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간 것을 후회하는 길-낙태

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by 팔랑심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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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수술은 임신부의 자궁 안에 착상된 태낭 또는 태아를 출산하기 전에 자궁 밖으로 제거하는 시술이다. 낙태라는 어감이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해서 세간에서는 아기를 지운다는 말을 주로 쓴다. 정확한 의학 용어는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이다 과거 인구 억제 정책이 시행되던 시절에는 월경 조절술이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했다. 월경 조절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착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낙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과 한계

십여 년 전에 "낙태와 낙태"라는 졸저를 자비반 출판사 지원 반으로 출간을 한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참여해서 낙태 수술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마무리할 무렵 펴낸 책이다. 일선 의료 현장에서 낙태 시술을 했던 의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반 사람들이 낙태라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낙태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차원에서 펴낸 책이다. 모자보건법에서는 몇 가지 허용 사례를 제외하고는 낙태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했다. 지금은 낙태를 금지한 형법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났다. 그러나 아직 낙태를 해도 되는 기준에 대하여 법으로 명확히 정해진 바는 없다. 낙태 시술이 법으로 금지되었던 과거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금이나 아직도 적지 않은 태아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져 가고 있다. 여성들은 여성대로 육체적인, 정신적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런 현실을 개선하여 낙태보다는 출산과 피임이라는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었으나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뜨거운 감자처럼 누구도 말을 꺼내지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던 낙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또한 피임에 대한 인식 제고로 낙태율도 많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여성이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은 채 형법에 엄격히 금지했던 낙태에 대한 처벌법이 몇 년 전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내 생각으로는 그건 좋지 않은 방식의 해결이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진흙과자를 주어 허기를 모면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낙태 금지법이 없어졌지만 낙태에 대하여 허용하는 구체적 사유나 제한 범위에 대하여 후속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낙태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심지어는 태아가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임신 9개월의 태아조차 낙태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지경이 되었다.

책을 펴낼 때도 그런 마음이었지만 낙태가 어떤 것인지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정확히 알리고 싶었다. 낙태 시술은 주기에 따라 방법이 다르다. 임신 초기에는 소파 수술이라는 방법이 쓰인다. 어느 정도 큰 경우에는 단순 소파술로는 제거가 어려워서 기구를 이용하여 태아의 조직을 잘게 부수어서 제거하는 방법이 쓰인다. 그러나 임신 중기에 들어가면 이런 방법으로도 제거할 수가 없거나 하더라도 위험하다. 그래서 중기 이후에는 출산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진통 유도제를 써서 낙태를 시도한다.


내가 낙태 시술을 시행한 기간은 산부인과 의사 생활 30여 년 중 대략 20년 정도다.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은 기간은 10년 채 안될 정도로 짧다. 낙태 시술을 중단하고 나서 병원 수입은 상당히 줄었다. 그래서 과거 낙태가 출산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에는 미혼여성들이 산부인과를 먹여 살렸다고 하는 말까지 있었다. 물론 낙태 시술도 꼭 필요한 경우 누군가는 도와야 하고 돕는다면 산부인과 의사가 가장 적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낙태 시술보다는 출산을 돕는 일이 더 적성에 맞았다.

낙태 수술을 할 때는 거의 대부분 수면 마취를 한다. 수면 마취가 막 되기 전이나 깨기 직전 비몽 사몽인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면서 속 마음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또한 수술이 끝나고 깨어날 때 우는 여성들도 많았다. 출산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으로 자신들이 원해서 한 수술이었지만 생명을 품었다가 출산하지 못하고 스스로 없애버린 것에 대한 괴로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 그녀들이 한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것이 맞는지 회의가 들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 기간 낙태 시술을 했다. 첫째는 경제적인 이유로, 둘째는 누군가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합리화로 말이다.
지금은 낙태 수술을 하지 않는다. 경영은 쪼들리지만 마음은 편하다. 산부인과를 처음 택할 때 많은 의사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데 개업할 경우 낙태 수술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남자 의사라면 진료 대상이 모두 여자라는 점도 불리한 점이다. 그리고 분만을 주력 분야로 택할 생각이라면 평생 불규칙한 수면을 감수해야 한다.


낙태 문제에서 우리 사회의 책임

낙태 시술을 중단하고 진오비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처 몰랐던 사실이기도 하고 놀란 사실이 있다. 진오비 활동울 할 당시 낙태 관련 제보 전화 및 상담 전화 센터를 운영했다. 낙태의 위기에 처한 여성을 돕자는 차원으로 운영한 센터였다. 이 상담 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자신은 아기를 낳고 싶은데 남자 친구가 낙태를 강요했다는 사례들이 많았다. 경력의 단절 및 학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여성들이 낙태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틀렸다. 남자 친구 혹은 남편이 낙태를 강요하는 경우 경제력을 가지지 못한 많은 여성들은 결국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단체에서 가능한 한 도움을 주어서 출산하도록 이끌고 싶었으나 단체의 규모나 재정 상태 등으로 많은 도움을 주기는 어려웠다.
정부 차원에서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일체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나마 낙태 처벌법이 헌법 불합치 결정까지 났으니 이제 정부는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게끔 여성을 도울 이유마저 없어졌다.

낙태를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출산하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제대로 된 국가라면 출산을 하고자 하는 여성의 출산을 돕고, 건강해지고자 하는 환자의 건강 증진을 돕고, 생명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적극 도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다. 낙태에 관한 내 생각은 운동을 시작한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불가피하게 낙태를 선택했고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라면 초기 낙태는 의사가 도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의료 보험 지원도 있어야 한다. 중기 이후의 낙태는 낙태가 허용된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출산할 의지가 있지만 낙태로 내몰린 여성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경제적인 것이든 제도적인 것이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제도는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많고 아직 해결된 것은 없지만 다행인 것은 내가 계속 낙태 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출산을 돕는 병원에서 낙태 시술을 병행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출산을 하지 않는 의사 중에서 원하는 의사가 일정한 상담을 거친 후 낙태 시술을 담당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준다는 것의 의미

한때 애란원의 미혼모들을 진료한 적이 있다. 낙태를 원했으나 중절 수술을 할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출산하게 된 여성들이었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아직 경제적으로 자립도 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그때 그들의 산전 진료와 출산을 도우면서 들었던 말 중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그래도 나는 낳아서 덜 미안해요."라는 말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다른 친구들은 낙태를 해서 아기가 이 세상을 살아볼 기회도 주지 않았지만 자신은 비록 직접 키우지 못해서 아기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살아볼 기회를 주었으니 그만큼은 나은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그때 그 말을 들으니 아기를 낳아서 키우지 않고 입양을 보내는 미혼모들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산모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래도 낳아 준 것만으로도 그녀는 최소한의 어머니의 도리는 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되어서 자신의 아이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생명을 준 일이다. 모든 부모들이 그러지는 못하지만 두 번째 선물은 부모가 되어 옆에 있어 주는 일이다. 세 번째는 아이가 건강한 몸과 바른 마음을 가지도록 제대로 이끌어 주는 일이다.
그 말을 한 산모는 셋 중에서 첫 번째를 했으니 비록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선물을 아이에게 주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대신 비슷하게 라도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생명을 주는 일만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아기의 어머니 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돕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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