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업 역사]
산부인과 전문의 수련 후 3년간의 군 대체 복무를 마치고 나면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개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에 취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개업과 봉직에 대한 고민은 진료 과목을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고민스럽다.
개업은 본인의 재량대로 병원을 운영하고 발생하는 수익을 모두 자신이 가져갈 수 있지만 대신 직원 관리, 세무 관리, 의료 분쟁에 대한 대비 등 많은 것들을 원장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훨씬 부담이 더 된다. 반면 봉직을 하게 되면 병원의 운영과 관련하여 일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대신 진료로 발생하는 수익과 관계없이 일정 액수의 급여만을 받게 된다. 물론 병원의 운영과 관련하여 장비의 선택이나 직원의 채용 등에도 관여할 수 없다. 산부인과의 경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개원할 무렵 분만을 하는 봉직의의 평균 월급은 천만 원 정도였고 개원을 할 경우 그 두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봉직의 월급은 병원의 규모와 분만을 위한 당직 근무를 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리고 환자에게 인기 있는 여자 의사인지 아니면 인기가 없는 남자 의사인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물론 그 차이는 아주 크지는 않아서 적으면 700만 원에서 많으면 1500만 원 정도였다. 개원 의사의 경우 한 달에 수천만 원 이상 버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개인 파산을 선고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있어 그 차이가 심했다.
개원에 따르는 이런 부담 때문에 수련 동기들은 아산 병원 등 대부분 대형 병원에 취직한 경우가 많았다. 대학 병원 혹은 대형 병원에 취직하지 못하는 경우 중소 규모 병원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서울대 병원 출신들은 그런 점에서는 유리하여 소규모 병원에 취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물론 개업하는 동기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 경우도 혼자 개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분만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경우 언제 출산 산모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병원에 상주하거나 콜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혼자서 개업한다는 것은 24시간 365일 병원을 지킨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개인 사생활에서의 자유는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업하는 경우 적게는 2명 많게는 10명 가까이서 함께 동업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4년간의 산부인과 전문의 수련 경험과 군 대체 복무로 근무한 지방 의료원에서의 3년 경험이 있어 개업을 하는 선택도 가능했지만 경험을 더 쌓고 싶기도 하고 개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라서 취직을 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