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가다가 포기한 길-유방 진료

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by 팔랑심

"유방 진료는 내가 갔다가 포기한 길이고 아쉬움이 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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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돕는 의사의 피로와 고민

순산이든 난산이든 출산을 돕는 일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고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항상 힘들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싹싹하기는커녕 영업 능력이라고는 0 점인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외래 진료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출산율은 보면 미래는 더 어둡게만 보인다. 산부인과 개업가를 보면 비가 오지 않아 메말라 가는 웅덩이에서 오글거리는 물고기 마냥 누가 먼저 죽어 허연 배를 까뒤집고 떠오를지, 여기서 누가 먼저 이 웅덩이를 탈출할지 서로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가장 나중까지 살아남는 물고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출산율이 대폭 높아질 것 같지도 않고, 분만 수가가 두세 배로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우리 병원이 망하고 문을 닫는 것은 예정된 수순으로 보인다.


살아남기 위한 진료 영역의 모색

살아남으려면 이 웅덩이를 벗어나 다른 진료 영역 전환하거나 추가로 확장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으로 나를 보려고 해도 나는 여성 성형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할만하다고 생각한 분야가 유방 분야 진료였다. 우리나라는 유방 질환의 진단은 영상 의학과에서, 치료는 일반외과에서 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유방 진료를 산부인과에서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유방에 대한 수술까지는 몰라도 유방 질환에 대한 초음파 진단이나 조직 검사는 산부인과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유방 X 선 검사도 그렇지만 유방 초음파 검사를 이용해서 진단을 할 때 오진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또한 미숙한 술기로 인해 유방 조직 검사가 제대로 안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배우고 익히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틈틈이 배워서 유방 분야의 진료를 시작한 것이 17년 전이다.


우리 병원에서는 유방암 제거 수술까지 할 역량이나 장비를 갖추지 못해서 유방 X 선 검사, 유방 초음파 검사, 유방 총 조직 검사만 했다. 10여 년간 유방 진료를 하면서 여러 건의 유방암 사례를 발견하여 대학병원으로 전원 하였다. 수술 후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오신 분도 있다. 솔직히 그동안 자궁 경부암으로 대학병원으로 전원한 경우보다 유방암으로 전원한 분이 더 많다. 자궁경부암은 위생이 나아지고 자궁 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HPV) 예방 백신이 개발된 후 많이 줄었다. 그러나 유방암은 갑상선암과 더불어 발생률이 늘어나는 여성암 중 하나다. 포화 지방의 섭취 증가 등 식습관의 변화로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내가 유방 영역으로 진료해 보려고 용기를 내게 된 계기는 유방암 환자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관계없이 산부인과 의사회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성의학 엑스포

내가 동교동에 와서 분만 산부인과를 개원하던 무렵, 산부인과 의사회에서는 여성의학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당시 나는 의사회에서 학술이사를 맡았다. 학술이사는 정기 상임 이사회에 참여하며 의사회에서 주최하는 춘계와 추계 학술대회에서 어떤 강의 주제를 회원들에게 제공할지 연제를 선정하고 연자를 섭외하는 회의에 주요 일원으로 참여한다. 학술 대회에는 수백 명 이상의 산부인과 의사와 전공의들이 참여하는데 학술 이사는 대회 당일에 연자를 소개하며 사회를 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정기적인 학술 대회 외에 비정기적으로 여는 것 중 하나가 엑스포 행사이며 그때도 그런 엑스포 행사가 열렸다.


아무 준비 없이 맡게 된 유방 분야

엑스포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주제들로 여러 섹션을 마련하였다. 일반 부인과 분야, 산과 진단 분야, 폐경을 포함한 내분비 및 난임 분야들을 각각의 상임 이사들이 맡아서 준비했다. 그중 나는 유방 분야의 준비를 맡았다.
내가 유방 분야의 준비를 맡았던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유방에 대하여 아는 산부인과 의사회 임원이 없어서 의사회 막내에 해당하는 나에게 역할이 떠 넘겨졌을 뿐이다. 유방에 대하여는 한 톨의 지식이나 경험도 없던 처지에 갑자기 유방 분야의 포스터를 전시하고 심포지엄의 내용을 구성해서 진행하라니 황당하기만 했다. 이미 유방 진료를 하고 있는 일반 외과의사 두어 분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예상대로 단칼에 거절당했다. 서운하기는 했지만 사실 당연한 일이다. 자기 밥그릇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주변을 온통 초토화시키는 메뚜기 떼와도 같은 산부인과 의사가 넘본다는 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유방 분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반길 외과 의사는 없다. 영상 의학과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행히 내가 전에 서대문구에서 개원하고 있을 때 안면이 있던 영상 의학과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분께 유방 질환의 진단 술기에 대하여 여러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좀 더 실질적인 자료의 확보를 위해 모교 영상 의학과 교수님 한분과도 연결이 되었다. 나중에 산부인과 유방 연구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유방 질환의 영상 진단에 대하여 강의와 실습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분은 산부인과 의사가 여성 환자를 많이 만나게 되니 산부인과 의사도 유방 질환의 진단에 참여한다면 유방암의 조기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도와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분은 밥그릇 지키기라는 작은 시각보다 보다 국민의 건강 증진이라는 큰 시각을 가진 분으로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이렇게 몇 분의 도움으로 여성의학 엑스포와 유방 분야의 행사를 잘 마무리했다. 이때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유방 연구회를 구성해서 정기적으로 강의와 실습을 병행한 유방암 연수 강좌를 열었다. 유방 연구회의 활동으로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유방 분야의 진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진료 영역에 대한 다툼이 있어 아무래도 실질적인 실습이 쉽지 않았다. 마침 그때 기회가 되어 중국에 가서 유방 조직을 맘모톰을 이용하여 검사하는 방법을 참관했다. 중국의 항저우의 인민 병원으로 갔었는데 20명 정도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참여했다. 그렇게 술기를 익힌 후 몇 년간 유방 초음파 검사와 x 선 검사를 했고 유방 결절이 발견된 환자에 대해서는 유방 조직 검사를 했다. 그 몇 년간 여러 분의 유방암 환자를 진단하여 대학병원으로 의뢰했다. 전문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출산 분야에만 집중하기 위해 지금은 유방 진료를 하지 않지만 그때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 영역으로 유방 진료 영역을 확장하는데 힘을 보탰던 선택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유방 분야의 진료를 몇 년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는 없다. 다만 의외로 자궁등 여성 성기에 대한 진찰보다 유방 진찰을 더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 상식과는 다른 그런 경향 때문에 유방 진료 의사로는 산부인과의 다른 영역의 진료도 그렇기는 하지만 남자 의사보다 여자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유방 진찰의 부끄러움

유방 분야의 진료 경험이 나에게 준 교훈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영역의 확장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이 지식과 술기를 배워야 한다는 점, 배우는 과정 동안의 다소간 미숙함으로 오진과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하겠다. 총체적으로 보면 유방 분야의 진료는 산과 진료보다는 위험성이 낮아 보여서 여건만 되었다면 산과 분야에서 유방 분야로의 완전한 영역 이전도 한때의 꿈이었다. 그러나 유방은 나에게는 갈잎이었고 나는 송충이였다. 결국 배운 도둑질이라고 아무래도 나는 산과 의사로 평생을 마감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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