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나는 친절한 의사가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나에 대하여 놀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내가 의사가 되어 기초 의학도 아닌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임상 의학을 선택했다는 것.

둘째. 많은 임상 의학 중에 신경외과나 흉부외과가 어울릴 듯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만 진료하는 산부인과를 선택했다는 것.

셋째. 산부인과 의사라도 전혀 개업의 스타일에 맞지 않아 보이는데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이 아니라 개업의로 남았다는 것.


나를 좀 더 정확히 알았다면 이해할 수 있을만한 일들이지만 적당히 알기 때문에 놀랍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 모르면 놀라운 일들이 알고 보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 경우는 일상에서 적지 않다. 그래서 나를 잘 모르는 분들께 이런 궁금증에 대하여 답변할 기회가 한 번쯤 있으면 했는데 지금이 그때다.

참고로 임상 의학이라고 하는 것은 환자를 보는 진료 과목을 말하며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같은 과목들이다. 기초 의학은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미생물학, 기생충학 등으로 환자를 직접 보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교수나 연구원으로 일을 하는 의학의 분야를 말한다.

첫째 항목 설명:

한 인간의 사회성이 어떻게 갖추어지는지는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 다만 가정에서 가족과 형제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놀이 집단이나 학창 시절 교우 관계를 통해서 갖추어 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 모든 점에서 나는 관계 형성을 충분히 원활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특히 아주 친한 소수의 친구나 가족을 제외하고 전혀 모르는 혹은 거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다. 물론 대인공포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의과 대학 다닐 때 내가 제일 잘한 과목은 미생물학이다. 미생물학은 배지에 세균을 배양하여 그 군집 양상을 보고, 또 현미경으로 균의 모양을 관찰하여 무슨 균인지 알아내고 균의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전공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환자를 보지 않고 그저 연구만 하면 되는 미생물학 같은 기초 의학을 택할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의과대학에서 기초 의학을 한다는 건 왠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기초 의학자는 일반 사람이 보기에 의사 같지 않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병원 개업은 불가능하다. 내가 의과대학에 입학하던 무렵은 의예과가 전자공학과와 1, 2 위를 다투던 시기였다. 그렇게 힘들게 의과대학에 들어와서 임상 의학이 아닌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아주 소수였다. 경제적으로도 개업을 하거나 봉직하는 의사보다 기초 의학 교수의 월급이 훨씬 적었다. 나도 예외가 아닌 그저 돈과 안정을 쫓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둘째 항목 설명:

내 얼굴 인상이 아마 칼잡이라고 불리는 외과 (일반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상당히 거칠고 위험하게 보이는 흉부외과나 신경외과에 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남자보다는 여자를 상대하는 것이 편했다. 그러나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정형외과 모두 남자 환자가 대부분이다. 여자 환자가 많은 진료 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산부인과였다. 성형외과나 피부과는 적성에 맞지 않기도 하였지만 성적도 안되어서 서울대병원에서 수련할 수도 없었다. 참고로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 사주에 도화살이 3개 있다고 한다. 그래서 3번 바람을 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여자를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지면 좋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라고 하니 잘 골랐다고 점쟁이가 말해 주었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 점쟁이가 지금의 내 처지를 알면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셋째 항목 설명:

사실 내가 대학병원에 남을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다. 전문의 자격을 따고 군 복무 대신의 지방 의료원을 마치고 나왔을 때 전임의로 잠시 근무한 삼성 서울 병원 (성균관 의과대학병원이기도 하다)에 근무했을 때, 개업하고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인천의 모대학병원에서 추천 왔을 때, 그리고 분당의 종합병원에서 초빙하려고 했을 때다. 그러나 대학병원 봉직의사는 수입이 적은 편이라 내가 벌어 다섯 식구 그리고 차후 부모님까지 부양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출산율이 높았던 그 당시 산부인과 병원을 개업하면 꽤 수입이 좋았다. 그래서 산과 의사 10년쯤 해서 평생 먹고살 것을 마련하고 나중에는 외래 진료만 가볍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대학 병원은 포기하고 개업하기로 결심했다. 더불어 내가 사회생활에 다소 적응이 어려워서 상사를 모시고 대학병원 봉직의 생활을 하거나 동료 의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종합병원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점도 이유 중 하나다.


이렇듯 나를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은 내가 임상 의사가 되고 개업을 한 것에 대하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무뚝뚝하고 살가운 정이 없는 의사가 개업의 그것도 산부인과 개업의사라니 소가 웃을 일이라고 생각했을 듯싶다. 반대로 이런 실제의 내 모습을 모르고 홈페이지에 쓴 글을 통해서만 나를 본 사람이나 방송 혹은 유튜브를 통해 만 나를 보신 분들은 살갑고 정이 많은 의사라고 착각을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은 다양한 페르소나 즉 가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은 어디까지나 방송이다. 내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글 3편을 보여드린다.

1편:

뭔가 답례를 하고 싶어서 작은 과자를 드리려고 하니 "이런 것은 필요 없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하네요.

"그래도 직원들과 함께 드세요" 하고 내미니 "아, 그럼." 라며 조금 웃으며 받아 주었다.

오오! 웃고 있었어!

아 이 기분.

홍대에 위치한 산부인과 추천합니다.


2편:

진오비 산부인과라는 이름으로 재개원하고 첫 출산한 산모는 일본인으로 국내에 들어와 잠시 살다 출산한 분이었다. 출산하고 나서 그분이 자신의 일본어 블로그에 남긴 출산 후기를 직원이 알려주어서 읽어 보았다. 일본어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구글 번역기로 돌려보니 전반적으로 좋게 보아주시고 주변에도 추천까지 해 주시는 내용이라 감사한 마음이었다.

특이했던 것은 일본에서는 산모들이 출산 후에 와카메 스프라고 부르는 미역국은 먹지 않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서 매일 나오는 미역국을 억지로 먹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 선물로 준 산모 가방과 담요, 기저귀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있었다. 첫 출산 산모였기 때문에 당시 동업하던 여자 원장님의 제안으로 퇴원할 때 축하 케이크도 마련해서 드린 기억이 난다. 그 일에 대하여 산모는 블로그에서 "꽃다발과 축하 케이크는 아무래도 그 무뚝뚝한 선생님이 제안한 것 같다."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내가 무뚝뚝한 것은 일본에까지도 소문이 날 듯 싶다.

3편:

진료가 몇 분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원장님은 비록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건네는 말 한마디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K-드라마 속 츤데레 남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원장님의 무뚝뚝함은 찐이었습니다. 제 마지막 월경일이 3개월 전이라 정확한 추산이 어려워 정상 임신 여부는 2주 뒤에 알 수 있고, 유산 가능성도 있다는 말씀을 어찌나 차갑게 하시는지... 잔뜩 설레며 병원을 갔던 마음이 괜스레 위축되며 내가 너무 설레발쳤구나 싶고,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고요. 직접 만드신 핑크색 산모 수첩도 받고 싶었는데 나라에서 제공해주는 기성 산모 수첩 주시고. 다시 생각해봐도 진오비에서의 제 첫 기억은 어쩐지 서러움이 가득했네요. 원장님은 잘못하신 게 없고 아마 제가 벌써 호르몬의 영향을 잔뜩 받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민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다른 병원을 가볼까... 고민도 했지만, 함께 간 남편은 군더더기 없는 원장님의 진료 스타일이 너무 좋은데 왜 그러냐며 초음파실에서 원장님이 보여주신 전문성에 이미 신뢰가 가득했어요.


1편과 3 편은 전에 어떤 산모께서 우리 병원 홈페이지의 출산 후기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 내용이다. 2편의 글은 글 쓴 산모 자신의 일본어 블로그에 올린 글 일부다. 원글은 오래되어 찾을 수 없었고 당시 소감을 내가 홈페이지에 적어 놓았던 것을 찾아서 올린 글이다.

내가 얼마나 웃지 않는 사람이면 작은 미소에 그렇게 반응할 정도인지 스스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내 인터넷 상의 별명은 무뚝뚝 대마왕이다. 무뚝뚝도 아니고 무뚝뚝 대마왕이다. 무뚝뚝하다는 것은 당연히 자랑이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는 오래되어 고칠 수도 없고 아예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고 보니 이제는 그저 덤덤하고 별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의사는 왜 그렇게 항상 차갑나요?"

책을 내기로 결정한 후, 출판사 편집자 분이 던진 질문에 저는 명치를 걷어 차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갑다고요? 언제나 정중하게 응대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밤중에 혼자 병원 책상 앞에 앉아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차갑다고 여길만한 말을 하는 저의 모습, 태도가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신음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유감스럽지만 의사의 태도가 차갑다고 느낀 적이 있겠지요. 저도 가끔 다른 의사가 환자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저건 좀 너무 하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환자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의사가 젊은 후배일 때는 주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배 의사일 때는 특히 상하 관계가 엄격한 외과 의사 세계에서는 선배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책을 빌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환자에게 차갑게 대해야 겠다고 생각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위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나카야마 유지로라는 일본의 외과 의사가 쓴 "의사의 속마음"이라는 책에 있는 글이다. 책에는 이외에도 "의사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빨리 말하고 어렵게 말하는지" 등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불편함에 대하여 의사로서의 솔직한 고백을 담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는 어렵다. 그 점에서는 의사의 속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처럼 책을 펴내어 속마음을 알려줌으로써 어느 정도 서로 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유튜브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속마음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 과자 전문점에 들어갔더니 정말 여러 가지 종류의 과자가 많았다. 딱히 살만한 것이 없어 돌아 나오려는 데 갑자기 눈에 확 띄는 과자가 있었다. "무뚝뚝 감자칩"이라는 이름의 과자였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랄까 반가운 마음에 한 봉지 사 가지고 와서 먹어 보았는데 아주 맛이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미가 되지 않아 좀 싱거웠고 그리 맛있는 편도 아니었다. 역시 무뚝뚝은 의사든 과자든 별로다. 내로남불로 욕먹겠지만 나는 사람은 상냥한 것이 좋고 과자는 달콤한 것이 좋다. 그러나 내 얼굴은 밝지 않고 말투는 살갑지 못하며 미소는 누구한테 혼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지어본 적이 거의 없다.


베르나르 뷔페가 그린 그림들은 상당히 냉소적인 분위를 풍기는 것이 많다. 검은색의 강렬한 선, 예리하고 각이 진 모습의 사람들, 파랑이나 차가운 계열의 색조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난 효과일 것이다. 특히 여기 올린 생선 장수라는 그림은 전쟁 직후의 암울하던 시절에 그려서인지 흑백의 무채색이 많다. 죽은 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 있는 생선 장수에게도 어떠한 생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뷔페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우울한 느낌이 들고 삭막한 기분이 된다.

“예술은 가볍지 않다. 즐기고 싶으면 루브르가 아니라 서커스를 보러 가라”는 그의 말에서 보다시피 뷔페는 다른 사람이 그의 작품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느끼는지 어떤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뷔페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전쟁의 참상 등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어둡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8000 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겨 다작 화가 중 한 명에 속한다. 때로는 그렇게 살아 남아 많은 작품을 남기면서 활동하는 자체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뷔페는 1997년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나서 더 이상 작품 활동이 어려워지자 2년 후인 1999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내게 거만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캔버스를 한번 보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예요."

뷔페가 남긴 말에서 보듯 그는 그림뿐 아니라 인생의 마감에 대하여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삶에 대하여 그는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 점 때문에 아마도 뷔페도 사람들에게 무뚝뚝 마왕 정도의 소리는 듣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로서는 그것이 자신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종교 철학자 중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했다는 말은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하여 누군가 던진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은 "알기 위해서 믿어라."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물론 반대로 "믿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둘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만 가지고 있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상대방을 믿고 함께 가거나 아니면 믿지 않고 혼자서 가거나. 그럼에도 꼭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눈을 보면 된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언뜻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상당히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동자에는 검은 동자가 적고 흰자위가 많다. 대부분 동물이 검은 동자가 눈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이다. 사람의 눈동자가 이런 방식으로 진화한 이유를 진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검은 동자가 적고 흰자위가 많음으로 해서 상대방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파악하기가 쉽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호감을 가진 사람인지 또는 나를 보고 있는지 다른 곳을 보고 있는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친구와 적을 쉽게 구분함으로써 험난한 세상을 살아 가는데 더 넓은 흰자위와 작은 검은 동자가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눈동자를 가진 개체로 진화되어 온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고 눈이 작아서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은 사람이 진화가 덜 되었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는 분은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 실은 그림-

베르나르 뷔페의 “생선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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