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이 항상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기 아빠를 설득하여 돌려보내고 외래 진료가 마감되어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퇴근했다. 며칠 전 의료 사고가 발생하여 어떤 아기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내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낮에 아기 아빠가 아기를 데리고 와서 한참 실랑이를 하고 간 일은 모르고 있었다. 괴로운 일이고 혼자만 고민하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래전 은평구에 처음 개원했던 병원을 갑자기 폐원한 일이 있다. 우리 병원에서 난산으로 힘들게 자연분만한 산모가 둘째를 임신해서 산전 진찰을 받고 있었다. 그 산모의 동생과 기형아 검사 관련하여 언쟁을 벌였다가 폐원을 결정하고 실행했다. 휴가 간 아내와는 상의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후 통보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부부는 운명 공동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경제에 관하여는 공동체였다. 내 아내는 따로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은 모두 길바닥에 나 앉을 수밖에 없다. 그때의 폐원 결정 이후 중요한 결정이나 사건은 아내에게 미리 말하고 상의하여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즐거운 소식은 결코 아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말했다. 장애를 가진 아기를 죽여주던지 아니면 키우던지 양자택일 하라는 아기 아빠의 요구 사항을 알려주었다. 어쩌다 그렇게 바보 같은 처신을 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냐고 화를 낼 줄 알았던 아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그리고 아내의 대답도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내가 기대한 답은 우리는 두 가지 다 못하니까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대답이었는 데 아내는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어. 내가 키울게. 넷째 아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할 께. 걱정하지 말고 아기 아빠한테 친권 포기 한다는 각서나 받아와. ”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살면서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큰 딸을 낳을 때 가보지도 못하고 혼자 진통하고 출산하도록 한 것은 남편이 산부인과 전공의가 아니었어도 서운한 일일 것이다. 아내가 출산할 그 무렵 내가 인천의 종합병원에 파견 근무 나가 있을 때였고 마침 당직 근무 중이라 아내가 출산하러 갔던 서울의 병원까지 가기는 쉽지 않은 사정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직원들과 병원 근처에서 저녁을 겸한 회식을 하느라 출산하는 아내에게 가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아내의 가슴에 두고두고 빼기 어려운 대못이 되었다. 그리고 그 대못은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폭풍 잔소리와 함께 그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그때 대못을 밖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마음이 미안했다. 아기 아빠는 내게 아기를 키우라고 말했지만 사실 아기를 키운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아내가 키우라는 말과 같다. 외래 진료와 분만으로 거의 하루 종일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내가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3 아이를 키운 아내에게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넷째를 키우도록 한다면 참 면목이 없는 일이다. 그것도 자신이 낳은 아기도 아니고 장애를 가져서 평생 옆에서 돌봐야 하는 남의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음 날인가 아니면 다다음 날 쯤이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시 찾아온 아기 아빠에게 아기를 죽인다는 것은 의사 아니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짓이 아니니 내가 우리 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우겠다고 말했다. 대신 친권 포기 각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아기 아빠는 친권 포기 각서를 써 주지는 않았다. 그저 간혹 한 번씩 찾아와서 아기를 죽여 달라고 했다. 혹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강한 아기로 되돌려 달라고도 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 같은 괴로운 여러 날이 지났다.
출산하고 한 달 쯤인가 지났을 때 아기 아빠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기는 사망했다고 들었다. 그 후 아기 아빠와는 1억 수천만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아마도 아기가 죽지 않고 장애를 입은 채 계속 살아 있었다면 그런 줄다리기는 지루하게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로서는 아기를 죽여야 하지도 않았고 키우지 않아도 되었으니 아기가 죽은 것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한 생명이 스러진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야 하는 현실은 참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출산을 하다 의료 사고로 산모든 아기든 사망하는 일은 가족에게나 담당 의사에게나 엄청 슬픈 일이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의사 입장에서만 본다면 아기가 사망하였을 경우 합의가 다소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점 때문에 내심 바라기도 한다. 사망하지 않은 채 뇌성마비 혹은 중증 장애를 가진 채 평생 살게 되었을 경우 배상액도 크고 배상 과정도 매우 오래 걸린다. 그래서 분만 과정에서 아기가 장애가 남을 것으로 예상될 때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을 하지 말라는 조언이 있을 정도다. 물론 법적 경제적 책임을 조금 덜 지려고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소홀하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법적 다툼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산부인과 의사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도 간다. 세상살이는 참 쉽지가 않다.
나는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두 선택을 피할 수 있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흡입 분만으로 한 아기가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는 없었다. 비록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였고 내 온 힘과 지식을 이용하여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내가 좀 더 충분히 설명하여 다른 길을 가도록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그 아기의 일그러진 머리 모습과 힘없는 아기의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특히 흡입기를 쓸 때는 예외 없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멈칫거리게 된다. 그리고 과연 이 방법이 최선인가에 대하여 한번 더 고민을 한다.
그 일 이후 아내는 나에게 흡입기를 내다 버릴 생각이 아니면 다시는 분만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종종 흡입분만을 시도한다.
난산이 되어 자연분만이 어려워 제왕절개 수술을 심각히 고민해야 하는 경우에 성공만 한다면 흡입분만이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이번 사례처럼 끔찍한 후유증을 남기거나 실패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난산인 경우 제왕절개도 아니고 흡입분만도 아니면서 자연분만만큼 안전하고 좋은 분만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흡입분만을 시도할 때마다 든다. 가장 좋은 것은 임신부들이 난산이 되지 않도록 임신 전의 체중 관리와 임신 중의 체력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나를 위해서라도 모든 임신부들이 열심히 순산 체조를 해 주기를 항상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