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던 시절 타 진료 과목의 전공의 1명이 자살한 사례가 있었다.
근무하던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교수님의 주도 하에 출산하였고 출산 시 난산이 되어 회음부와 함께 항문이 파열되었다. 1차 봉합으로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질 직장 누공이 형성되고 말아서 2차 봉합을 위해 인공 항문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 후 그 전공의가 자살하였다는 소문이 병원 내에 돌았다. 출산 후유증과 인공 항문으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했다.
회음부 누공이란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길 수 있는데 출산하는 과정에서 항문이나 직장이 파열된 후 생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항문 파열의 경우 일차 봉합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인공 항문을 수개월간 하면서 누공의 염증을 치료한 후 재 봉합하는 것을 택해야 한다. 말이 인공 항문이지 젊은 여성이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껏 내가 출산을 도운 산모들 중에도 항문 파열이 된 분이 세분 있다. 두 분은 일차 봉합으로 회복되었고 한분은 일차 봉합 (출산 후 회음부 봉합하면서 바로 파열 부위를 봉합하는 것)으로 회복되지 않아서 2차 수술도 받는 등 상당히 고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입원비등 상당한 금액의 치료비를 배상하여 드리기는 했지만 몸과 마음의 고생이 심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분만 시 회음부 파열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절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중 절개를 하거나 아예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 경우에 더 자주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측면 절개를 하는 경우에는 거의 생기지 않는데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랬다. 내가 경험한 3 건의 항문 파열은 자연주의 출산 붐으로 수년간 정중 절개만 주로 하거나 아예 절개를 하지 않던 시절에만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정중 절개는 잘하지 않는 편이고 아주 넉넉한 회음이 아니면 예방적 측면 절개를 많이 하고 있다. 드물게 생기는 부작용이긴 하지만 항문 파열로 인해서 올 수 있는 질 직장 누공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우리나라의 사례는 아니지만 이웃인 일본의 통계를 보면 임산부의 자살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국립 생육 의료연구센터가 2015∼2016년까지 각 지방 자치 단체의 자료를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지 1년 미만 기간에 사망한 임산부 총 357명 중 자살이 가장 많은 102명(임부 3, 산부 99명)을 차지하였고 한다. 이는 전체의 28.6%로 암 (75명)이나 심장 질환(28명) 보다도 많은 수치다. 출산과 관련된 출혈로 인한 사망(23명)이나 양수 색전증으로 인한 사망 (13명)도 적지는 않지만 자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렇게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 자살률이 높은 것은 특히 무직 여성의 경우 높았다고 하며 산후 우울증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도 비슷한 수치를 보여준다. 캐서린 골드 미국 미시간대 의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임신부 사망의 10%가 자살이며 이는 임산부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원인이라고 한다. 물론 그 이유 역시 산후 우울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산부의 사망 시 임신 출산과 관련 있는 직접 사인에 대한 통계는 있지만 그 외 사회 경제적 원인을 포함한 사인 분석 통계는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미국과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산모분들이 주로 읽어 보게 될 것 같아서 자살과 같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적당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 강조하면서 지나친 희망에만 부풀어 살면 안 된다는 것, 우리가 사는 인생에는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그대로 넣기로 했다. 해부학 실습 이야기도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혐오스러울 수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넣기로 하였다.
의과대학을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실습은 해부학 실습이다. 해부학은 인체의 골격 구조, 근육의 시작과 끝, 정맥과 동맥 등 혈관, 신경의 경로 등 우리 몸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인 골격과 장기를 배우는 학문이다. 사람의 몸에 200개도 넘도록 많은 뼈가 있고 또 그만큼이나 많은 각종 크기의 구멍들이 있다는 것도 그때 배운다.
해부학은 많은 뼈와 구멍, 근육과 혈관들로도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또 다른 것 때문에 학생들을 힘들게 했다. 바로 실제 사람의 시신을 놓고 하는 실습이 그것이다. 넓은 실습실에 10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차가운 테이블 위에 시신이 올려져 있다. 4 명의 학생이 한조가 되어 시신을 해부한다. 시신들의 상태는 각양각색이었는데 대부분 병사한 것처럼 보이거나 노쇠하여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사전에 시신 기증을 선택하여 이곳에 오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 없는 무연고 시신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여러 구의 시신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시신이 한구 있었다. 젊은 남자의 시신이었다. 병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아서 우리들은 사인이 무얼까 궁금해했다. 사인을 알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목에 굵은 반흔이 있었다. 목매어서 자살한 시신이거나 아니면 교수형을 당한 사형수의 시신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젊은 청년이 그런 모습으로 해부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나도 그때 처음 사람의 시신을 봤지만 아마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시신을 처음 본 느낌이 어땠는지는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공포감이나 두려움은 아니었다. 밝은 실습실에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습을 잘 마무리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마도 섬세한 감정을 무디게 했을지 모른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방부제인 포르말린의 지독한 냄새는 덤이다. 포르말린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고 눈도 따갑게 했는데 그것도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허망하다는 생각, 인생무상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벌거벗은 몸에 반쯤은 흰 포가 덮인 채 차가운 스테인리스 해부대 위에 누워 있는 시신이 불과 몇 달 전까지는 피가 돌고 숨을 쉬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의사로서의 사명감 혹은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다. 해부학 강의와 실습은 쉽지 않았고 우리들 중 일부는 그 감정들을 극복하고 넘어서지 못해서 내가 입학하던 해에 160명의 입학생 중 10% 정도 되는 학생들이 이 실습을 기점으로 중퇴를 하거나 전과를 했다. 그래서 이렇게 해부 실습 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현상을 라일락이 피는 시기인 점을 감안해 라일락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그때 12주간의 해부학 강의와 실습을 마무리하면서 든 생각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떤 모습의 인간이든 피가 돌고 온기가 있는 모습은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차갑게 굳어 있는 시신과는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생명의 아름다움이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오스트리아의 고흐라고 불리는 화가다. 여기 실은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다. 입은 벌린 채 환하게 웃는 얼굴이지만 눈에는 곧 쏟아질 것처럼 슬픈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수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남겼지만 대부분은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서 그린 자화상이다. 웃거나 울거나 하는 등의 희로애락의 표정을 강렬하게 담고 있는 경우는 게르스틀의 자화상과 구스타프 쿠르베의 자화상인 “절망에 빠진 남자” 정도다.
임신, 출산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는 나는 그렇게 조언하고 싶다. 이 모두는 시간이 지나면 다 보람이 되고 추억이 되는 일이니 잘 견디어 내라고 말이다. 고통이든 두려움이든 우울함이든 지나고 나면 별 것이 아니다.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은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듯 혼자인 여성에서 둘인 어머니로 탄생하는 과정에 필요한 영양소이고 햇빛이고 공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사실 그 말은 출산을 앞둔 산모들, 출산을 마치고 육아로 힘든 신후 맘들, 속 썩이는 미운 5살을 키우는 엄마들. 즉 나의 딸과 누이동생과 아내와 어머니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개업을 하면 사고 없이 잘 되라고 고사를 지낸다. 나도 처음에 은평구에 개업했을 때 부모님의 강권으로 고사라는 것을 지냈다. 삶은 돼지 머리를 상에 올려놓고 술을 따르면서 잘 되게 해 달라고 절을 한다. 그리고 절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살짝 벌린 돼지 입에 돈을 넣어 물게 했다. 어떤 유래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그때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돼지가 아주 시원하게 웃고 있네. 장사 잘 되겠다.”
축하의 말로 한 소리다. 웃는 모습처럼 벌어진 입 때문에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아무렴 돼지가 죽임을 당하면서 웃기야 했을까? 그냥 입 모양이 그런 것이지.”
그런 내 생각이 부정을 타서일까? 은평구에서는 5년밖에 개업을 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고 서대문구로 이전을 했다. 서대문구에서도 7년 버티다가 지금은 마포구로 와서 개업하고 있다. 예전 처음 개업할 때 고사 지내면서 속으로 품었던 생각이 부정을 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겠다.
그래도 그것은 돈다고 말했다는 갈릴레이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그것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죽음도 아름답지 않다.
-여기 실은 그림-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