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관주의 의사의 세상살이
가끔 영등포에 있는 타임 스퀘어에 놀러 간다. 내가 좋아하는 전자 제품이 있는 엘렉트로마트가 있기 때문이다. 엘렉트로마트 가는 길에는 신세계 백화점을 지나치는 경로도 있어 간혹 그 길로 가다 보면 명품관들을 보게 된다. 시계 명품관이나 가방 명품관 등이다. 명품관에는 인원 제한이 있어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옆에 있는 일반 매장은 인원 제한도 없지만 오히려 사람이 많지 않다.
명품관을 지나칠 때마다 거기 적혀 있는 비싼 가격에 놀라고 그들의 차림새를 보면서 부러움으로 의기소침해진다. 과연 그런 명품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들은 행복할까 궁금증도 든다.
행복의 조건
언젠가 프랑스에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설문 조사를 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내놓은 짧은 대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행복이란 농촌에 사는 교사가 음악을 들을 때”라고 하는 답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그것이 무슨 행복이냐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선 농촌이라고 하는 것은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다. 사람이 사는 장소는 생각 이상으로 삶의 질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따라서 환경적 안녕이 행복한 삶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어느 사회에서나 중간 이상은 위치를 차지한다. 사회적인 명성에서나 경제적인 수준에서나 그렇다. 직업이 안정되어 경제적으로 불안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행복의 두 번째 조건이다. 경제적 안녕이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상태라는 의미로 시간적, 정신적 안녕을 뜻한다. 물론 꼭 음악일 필요는 없으며 다른 종류의 여가 생활이어도 무방하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행복을 위한 조건에서 하나가 빠졌다. 마음에 맞는 친구나 혹은 배우자가 있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적 안녕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요즘은 일인 가구가 많아졌고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혼자서 밥을 먹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꼭 불행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런 점을 보면 사회적 안녕이 필수적인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닐 듯도 하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여하튼 행복은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매우 어려운 어떤 것이라는 막연한 내 생각에 그 대답은 다소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과연 나는 행복한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행복이 나와는 거리가 먼 닿을 수 없는 저쪽의 것으로 느껴진다.
나는 농촌이 아니라 환경 공해와 많은 사람으로 하여 스트레스가 심한 대도시에 산다. 교사와 비슷한 의사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빚을 가지고 있다. 그달 그달 적자를 보지 않으면서 먹고사는 것도 허덕일 정도여서 경제적 안녕이 없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로 살면서 정신적 여유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음악은 원래도 잘 모르지만 학창 시절 좋아했던 미술도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친구도 거의 없고 아내와도 떨어져서 산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언젠가 나도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대로 시 외곽의 전원 마을에서 조그만 북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으로 게으르게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환경적, 경제적, 정신적 안녕을 바탕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가능성이 희박하고 아마 앞으로도 나는 영원히 행복과는 담쌓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
그러나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비단 환경적, 경제적, 정신적 안녕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행복에 대하여 내가 가진 철학 혹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행복은 추구의 대상일 뿐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삶에 대하여는 낙천적 시각이 아니라 비관주의 쪽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누구도 행복을 소유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무지개를 잡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한바탕 비가 내린 후 저 멀리 하늘에 선명하게 뜬 7가지 색의 무지개는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개를 뜬 곳을 찾아가더라도 어디에서도 무지개를 만지거나 가질 수 없다. 무지개는 비 온 후의 물방울과 햇빛이 만나면서 빛이 산란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행복이 구체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추상적 대상이라서 못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추상적 대상이라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은 많다. 잠도 그렇고 고통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구체적 물건이 아니지만 분명히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많다. 행복감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얻는 방법은 의도치 않고 우연히 얻는 것을 제외하면 그전에 반드시 의도가 있어야 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행복에의 추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혹시 행복이란 것이 원래부터 없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때가 참 행복했었지 하는 말이거나 아니면 난 나중에 행복하게 살 거야 하는 등 과거나 미래를 시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라고 현재 시점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분명히 가졌다고 생각한 것은 포만감이거나 안정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행복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그저 추구의 대상일 뿐인지 하는 것은 의문의 영역으로 두고자 한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과연 인간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왜 행복해야 하는가? 꼭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행복하지 않으면 잘못된 삶인가?
내가 정신 승리를 위해 얻은 결론은 모든 사람이 꼭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지개를 보는 것과 같이 우연히 어떤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서 얻어지면 좋은 것이지만 무지개를 만들고자 물을 뿌리고 빛을 비추어 만들었다 한들 그것은 무지개가 주는 아련한 미소를 주지 않는다. 무지개는 바라보는 것일 뿐 손에 넣지 못하든 행복 또한 추구할 수 있으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모두 무지개를 보려고 달려갈 필요는 없다.
성공의 정의
행복과 비슷한 것으로 성공이 있다. 성공은 행복보다는 좀 더 구체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행복이 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 있는 어떤 것이라면 성공은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잡을 수도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아래는 소위 성공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말한 성공의 기준이다.
짐 콜린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생의 궁극적인 성공이란 당신의 배우자가 해가 갈수록 당신을 더욱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
스펜스 존슨(선물의 저자)---성공이란 그게 무엇이든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라나 터너 (미국의 여배우)---성공한 남자는 아내가 쓸 수 있는 이상으로 돈을 버는 남자이고 성공한 여자는 그런 남자를 찾아낸 여자.
공병호(10년 후 한국의 저자, 칼럼니스트)---자유롭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면서 사는 상태.
윌리엄 래스베리(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 자존의식, 자기만족을 얻는 것.
랄프 왈도 에머슨(미국 목사)---이전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가꾼 사람.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영국 시인)---바람에 흔들리는 이삭의 물결처럼 굽혔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목적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
헨리 포드(포드 자동차 설립자)---세상이 자신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게 되돌려 주는 것.
로맹 롤랑(프랑스 소설가)---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
성공의 정의는 좀 더 분명할 줄 알았더니 역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떤 질병들은 경과 관찰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약을 이용한 약물 치료도 있고 물리치료도 있고 특수 장치를 삽입하거나 일부를 절개하는 수술도 있고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 치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치료는 그저 단 하나의 약물 치료만이 있는 질병이 있다. 흔히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으면 완치하기가 쉽고 치료 방법이 많지 않으면 치료하기 어려운 병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난치병들이 치료 방법이 많다. 왜냐하면 어떤 한 가지 방법이 아주 효과가 있었다면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거의 없을 텐데 효과가 적거나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다른 여러 방법이 개벌된 것인 수가 많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컴퓨터 프로그램 중에 킬러 소프트웨어라는 것과 같다. 어느 한 가지 프로그램이 월등이 성능이 뛰어나면 그 영역에는 그 프로그램이 시장을 거의 다 차지해서 다른 프로그램들은 설자리가 없게 된다. 그런 경우의 프로그램을 킬러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꼭 성공해야 하는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그것이다. 행복을 얻는 조건을 분명하게 말할 수 없거나 또는 성공의 기준을 정의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그것이 얻기 힘든 것이라는 의미와도 같다는 뜻이다.
행복도 그렇지만 성공도 대부분 정의가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해서 과연 나는 성공한 사람인가 실패한 사람인가 분간이 가지를 않는다.
다만 라나 터너의 성공 기준은 너무도 명확해서 바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돈이라는 구체적 기준이 있을 뿐 아니라 돈도 사람마다 어느 수준이 많은 것인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애매하기 마련인데 터너는 확실히 기준을 정해 준다. 아내가 쓸 있는 이상. 그리고 그런 남자를 둔 아내.
물론 요즘의 남녀평등 사상에 따르면 너무 남성 중심적이기는 하다. 여하튼 터너의 기준에 의하면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이 꼭 성공이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성공하지 못한 삶도 그리 괴로운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