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숟가락 사용료는 정말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몇 년 전 숟가락 사용료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숟가락 사용료를 받는 식당도 있나? 그런 건 식대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왠 황당한 항목인가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숟가락 사용료는 식당이 아니고 어느 산부인과 병원의 진료비 세부 내역서에 적혀 있던 항목이다. 숟가락 사용료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 액수가 5000원이라는 것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둘다가 놀랍거나. 숟가락 사용료가 낯설다면 그럴싸하게 입원 물품비라는 항목으로 대체하여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받았을 때 의료 보험 공단에서 병원에 지불할 의료 비용을 결정하는 방식은 2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 행위 하나하나 수가를 정해서 총액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자연분만의 경우 분만 개조료, 회음부 절개 시술료, 항생제 비용, 식대, 병실료 등 해당 처치나 수술에 들어간 비용을 각각 정해서 합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포괄 수가제다.

의료 행위 하나하나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료 행위를 했건 하지 않았던 자연분만 수가는 총액 얼마, 맹장 수술은 총액 얼마로 정해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산부인과의 경우 제왕절개 수술은 포괄 수가제라서 어떤 행위를 했던 안 했던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서 비용이 동일하다. 물론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상급 병실 이용료 등 비급여 진료 비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자연분만은 행위별 수가제가 적용되어 어떤 행위를 했느냐에 달라서 모든 사람에서 비용이 동일하지 않다.


숟가락 사용료는 포괄 수가제가 아닌 행위별 수가제의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나서 내는 비용은 포괄수가제인 셈이라 숟가락 사용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설렁탕 한 그릇에 8천 원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당연히 설렁탕과 깍두기를 포함한 반찬, 물, 양념장이 포함되고 숟가락이나 젓가락은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반면 회전 초밥집은 행위별 수가제와 비슷하다. 어떤 접시를 집느냐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숟가락 사용료를 따로 받지는 않는다. 숟가락은 어떤 음식을 먹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기본 제공 항목으로 넣어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밥을 떠먹기도 하는 문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카레를 주식으로 먹는 인도라고 하면 카레 국물은 얼마, 밥이나 빵인 난은 얼마, 카레소스의 종류에 따라 얼마, 숟가락을 사용할 경우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해둘 수 있다. 그러므로 숟가락 사용료라는 것이 영 터무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숟가락 없이 음식을 먹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입원료 항목에 숟가락 사용료가 따로 있다는 것은 정도가 좀 심했다고 생각한다. 심하기는 하지만 숟가락 사용료는 영양제 비용이라든가 자궁 유착 방지제 비용이라든가, 수면 마취제 비용 추가라든가 하는 것들과 그리 다른 건 아니다.


이런 숟가락 사용료에 대하여 그동안 문제가 안되었던 것은 행위별 수가제든 포괄 수가제든 영수증은 총액으로 혹은 크게 몇 가지로만 나누어져서 발부되기 때문에 그런 항목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진료비가 어떤 항목이 얼마나 되는지 세세하게 알기를 원할 때는 진료비 세부 내역서라는 서류를 요청해서 받을 수 있다. 그 세부 내역서에는 진료에 들어간 모든 행위나 약등에 대하여 전부 기재하게 되어 있다. 그분의 경우 진료비 세부 내역서를 보았다가 그런 항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숟가락 사용료는 좀 심했지만 진료 세부 내역서에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은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다. 경제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에 의해 결정되지만 의료 서비스는 조금 다르다. 공급자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필요 없는 검사나 치료를 과잉으로 할 수도 있고 어떤 항목의 수가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물론 보험 항목이 아닌 비보험 항목의 경우가 주로 그렇다. 의료 시장이 완전 독과점은 아니지만 면허가 있는 의사만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 시장에 있어서도 경제 논리만이 유일한 기준이라면 의사도 마찬가지로 불법이지 않은 방법이라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서 돈을 벌면 된다. 그러나 의료 행위란 경제 논리에 의존해서만 할 수는 없다.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기 때문이다. 의료는 의사 개인의 이득 추구라는 영리의 영역이 있지만 그와 더불어 국민의 건강 증진이라는 공리의 영역도 함께 존재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공공 의료의 비중이 높은 반면 미국은 메디컬 케어가 있기는 하지만 영리 의료의 비중이 높다. 각각은 장단점이 있다. 사회 보험 제도의 영국 의료에서는 의사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듣자니까 산부인과의 경우 의사 얼굴을 임신 4개월 가까이 되어서야 처음 보고 임신 전 기간 동안 두어 번 밖에는 못 본다고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인원은 10명 이내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의사 입장에서 환자를 많이 볼 이유가 없다. 환자 입장에서 비용은 거의 안 들거나 저렴하지만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 반면 미국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수입이 늘어난다. 과도한 검사나 치료가 행해지고 검사나 치료 비용도 상당히 높다.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비싸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사회주의 제도인 전 국민 의료 보험이 시행되었으니 외견상 영국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보험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많은 비급여 진료가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미국식 영리 의료의 측면이 있다. 따라서 감기 치료나 간단한 검사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검사와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증 질환일 때 받는 고급의 신의료 기술, 미용 목적의 시술, 또는 건강 검진 차원에서 행해지는 많은 검사들, 필수적이지만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급 병실료 차액 등의 항목은 비용 부담이 환자에게 떠 넘겨져 있다.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는 비용은 저렴하면 저렴할수록, 질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의사들에게 의료 서비스는 비용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의료 행위에 따르는 수고나 위험은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그 피해는 환자와 의사 모두가 지게 된다. 지금 우리의 의료가 처한 현실처럼 의료 서비스 별로 노동과 대가가 지나친 불균형에 빠지면 어떤 진료 과목은 전공하겠다는 지원자가 몰리고 어떤 진료 과목은 전공하겠다는 의사가 없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의사는 모두 도둑놈이 되며 환자는 모두 진상 고객이 된다. 숟가락 사용료를 보면서 잠시 실소를 머금고 마는 수준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적기에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나 원칙과 양심을 가진 의사가 사라지는 현실은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180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미국 출신의 화가다. 1877년 런던에서 그의 작품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이 전시됐다. 이 그림을 본 비평가 러스킨은 그의 그림에 대하여 강렬한 어조로 비난하는 혹평을 신문에 기고했다.

“교양 없고 자만심에 가득 찬 작가가 고의로 사기행각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기에 미술관에 이 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면전에 물감을 들이붓고서는 200기니 (우리 돈으로 45만 원)의 값을 부르는 사기꾼의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가 한 말이다.

그림을 그린 휘슬러는 러스킨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고 결국 재판에서는 휘슬러가 이겼다. 재판 당시 러스킨의 변호사는 휘슬러에게 그림을 그리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물었다. 휘슬러는 이틀이 걸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의 가격은 2일의 노동의 대가가 아닌, 그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지식을 얻는 일생의 노동의 대가"라고 반박했다.

휘슬러는 잘난 척이 심한 데다가 고집이 세서 비평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화가라고 한다. 바람직한 인품의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아무도 러스킨처럼 말하지 않는다. 화가의 인품과 작품의 수준과는 관계가 없다. 물론 명작을 남긴 화가가 인품마저 좋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모차르트의 성품이 아주 형편없었다고 해서 그의 피아노곡도 형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싼 돈을 내고 저급한 진료를 받거나 안 받아도 될 진료를 받게 되는 것은 문제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심사평가원이 있지만 대부분 나라에서 정부가 의료 시스템에 개입하여 통제를 한다. 반대로 저렴한 비용으로 고급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환자 입장에서는 좋다. 그런 점은 정부가 개입하여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병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사이에 숟가락 사용료 같은 것이 들어가게 되는 폐단이 생길 수 있다. 숟가락 사용료 같은 비용은 전문가들만이 안다. 전문가든 기술자든 누군가의 양심에만 기대해야 하는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난하여 배고픈 사람이나 질병으로 고통에 있는 사람이 착한 식당 주인이나 착한 의사를 만나야만 굶주림이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의료 행위에 따른 총진료비가 지나치게 높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숟가락 사용료보다는 의사의 기술료라는 이름으로 적절한 지불을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구차하게 숟가락 사용료를 넣으면서 서글펐을 의사나 숟가락 사용료와 같은 터무니없는 항목으로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하는 환자 둘 다를 위해서 말이다.

숟가락 사용료보다는 힘든 분만을 도운 의사의 분만 수고비가 훨씬 듣기 좋지 않을까? 물론 분만료는 보험 항목으로 이미 있는 항목이다. 다만 현재의 수가가 의사가 치르는 원가 비용에 충분한 수준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오래전에도 수긍해 주기 어려웠고 지금도 수긍해 주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나의 후배들에게는 그렇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졸업한 학교가 폐교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 산부인과가 피안성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처럼 인기 3 과에는 못 들망정 인기 없는 3 과인 산소흉 (산부인과, 소아과 , 흉부외과의 앞글자를 따서 내가 만든 말이다.)에 계속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출산을 돕는 일은 쌍꺼풀 수술보다 하찮은 의료 행위가 아니며 임신 중인 산모나 출산모나 모두 가정이나 국가에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또한 그들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가 인기과 의사들보다 결코 더 적은 수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 실은 그림-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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