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우리 몸이 항상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산부인과학은 크게 산과학, 부인과학, 난임 및 내분비, 성의학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나는 산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난임 의학이나 성의학에 대하는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수련하던 서울대학병원이 국내 최초로 시험관 임신도 성공하기도 하여 난임 파트가 상당히 강점이 있는 병원이다 보니 기본적인 난임 교육과 실습은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인공 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은 장비도 없고 하여 개업 의사로 있는 지금은 하지 않는다. 배란 확인이나 배란 유도제 시술 등의 기본적인 난임 진단 및 치료만 하고 있다.

임신이 잘 되지 않는 난임 부부에서 치료 방법은 원인 질환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의해 좌우된다. 보통 난관 이상, 배란 장애, 정자 이상이 난임의 3대 원인이다.


이 중 배란 장애는 배란이 아예 안 되는 무배란도 있고 배란이 되더라도 드문드문 되는 과소 배란이 있다. 무배란이든 과소 배란이든 치료는 배란 유도제를 이용해서 한다. 배란 유도제를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은 후에는 배란이 잘 되는지 그리고 된다면 어느 날 쯤이 배란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 여부는 주기적인 초음파 검사를 하면 알 수 있다. 이런 목적으로 하는 초음파 검사를 배란 초음파 검사라고 하는데 배란 초음파 검사에서 난포의 크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배란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부부가 성관계를 할 일자를 지정해 준다. 물론 시간까지는 알 수가 없어서 내일 성관계를 하고 다음날 병원에 초음파 검사하러 오세요 하고 말한다.


성관계를 하고 오면 경관의 점액 이상이 의심되는 여성의 경우에는 성교 후 검사라는 것을 추가로 시행한다. 이 검사는 성관계 후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자궁 경관에 정자가 얼마나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법이다. 현미경으로 정자를 살펴보았을 때 한 화면에 5 마리 이상 등 일정 기준 이상의 활동성 정자가 관찰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관찰된 모든 정자가 죽어 있는 경우도 있다. 정자의 생존 기간은 경관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배란기처럼 정자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에서는 72시간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죽어 있는 정자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자궁 경관에 항정자 항체가 있어 정자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항체라는 것은 외부의 물질이 우리 몸에 침입해 들어왔을 때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몸안에 생기는 군대와 같은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는 기생충일 수도 있고 세균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체의 형성은 인간이 질병 없이 건강한 생존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물론 바이러스나 세균을 잡아 없애는 것은 항체 외에도 T 세포, 거식 세포, 백혈구 같은 것들도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맞고 있는 코로나 19 백신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도록 항체를 만들기 위해서 맞는 주사다.


그러나 이런 공격 항체가 형성되면 안 되는 경우들이 있다. 산모의 자궁 내에 잉태되는 태아가 대표적이며 정자도 마찬가지로 항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여러 메커니즘을 통하여 태아나 정자는 공격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때 항정자 항체가 형성되어 정자를 공격하게 된다. 이런 항정자 항체는 자가 면역 질환 때 쓰이는 것처럼 면역 억제제를 쓰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택하는 방법은 콘돔을 쓰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임신이 되지 않는 부부에서 콘돔이라니...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항체의 형성을 무력화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항체를 만들도록 하는 외부 물질인 항원 그러니까 정자를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콘돔을 사용하면 항정자 항체가 소멸되어 임신이 가능하게 되기도 한다.


여하튼 이렇게 날짜를 지정받아서 성관계를 하게 되면 말하자면 일종의 숙제 같은 것으로 성관계를 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성교 후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면 그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성관계도 그렇지만 시험관 시술처럼 아예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외부에서 하는 경우에는 아예 자위를 통해 정액을 받아야 하고 여성은 가느다란 주사 바늘을 복강 내로 찔러 난자를 채취해야 한다.


임신이란 참 오묘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아를 없애는 중절 수술을 받고 어떤 사람은 임신이 되지 않아 굴욕스럽기도 한 여러 시술을 받아야 한다. 난임도 요즘은 치료 기술이 발달하여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나마 희망이 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피임에 대하여는 획기적 피임법인 피임약이 1960년도에 개발되어 사용된 이후 소소한 발전은 있지만 아직도 거의 100% 효과를 볼 수 있으면서 부작용은 거의 없는 편한 피임법은 없다. 피임법에는 일시적인 피임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피임약, 자궁 내 장치, 콘돔이 있고 한번 받으면 영구히 피임이 되는 영구 피임법으로 난관결찰술과 정관결찰술이 있다. 난관결찰술은 그냥 간단히 난관 수술, 정관결찰술은 정관 수술이라고도 부른다.


오래전 일이다. 내가 서울 어느 구청 보건소에 업무를 돕기 위해 며칠간 파견 나갔을 때다.

내가 파견 나간 곳은 산부인과 과장님이 한분 계신 곳으로 전공의인 나는 과장님을 돕는 보조 역할을 했다. 보건소의 업무는 여러 가지인데 그 업무 중에 하나가 난간 수술이나 정관 수술을 해 주는 일이었다. 그 당시는 1980년대로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이 펼쳐지던 때였다. 원래 정관 수술은 비뇨기과 의사가 주로 하는데 산부인과 의사 중에도 정관 수술을 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내가 파견을 나간 날에도 그렇게 정관 수술을 받으러 온 분들이 여러분 있었는데 하나 같이 모두 예비군복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지금이야 산아 제한 정책도 없고 정관 수술도 영구 피임법이라 잘하지 않지만 그때는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정관 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십여 명 정도 되었다. 수술을 받으면 그해의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주기도 했지만 10여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수술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서 많은 분들이 훈련을 나왔다가 정관 수술을 받았다.


정관 수술은 고환에서 음경으로 가는 두 개의 정관을 자르고 묶는 수술이다. 복잡하고 큰 수술은 아니지만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수술이다. 정관은 생각보다 가늘어서 2~3mm 전후 굵기로 우리가 먹는 동그란 국수발과 같은 정도 크기다. 수술 과정을 잠깐 설명하자면 우선 정관이 지나가는 음경의 피부를 국소 마취한 후에 피부를 소독하고 해당 부위의 피부를 조금 절개한다. 그 후 양쪽의 정관을 찾아서 겸자로 피부 밖으로 끄집어내어 정관의 일부를 각각 자른 후 끝을 묶어 준다. 마지막으로 피부를 봉합하고 소독하면 끝이다.

수술 세트가 준비되고 나는 관찰과 보조를 위해 과장님의 옆에 섰다. 수술을 받을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 오다가 잠시 당황한다. 산부인과 과장님이 여자 선생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내가 운영하는 병원에는 남자 의사인 줄 모르고 진료받으러 왔다가 남자 의사라는 소리에 진료를 받지 않고 그냥 가시는 분이 한 달에 한두 분 정도 있다. 여성의 성기를 남자 의사가 진찰하는 것이나 남성의 성기를 여자 의사가 진찰하는 것이나 아무리 의사는 남녀가 없다지만 부끄럽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간단한 진찰도 아니고 수술을 여자 의사에게 받는다니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예비군 훈련 면제받을 생각에 단체로 미니 버스를 타고 실어다 주는 곳으로 왔을 뿐인데, 다시 돌아서 나갈 수도 없고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을 차단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간호사가 재빠르게 지시를 한다.

"이쪽으로 오세요. 하늘을 보고 침대에 누우시고 양손은 머리 위로 올리세요."

남자는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시대로 눕는다. 하의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리게 한 후 소독포를 덮어서 음경만 노출을 시킨다. 피부를 포비돈 용액으로 소독을 한 후 리도카인으로 국소마취를 한다. 정관 수술은 10분 남짓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라 보통 전신 마취는 하지 않고 국소 마취로 수술을 한다. 마취까지 끝나면 이제 피부 절개와 정관 절단 및 결찰 등 수술 과정만 마무리하면 되는데 문제는 또 있다.

대체로 예비군 훈련을 올 정도의 남자라면 혈기 왕성한 나이의 젊은이들이다. 피부를 소독하고 가느다란 정관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음경을 만져야 한다. 의사라지만 여자의 손이 음경을 만지작 거리면 발기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발기가 되면 성기가 커지면서 정관이 팽팽하게 당겨지는데 그렇게 되면 짧아진 정관은 피부 밑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찾아서 끄집어 올리기가 어렵다. 그럴 때 산부인과 과장님은 음경을 손으로 툭툭 때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힘 빼세요. 힘주시면 수술 못해요."

옆에서 보는 나는 직접 말씀드릴 수는 없어서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저러면 안 되는데... 그냥 가만히 두면 되는데 툭툭 때리면 더 힘이 안 빠지는데..."

그때 여자 과장님이 기혼이었는지 미혼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미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혼이었다면 그렇게 툭툭 치면서 힘을 빼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술을 해야 할 과장님 입장에서는 뒤에 밀려 있는 환자도 있어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결국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수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술이 끝나고 진료실을 나가는 환자의 발걸음은 거의 도망치는 수준이었다.


흔히 사람의 몸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의 몸은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힘을 빼라고 힘이 빠지고 힘을 주라고 항상 힘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에 있는 근육은 수의 근육과 불수의 근육으로 나뉘는데 수의 근육은 팔 근육이나 다리 근육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다. 불수의 근육은 심장 근육이나 위장관 근육처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이다. 복부 근육은 수의 근육이며 자궁 근육은 불수의 근육이다. 따라서 출산을 할 때 아기를 낳기 위해 힘을 주라고 하는 것은 복부 근육에 힘을 주어 복강의 압력을 높여 자궁에 힘이 전달되도록 할 목적이지 자궁을 수축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궁이 불수의 근육이라 의지로 힘을 줄 수 없으며 옥시토신과 같은 생체 물질의 의하여만 수축을 시킬 수 있다. 순산 체조도 불수의 근육인 자궁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부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다.


더군다나 음경은 근육도 아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스펀지처럼 되어 있는 음경의 혈관층에 혈액이 가득 들어참으로써 발기가 된다.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음경이 단순 해면층 조직이 아니라 아예 가운데 뼈가 들어 있는 물개 같은 동물도 있기는 하다. 음경에 빠르게 혈액이 가득 차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오래 지속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 하는 방법은 내가 여기서 따로 말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성의학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했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사람의 몸은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제대로 안되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고 실망할 것은 없다. 체력이든 외모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너무 우울해할 것은 없다.

2. 사람의 몸은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에 의해 조금은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임신 중이신 임신부는 순산을 위하여 순산 체조를 열심히 하자.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화가다.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를 가지고 살다 열여덟 살 때 타고 있던 버스와 기차가 충돌하여 크게 다쳤다. 여러 번의 대수술로도 완치하지 못하고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았다. 주로 자화상을 많이 남겼는데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탓이다. 비록 그녀는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았다.


상처와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거부하는 것이고 둘째는 회피하는 것이고 셋째는 감수하는 것이다. 전기 자극으로 쥐에게 고통을 주는 실험을 한 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고통을 그저 감수하는 것이 가장 심한 스트레스를 쥐에게 주었고 그런 그룹의 쥐들은 불과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반면 전기 자극으로부터 도망가거나 거부하고 반항한 쥐들은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오래 견디고 살아남았다.

고난 혹은 고통이라는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응전할 것인지는 국가도 그렇지만 개인도 자신의 자유 의지에 달렸다. 어떤 쪽을 선택하든 반드시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선택을 한 후 그에 따른 결과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길을 간다.




-여기 실은 그림-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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