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이다.
헤세의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인 생명 탄생을 돕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다.
헤세는 청소년기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중년기에는 우울증으로 심리학자 칼 융으로부터 정신분석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헤세뿐 아니라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우울증은 현대로 들어오면서 점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통계를 보니 자살자의 70% 내지 80%가 우울증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우울증이 왜 생기는지 명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우리 몸안의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의 불균형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는 학자가 많은데 나는 그런 삭막한 해석보다는 문학적 해석을 더 좋아한다. 이를테면 자존감의 상실과 같은.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존감이란 단어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한 용어다. 그는 자존감의 상처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서울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존감은 '내가 이룬 것'에서 '내가 목표로 한 것'을 뺀 값이 클수록 높아진다. 자신의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면 이 수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자존감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목표를 낮게 잡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목표가 낮기에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주변의 비판에도 자존감 시스템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아마도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 이런 바탕에서 나온 듯하다. 그의 말을 듣고 나의 경우에 대입해 보았다.
내가 이룬 것= 빚쟁이 의사, 동네의 작은 병원 원장, 능력 없는 가장이자 무뚝뚝한 아들, 친구조차 변변히 없는 소시민
내가 목표로 한 것=돈 많고 명성이 높은 의사, 능력 있는 가장과 자상한 아들, 친구도 많은 활동가
이룬 것에서 목표로 하는 것을 뺀다고 하면 내 점수는 과연 얼마가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울증이 잘 생기는 그룹은 다음과 같다.
1. 여성
2. 우울증 가족력이 있는 경우
3.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성격
4. 고혈압약, 항불안증약 장기 복용자
5. 당뇨병, 내분비질환 등 만성 질환자
여성에게 있어서는 특히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 호르몬의 변화와 신체의 변화로 인하여 우울증이 잘 생긴다. 이런 우울증은 옆에서 잘 살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불면증이나 식욕 저하,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등의 증상이 있거나 쉽게 초조감을 드러내고 짜증을 내는 증상이 잦아졌다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제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수영 교수팀이 2013년 3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3,801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임신 초기, 중기 , 말기, 산후 1달까지 4차례에 걸쳐 정신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임신 초기(12주)에 가장 많은 임신부가 우울증 위험 소견을 보였고 그다음으로는 산후 우울증이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흔히 산후의 우울증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지만 임신 초기 우울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 잘 모르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고 괜한 짜증으로 치부하거나 예민함으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임신 초기를 더 힘들게 만들게 된다는 뜻이다. 임신 중 우울증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고위험 요인은 저소득층 산모, 미혼이거나 동거 상태인 경우, 과거 우울증을 경험한 병력이 있을 때 등이다. 심한 입덧도 우울증을 초래한다고 보고하였다.
임산부 우울증의 진단은 일반적인 우울증 진단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울증 진단에 가장 많이 쓰이는 "에든버러 산후 우울증 척도 검사”는 총 10문항으로 되어 있어 검사에 시간이 그다지 걸리지 않아 편리하다. 임신 중 우울증의 발생률은 산모들 중 10% 내지 15% 정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심하지 않은 정도의 우울감은 거의 대부분 산모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임신 중에는 아내의 말에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거나 혹은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임신 초기 우울증은 입덧이 시작하는 임신 6주 경부터 임신 12주 정도까지 심하고 산후 우울증은 산욕기 즉 출산하고 나서 10일 정도 후부터 시작하여 심한 사람은 1년까지도 지속된다고 한다.
10여 년 전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진료실로 들어서던 한 산모가 생각난다. 임신 7주쯤의 초기 산모였는데 상담을 해 보니 인공 중절 수술을 원하는 상태였다. 수술을 말리는 쪽으로 설득하면서 사정을 들어보니 남편과 이혼 소송 중에 임신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이혼하려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혼 소중 중에 있다면 남편의 얼굴을 쳐다도 보기 싫을 텐데 그런 남편과의 사이에 임신이라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괴롭다고 호소하였다. 그런 상황이면 없던 우울증도 생길 판인데 그렇지 않아도 평소 우울증이 있어서 약을 복용하던 상태였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하면서 내게 중절 수술을 해 주길 요청하였다. 나는 중절 수술을 함으로써 겪을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나서 이왕 임신이 된 것이니 남편과도 상의를 하여 결정해서 1, 2 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지금은 나는 임신 중절 수술을 하지 않지만 그 당시는 정 불가피하면 인공 임신 중절 수술도 하던 때였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3 주인가 4 주인가 날짜가 많이 지나서 산모가 다시 방문하였다. 늦게 왔길래 출산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인가 했더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술해야겠다고 그렇게 서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임신 초반 삼 분기를 넘어서고 있어서 이미 수술이 위험해진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이 훨씬 더 높아졌으며 그래도 수술을 원하면 보호자 분과 함께 오시라고 설명을 드렸다. 내용을 가만히 듣던 산모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 진료실을 나갔다.
나가는 산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조언한 말이 이 분의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민스러웠다. 처음에 마음먹고 왔을 때 바로 수술해 주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울증까지 있는 산모가 집에 가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그 산모를 잊고 지냈다. 내가 그 산모를 다시 만난 건 대략 1년쯤 지난 후였다. 그 산모는 수술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였고 이혼하기로 했던 남편과는 화해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출산하고 가정도 지키게 되었다고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온 것이다. "선생님 덕분에 아기와 저의 생명을 구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의 어둡고 우울한 그 산모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서있었다.
우울증은 원래부터 성격상 그런 성향을 타고나서 겪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살면서 닥치는 여러 일로 인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살다 보면 힘든 상황, 고민스러운 경우들은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 고민과 우울감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인가 아니면 박차고 일어나 달릴 것인가는 그 누구보다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물론 주변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이 있다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그것이 임신 중인 산모의 주변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내게는 여러 소망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간절한 꿈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과 모두 함께 푸른 바다가 있는 해변의 그늘에 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가롭게 며칠 간이라도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물론 죽기 전에 그런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올 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글 초반에 언급한 교수의 말대로 목표를 낮게 잡는 것이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고 하니 이런 내 꿈도 포기하지 않으면 남아 있는 동안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으로 더 우울해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이루기 어려운 꿈이라서, 그래서 달성하지 못해서 우울해질망정 꿈마저 꾸지 않아야 한다면 과연 삶이란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어느 의사가 환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술도 끊으시고 담배도 끊고 기름진 고기는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무리한 성관계도 해롭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도박이나 유흥도 즐기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환자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해야 한다면 그러면 나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겁니까?”
여기 실은 라울 뒤피의 그림은 그런 내 소망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골랐다.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라울 뒤피라는 화가는 파란색을 좋아한 화가다. 그래서 그는 푸른 바다를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파란색은 우울함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지만 서구에서는 희망이나 자유처럼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 뒤피의 조국인 프랑스도 그렇고 국기에 파란색이 들어간 나라가 많다. 파란색은 신뢰감이나 안정감도 주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파란색 계통으로 도배된 방에서는 실제보다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으로 느낀다는 연구도 있다.
안정감을 주는 색과 우울을 의미하는 색이 같은 색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삶이란 것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 또는 눈부신 물결의 움직임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호수 정도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화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을 비추는 어떤 빛의 성질, 섬광, 대기의 꿈틀거림을 끊임없이 시야에 두어야 합니다."
라울 뒤피의 말이다.
“지금 잠시 빨간 신호등 때문에 멈추어 우울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파란 신호등이 켜지고 앞으로 힘차게 달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신호가 바뀌는 시기를 모를 뿐입니다. “
개똥 철학자 팔랑심의 말이다.
-여기 실은 그림-
라울 뒤피의 "니스, 천사의 해안의 황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