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나는 내과 의사가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딜러는 카드를 한 장씩 패가 보이지 않도록 플레이어에게 나누어준다. 마지막 히든카드다. 테이블 위에는 앞면이 드러난 카드가 4장이 있고 플레이어의 손에는 패가 감추어진 카드가 3장이다.

딜러: “배팅 시작하세요.”

보스: “5만”

플레이어 1: “5만 받고 5만 더”

플레이어 2: (잠시 고민하다가 아깝다는 듯이) “다이”

플레이어 3: “콜”

플레이어 4: “콜”

보스: “5만 받고 10만 더”

플레이어 1: “콜”

플레이어 3: (잠시 망설이다가) “다이”

플레이어 4: “콜”

딜러: “ 자 이제 보스부터 카드를 오픈해 주세요.”

보스: “전 하트 잭 플러시입니다.”

플레이어 1: “트리플입니다. 졌습니다.”

플레이어 4: “저는 퀸 석장 에이트 2장 풀하우스입니다.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테이블에 수북하게 쌓인 만원 지폐 더미는 플레이어 4가 쓸어갔다.


위 장면은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 모습이 아니다. 내가 학창 시절 강의를 받던 대강당의 앞 라커룸에 펼쳐진 모습이다.

나는 한때 도박에 빠졌던 적이 있다.

의과대학은 다른 일반 대학처럼 강의실을 옮겨 다니면서 수업을 듣지 않고 한 교실에서 강의를 듣는다. 물론 실습은 해부학 실습동과 미생물학 실습, 생화학 실습을 하는 종합 실습동이 따로 있지만 강의는 대형 강의실 한 곳에서 160의 학생이 강의를 들었다. 물론 다른 대학의 경우는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랬다.

내가 본과 4학년으로 이제 졸업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던 때 매주 토요일이면 강의실 앞에 있는 락커룸에서 포커 게임이 열렸다. 도박판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벌어졌는데 판돈이 한판에 10만 원 이상 수십만 원 정도 되는 메이저 그룹에 대여섯 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판돈이 수천에서 수만 원 정도의 마이너 그룹에 서너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간이 작기도 했지만 돈이 별로 없는 나는 마이너 그룹의 도박판에 참여했다.


담배는 의과대학 본과 2학년쯤부터 피우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도박에 빠져 있을 때는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피웠다. 토요일 하루만 도박을 했는데 밤을 새우면서 일요일 아침까지도 도박을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새벽쯤 되면 담배가 떨어지게 되었고 골초였던 나는 다른 친구가 버린 꽁초를 주워서 피우기도 했다. 어느 날은 등록금마저 도박으로 잃고 만 적도 있었다. 곧 등록을 해야 하는 데 큰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교재를 산다는 구실로 책값을 부모님께 받아서 등록금을 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한심한 모습이다.


토요일 강의는 3교시와 4교시가 발생학과 의료 윤리학이었는데 그 두 강의는 도박판에 있느라 거의 듣지 못했다. 발생학은 생물 그리고 인간의 발생 과정을 배우는 학문이고 의료 윤리학은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데 있어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들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런 내가 산부인과를 하게 되다니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의과대학생 혹은 의사들 중에는 도박에 빠진 사람이 많다. 도박까지는 아니라도 재미로 포커나 블랙잭 등 카드놀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과대학 공부나 진료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라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사실 변명이다. 취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의 취업 스트레스나 직장 생활을 하는 회사원의 스트레스가 의과대학생들 또는 의사들이 겪는 스트레스보다 결코 적지 않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도박에 빠졌다고 들어 보진 못했다.


그때 4학년 거의 1년을 도박에 빠져 지내고 본과 4학년 여름 방학에 만난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를 하느라 학업을 게을리한 탓에 4학년 성적은 아주 좋지 않았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의를 선발하는 기준은 의과대학 성적, 인턴 1년 기간 동안의 실습 성적과 필기시험, 그리고 면접으로 이루어진다. 그중 의과 대학 성적이 비중이 가장 높다.


나는 인턴을 마칠 무렵 내과에 전공의로 지원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과도 인기가 없어 미달인 곳이 많다고 들었지만 당시 내가 수련하던 대학병원의 내과 경쟁률은 2대 1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내 실력으로는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군 복무를 마치고 와서 지원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보통 전공의 선발은 군 복무 (군의관)를 다녀오기 전의 군보 TO와 군 복무를 마치고 온 비군보 TO가 대체로 반반씩 차지하고 있어서 내과의 경우 군보 10명 비군보 10명을 뽑았다. 대체로 모든 과들이 군보보다는 비군보가 경쟁률이 조금 낮고 성적 수준도 조금 낮았기 때문에 군대 복무 후 원하는 진료 과목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가 함께 산부인과 지원을 하자고 한 이유도 있고 이전 글에서 밝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나는 산부인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군대에서 필요한 인력이 1년에 6명 정도뿐이라서 10명의 총 정원중 군보는 2명 TO였고 비군보는 8명 TO였다.

나와 나의 친한 친구 한 명 그리고 다른 학생 한 명이 산부인과 군보 TO로 지원해서 산부인과는 1.5대 1의 경쟁률이었다. 나와 내 친구 두 명이 합격해서 산부인과 전공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은 도박도 하지 않고 흡연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기서 갑자기 도박과 흡연에 대한 흑역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학창 시절 소홀히 한 공부 탓에 가고 싶었던 내과를 하지 못하고 산부인과를 하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잘된 것인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떤 선생님 말마따나 숟가락 내려놓기 전까지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숟가락 내려놓는다 표현이 좀 삭막하다면 어느 책 제목처럼 숨결이 바람이 되는 때라고 하자.


흔히 “나는 물 밖에 안 먹는데 왜 살이 찌는지 모르겠어?” 하면서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아닌 게 아니라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정말 물을 많이 먹는다. 과일 주스나 콜라 같은 당분 함량이 높은 물 말이다. 그들은 음료뿐 아니라 과일이나 과자 같은 간식도 많이 먹는다. 대신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임신부들에게 순산을 위해 내가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체중 조절이고 둘째는 순산 체조다. 순산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체형도 중요하고 어떤 철학을 가진 의사를 만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후자의 두 가지는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체중 조절과 순산 체조를 강조하다 보니 내가 만들어서 드리는 산모 수첩에도 그 부분에 관련된 내용이 제일 많다. 그리고 올 때마다 체중이 적절하게 늘었는지 그래프에 적어서 비교해 보면서 판단을 하고 순산 체조는 아예 일지를 작성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런 것도 은근히 스트레스인지 산모들 중에서 거짓말로 체조를 했다고 적었다고 하는 고백도 들었다. 체중이야 병원에 와서 저울로 달기 때문에 거짓으로 적을 수는 없는데 내가 “체중이 지나치게 많이 늘어나서 잘 관리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다는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산모들이 종종 있다..

“이상하다 집에서는 이렇게 많이 나가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나는 더 이상은 말하지는 않지만 정말 그렇다면 집에 있는 저울을 새것으로 교체하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다.


보통 정상 체질량인 분들이 임신 초기부터 출산 직전까지 늘어나도 좋은 적정 체중은 12kg에서 16kg이다. 물론 이 수치는 정상 체질량 산모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저체중이거나 비만 체중인 산모는 기준이 다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산모의 지방층 증가, 혈액량 증가, 부종 등 산모의 체중이 늘어나서 그런 것이며 일부가 태아와 양수, 태반의 무게가 차지한다. 적정 체중에서 가능하면 하한선 근처 즉 12kg 정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도록 말씀드린다. 그럼에도 임신 막달에 20kg 이상이 늘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잠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왜냐하면 수술을 하여서라도 출산만 하는 것이 그저 목적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면 과도하게 늘어난 체중은 순산에 상당히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에 나의 마라톤 완주 경험을 어느 글에선가 밝힌 적이 있었는데 내가 첫 도전으로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 전에 나는 일이 년 정도 홍제천에서 한강까지 매일 10km 이상을 달리는 연습을 했다. 만일 내가 그런 연습 과정이 없이 바로 42.195km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다면 아마 나는 심장 마비로 중간에 쓰러지거나 아니면 완주를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꾸준한 연습 덕분에 4시간 40분 정도로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임신과 출산은 마라톤과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아니며 순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임신에서부터 출산까지 10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태아의 발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간이기도 하지만 산모의 순산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다만 태아는 산모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궁 속에서 산모의 영양을 공급받아 뇌도 만들어지고, 심장도 만들어지고, 팔다리도 만들어진다. 참고로 지금 말한 이 순서가 태아가 발달해 나가는 순서다. 나는 학창 시절 발생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였지만 여러분들께는 올바른 정보를 알려드린다.


아래는 태아의 발달 순서다.

1. 신경 계통은 임신 5 주부터 40 주까지

2. 심장 계통은 5 주부터 10 주까지

3. 팔다리는 6 주부터 7 주까지

4. 눈 등 시각 기관은 6 주부터 40 주까지

5. 귀 등 청각 기관은 6 주부터 20 주까지

6. 이나 입술은 8 주부터 40 주까지

7. 구개는 7주부터 14 주까지

8. 외성 기는 9 주부터 40주까지


태아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 내기 위해서 어머니의 좁은 자궁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소중한 태아를 품은 당신도 최선을 다해 건강한 아기의 출산을 위해 노력해 주면 좋겠다.

당신 앞에 12kg이나 되는 무거운 돌이 있다. 내일 당장 그 돌을 번쩍 들라고 하면 들 수 있는 여성이 몇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러나 10개월 후에 그 돌을 들어 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번쩍 들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간신히 들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예 못 들 것이다. 어떤 사람이 수월하게 들고 어떤 사람이 그렇지 못한지는 알기 그리 어렵지 않다. 물만 먹는데 왜 살이 찌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못 들 것이고 살이 찌는 것이든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든 다 내가 소홀히 한 탓이 크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번쩍 들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시간이 없다면 이 세상은 정지한 채로 아무 의미가 없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임신부에게 주어진 10달도 지겹고 고통스럽고 빨리 끝났으면 싶은 악몽 같은 시기가 아니라 축복의 시간이다. 소중한 생명이 자라는 시간이고 건강하게 출산하기 위해 주어진 준비 시간이다. 이 세상에 소중한 것 중에 어느 한순간에 저절로 갑자기 얻어지는 것은 별로 없다. 로또 1등 같은 불로 소득 외에는. 아참 로또 1등 당첨된 사람들도 10개월 이상 몇 년씩 시간을 들인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학창 시절 나의 도박은 내가 내과 의사가 되지 못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고 퇴원하면서 밝은 모습을 한 산모와 아기를 볼 수 있었던 인턴 수련 기간은 내가 산부인과 의사가 되도록 만든 원인 중에 하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는 화가이자 과학자이고 해부학자였으며 오랜 전통의 공증인 가문 자손답게 살아생전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인체 해부 그림도 여러 점 남겼다. 여기 실은 그림은 그가 남긴 태아의 스케치다. 이는 후세의 사람들이 그가 관찰한 내용의 목록이나 아이디어, 또는 스케치를 등 여러 저술을 모아서 정리한 책 “코덱스”에 들어 있는 그림이다. 코덱스는 무려 3만 장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기록물이다. 그런 코덱스 중 하나인 코덱스 레스터는 350억 원에 빌 게이츠에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여기 실은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코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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