 다 어디로 갔을까? 물을 필요는 없다.

동네 산부인과 병원은 망해서 문을 닫았고 산부인과 의사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진료하는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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