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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Jun 15. 2024

1-2. 자궁 파열

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때를 아는 것은 지혜이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용기다.”


몇 년 전 첫째를 우리 병원에서 낳은 산모가  둘째 출산을 위해 입원했다. 출산 진행 초기 과정에 별 문제는 없었고 출산 과정의 가장 고비인 힘주기 단계에 도달했다. 진통의 간격은 1, 2 분 전후로 비교적 자주 강력하게 왔다. 그러나 산모의 나이가 다소 노산인 탓이었는지 태아 머리가 속골반에 진입하지 않고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다. 첫째 출산이라면 좀 더 기다리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고려함직한 상황이었지만 둘째 출산이었기 때문에 일단 힘주기를 시작했다. 아기를 자궁 밖으로 밀어내려면  자궁 수축력과 복부 내강의 압력을 올려 자궁을 압박하는 힘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궁의 근육층은 불수의 근육이라  자신의 의지로 수축을 오게 하거나 오지 않게 할 수 없다. 촉진제라고 부르는 자궁 수축제의 도움으로 수축을 유도할 수는 있다. 반면 복부 근육은 수의 근육이라 마음먹은 대로 수축을 시킬 수 있다. 숨을 참은 채로 복부에 힘을 주어 복부 내강의 압력을 높이고 이 힘을 자궁에 전달하여 출산을 마무리한다. 변비가 심할 때 아랫배에 힘을 주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밀어내야 하는 것이 변이 아니라 태아인 것만이 다르다.  힘을 줄 때 대변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그것이 정상 과정이다. 변이 마려운 느낌이 안 든다면 태아가 제대로 내려온 것이 아니다. 일반 외과에서 시행하는 장 수술 후 방귀가 나왔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장 수술 후 제일 걱정하는 것이 장운동이 회복되지 않고 장폐색이 생기는 일인데 방귀가 나왔다는 것은 장이 제대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외과 의사들이 방귀를 반가워하는 것처럼 분만 의사는 변 마려운 느낌을 반가워한다. 


계속 힘 주기를 하다가 3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 즈음 산모가 더 이상 힘을 주지 않았다. 힘 주기가 한 시간 넘어가면 탈진이 되어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아직 그 정도 시간이 경과하지 않았음에도 힘을 주지 않아 물어보니 산모는 갑자기 주기적 통증을 못 느끼겠다고 대답을 했다. 진통이 없으면 힘주기가 소용없다. 자궁 수축력이 동반되지 않은 채 복부 내강의 압력만 올려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때 태아 심음을 들어 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불과 10여 분 전까지 정상으로 들렸던  태아 심음이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진통 중에 태아 심음은 태아가 움직이거나 하여 잘 안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부위를 바꾸어 가면서 들어 보아도 심음이 들리지 않았다. 순간 자궁 내 태아 사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촉진제를 써서 진통이 오도록 하면서 자연분만을 계속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제왕절개를 하여 빨리 출산을 시킬 것인가?  물론 이런 경우에는 수술로 아기를 출산시키는 행위를  제왕절개라고 하지는 않는다. 살아 있는 아기의 경우 제왕절개라고 하고 사망한 태아의 경우  hysterostomy 즉  자궁 절개라고 부른다.  여하튼  빨리 결정을 해야 했다.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것도 선택지의 하나였다.   빨리 수술한다고 해도 자궁 내 태아 사망이라면 아기를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궁 내 태아 사망이 발생하면 태반 조기 박리증이 동반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범발성 응고 장애라고 해서 출혈 부위의 지혈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저혈압성 쇼크가 오고 소위 말하는 다발성 장기 손상이라는 극히 위험한 상황이 닥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는 잠시의 순간이었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태아가 사망했다 해도 긴 시간 경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분만을 시도하여 출산할 여지는 있었다. 문제는 산모의 진통이 거의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태아의 심음이 들리지 않는 것과 함께 다른 소견이 함께 관찰되었다.  자궁의 체부가 단단하게 만져지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이지만 자궁 파열 가능성이 높다.

전원을 해야 할지 우리 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보통 자궁이 파열되면 태아는 대부분 사망하며 산모도 과다 출혈로 위험해진다. 빨리 진단을 했으니 수술을 조속히 진행하여 파열 부위를 봉합하면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예상보다 파열 범위가 넓고 출혈도 많다면 즉각적인 수혈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 의원에서 즉시 수혈은 어렵다.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중앙 혈액원에서 혈액을 가지고 와서 맞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1시간에서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너무 긴 시간이다.

잠시 고민 후 전원을 결정했다.

아직 산모의  바이탈 즉 혈압과 맥박은 정상이었다. 자궁 파열이라고 해도 아직은 출혈량이 많지 않다는 신호다.  바이탈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이미 환자의 몸이 상황을 감당하기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이 순간으로부터 쇼크가 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급히 세브란스 병원 산부인과로 연락을 취하고 응급 이송을 위해 119에도 연락을 했다.


“자궁 파열에 대해”

자궁 파열은 자궁의 벽이나 근육이 파열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보통  출산 시 잘 생기고 그 외 자궁의  수술 후나  혹은 출산 전 임신 중에 자궁에 대한 복부 충격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복통, 출혈, 혈압 하락,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흔하며 임상 증상과 초음파 검사, CT 스캔등의 검사로 진단을 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경우 응급상황으로 간주되며, 즉각적인 의료 조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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