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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Sep 17. 2024

3-2. 도대체 사인이 뭐야

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탄생의 순간에 함께 하는 기쁨도 있지만 때로 죽음의 순간에 함께 하는 괴로움도 있다.”



사고가 나고 다음날 산모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진료 기록부와 검사 기록 사본을 요청해서 복사해서 드렸다. 아마도 의료 분쟁을 대비한 것으로 생각한다. 의료 사고와 의료 분쟁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둘은 조금 다른 용어다. 의료 사고는 말 그대로 의료 행위의 과정 중에 원치 않는 나쁜 결과가 일어난 것을 말한다. 의사의 과실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의료 분쟁은 의료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환자 혹은 보호자와 검사나 치료를 담당한 의료진 간에 책임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가 발생하여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의료 사고가 났다고 모두 의료 분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여 의료 사고 시 분쟁의 발생 가능성은 많이 높아진 편이다. 그리고 이번 일처럼 아기나 산모가 생명을 잃거나 되돌릴 수 없는 장애를 입을 경우 분쟁의 가능성이 높다. 

보호자들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산모의 시신을 영안실에 보관한 채 며칠 후 외래로 찾아왔다. 요구는 단순했다. 원래대로 산모를 살려 내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신이 아닌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살려 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결국 얼마간의 실랑이가 오고 간 후  사람의 목숨 값을 대신한 막대한 액수의  배상금으로 요구 조건이 바뀌었다. 그러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요구한 합의금은 너무 컸다. 나는 아직 사인도 모르고 진료 과정에서 특별히 문제 될 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부검을 하여 원인을 찾은 후에 책임질 것이 있으면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서글펐지만 많은 배상금을 지불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의료 배상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배상 한도가 2억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배상은 의사의 과실이 있다고 입증될 경우에만 지불을 받을 수 있다. 합의를 요구하는 가족과 원인 규명이 먼저라고 생각한 나의 의견 사이에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여러 날이 지났다.

불안하기만 한 날들이 지나던 어느 날 병원 밖이 꽹과리 소리로 시끄러웠다. 상황을 알아보러 나간 직원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다. 병원 입구에서 산모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막연히 예상하던 일이 벌어졌다. 

"살인마 원장은 책임지라"는 팻말도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호소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구체적 내용은 알지 못했다. 오래되어서인지 아니면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괴로운 기억이기 때문인지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가족들이  냉정하게 이성을 찾고 사인이 무엇인지 원인을  밝히고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가족들 입장에서는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으로만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조용하고 원만한 해결은 되지 않았다. 며칠 째 계속 꽹과리 소리가 났다. 산모의 죽음 앞에 어느 가족인들 이성적이 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로서는  원인도 모른 채  막대한 합의금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가족들은 나를 검찰에 고발하였다. 형사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민사 소송도 제기하였는데 이는 의료  분쟁 시 보호자들이 밟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가족들의 시위로  병원은 정상적인 진료를 하기 어려웠다. 산전 진찰을 받던 산모는 거의 떨어지고 부인과 외래 진료도 원활하지 못했다. 지옥 같은 괴로운 날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아득했다. 

형사 사건으로 접수가 되어서 사인을 찾기 위해 부검에 들어갔다. 그리고 보름쯤 지났을 때 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왔다. 선행 사인은 양수색전증으로 나왔다. 색전증에 의한 심폐 기능 마비가 최종 사망 원인이었다. 양수색전증이란  분만 진통의 후기나  분만 직후에  양수가 모체의 혈관 내로 들어가 혈관을 막는 현상을 말한다.  호흡 곤란이 흔한 증상이며 심폐 정지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산과 영역에서 과다 출혈과 함께 임신부의 생명을 빼앗는 가장 중요한 질환 중 하나다. 양수색전증은 흔한 병은 아니지만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산과 의사에게는 두려운 질병이다.  그런 어쨌든 양수색전증은 의사의 과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질환이다. 부검 결과와  임신부의 전원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기 때문인지 형사 소송에서  기소 유예 판결을 받았다. 기소 유예라는 것은 혐의 없음이라는 것과는 달라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법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유예한다는 의미다.  어쨌든 형사 소송에서 과실이 있는 것은 아니라 수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형사 소송과 달리 민사 소송에서는 진료 기록 기록 미비나 기타 여러 가지 부족한 점에 대한 책임과 위자료로 1 억 원 정도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조정을 권유받아 상호 합의 하에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원인이 무엇이고 잘못이 누구에게 있건 거의 최초의 산모 사망 사건이 나에게 남긴 것은 많았다.  분만을 돕는 일이 무서워졌다. 내가 열심히 산모와 태아를 살펴보고 최선을 다해 도운다고 해서 이런 의료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답답했다. 결국  이제 더는 다시는 분만을 돕는 진료는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부인과 외래 진료나 산전 진찰만 하는 것이 내가 그나마 의사로 살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진료만으로 병원이 운영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상황을 다시 겪을 수 있는 출산 현장으로부터는 도망치고 싶었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다시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로 병원을 접고 다른 장소로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분만 진료를 중단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분만 진료를 접는 것에는 그 무렵 낙태 근절 운동으로 하여 365일 24시간 병원에 붙어 있기 어려운 사정도 영향을 끼쳤다.



1년쯤 분만을 접고 외래 진료만 했다. 그러나 역시 경영이 만만치 않았다. 여자 원장님과 동업을 한 상태였지만 남자 의사로서 내가 분만을 하지 않으니 수입에 비하여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결국 남자 선생님 한 분을 더 동업자로 받아들여 분만을 다시 하기로 했다. 결국 배운 도둑질이라고 분만 의사의 삶은 내겐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그럭저럭 세월이 흐르면서  출산을 도울 때마다 심하게 들었던 불안과 두려움은 많이 덜해졌다. 다만  그 사고 이후에는  숨이 조금만 갑갑하고 어지럽다는 산모가 있으면  혹시 양수 색전증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들고는 했다.  그리고 그 사고가 남긴 것은 늘어난 빚 만은 아니었다. 그 사고는 나에게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습관 혹은  징크스를  남겼다.  불길한 징후라는 징크스는 어떤  행동 혹은 현상이 나쁜 일과 겹쳐서 일어났을 때 그것을 우연으로 생각하지 않고 강력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을 의미한다. 어떤 운동선수는 중요한 경기가 있기 전날에는 면도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면도를 하면 경기에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경기의 결과와 면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그런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실제로 면도 여부가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런 징크스는 보통 어떤 사건이 여러 번 반복되어 발생할 때 생기지만 너무 강렬한 사건일 때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도 징크스가 될 수 있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 산모의 사망 사고 이후  나는 40세가 넘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일은 가급적 피한다. 40세가 넘는 산모를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왠지 또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불안하다. 그래서 40세가 넘는 산모는 대학병원으로 가서 진찰받고 출산하시도록 권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산모 나이 40세가 징크스다.  물론 다른 징크스와 달리 산모의 나이 40 세 이상인 것과 출산 관련한 악결과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산 관련한 여러 합병증 예를 들면 기형아 출산, 조산, 조기 파수, 난산 등은 모두 노산과 관련이 높다. 

의학적으로 노산은 출산 시 임신부의 나이가 35세가 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므로 노산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라면  35 세 이상 산모는 다 전원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병원의 경영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40세가 넘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드물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이 쌓일수록  이런 굴레가 많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굴레가 많아질수록 운신의 폭이 좁은 세상에 갇히게 된다. 굴레가 많을수록 병원의 경영이 어려워지는 악영향도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듯 의사도 한번 사고를 겪으면 같은 일을 할 때마다 같은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양수 색전증처럼 미리 진단하기도 어렵고 치료도 쉽지 않아 예후가 나쁜 병들은 특히 그렇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점성술이나 미신 혹은 주술이 유행했던 이유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그럴싸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받아들이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유도 모르는 나쁜 일이 언제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답답하고 불안한 일이 없다.  



“부검이란”

사인을 밝히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부검이다. 죽은 사람의 족과 장기를 현미경  수준까지 살펴보는 것이 부검이다. 반면 살아 있는 조직을 살펴보는 것은 생검이라고 한다. 영어로 부검은 autopsy 생검은 biopsy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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