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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Sep 09. 2021

#39.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아내: (진통이 오는지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으 아흐....

남편: 여보 힘내. 잘하고 있어.

아내: 아아. 뭐라도 좀 해 봐. 나는 아파 죽겠는데.

남편: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될까?

아내: 가만히 있지 말고 옆에서 제자리 뛰기라도 하던가.

남편: 알았어. 그럴게. 힘내. 여보 파이팅.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진통 산모 옆에서 제자리 달리기를 한다.

아내: (진통이 심해지는지 더 소리가 높아진다. ) 아아. 아파.... 아아 더 빨리.

남편: 그래 빨리 뛸게. (남편은 달리기 속도를 높인다.)

아내: 더 빨리 으윽.

남편: (더 빨리 달리느라 숨이 차서) 헉헉. 여보 힘내.

아내: (진통이 지나가서 잠시 여유로운 모습으로) 이제 지나갔어. 후....

남편: 후유. 그러면 나도 좀 천천히 뛸게. 땀도 좀 닦고.


위 대화는 얼마 전 출산하신 산모와 남편 두 분의 대화를  직원의 기억에 의존하여 적어 본 것이다. 실제와는 약간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이와 거의 비슷한 맥락의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 남편은 산모가 출산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그렇게 달리다가 쉬고 달리다가 쉬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아내는 진통을 하고 남편은 옆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 모습은 보기에는 우습지만 그래도 남편이 함께 고통을 나누는 모습이라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육아는 남편이 나누어서 할 수 있지만 아내의 입덧이든 출산의 고통이든  남편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입덧을 하는 아내처럼 남편도 입덧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드문 일이다. 전에 임부 체험용 옷을 빌려서 직접 입어 본 적이 있다. 모래주머니를 넣어 6kg 정도 무게가 나가도록 한 것인데 임신 중 늘어나는 체중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몇 시간 입고 있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임신부들은 그런 상태로 몇 달간을 보내는 것이니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대화를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내의 고통을 그렇게라도 함께 공유해 보려고 한 남편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출산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모든 남편들이  분만실에서 제자리 뛰기를 할 필요는 없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호흡을 돕는 방식이든, 등을 받치고 힘주기를 돕는 방식이든, 아니면 허리나 다리를 주무르는 방식이든 상관이 없다. 아니면 그저 묵묵히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부부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엄청나게 많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후회가 없도록 심사숙고하여 결정하고 일단 결정하여한 일은 후회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성숙한 인격과 자질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병원을 개원하거나 폐원하는 중요한 일조차도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지 못하였고 혼자 결정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출산을 앞둔 아내가 있는 분이나 혹은 앞으로 미래에 남편이 될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한다거나 어떤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나 자신부터 도덕군자처럼 살지 못한 사람이라 조언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오랜 기간 출산을 도운 산부인과 의사의 입장에서, 그리고 잘못 살아온 선배 남편의 입장에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특별한 순간에 산모가 평상시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남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싶은 몇 가지를  조언해 보려 한다. 더불어 시가 식구들께 하고 싶은 당부도 함께 싣는다.


--남편에게--


옷을 입을 때  고려해야 하는 3요소는 TPO라고 한다.  T는 Time, P는 Place, O는 Ocassion의 머리글자이다. 사실 TPO는 옷 입을 때보다 말할 때 더 중요하다.  말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말을 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않는 것은 옷을 잘못 입은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설저유부. 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뜻이다. 

출산할 때 산모는 아주 예민해진다.  이는 모든 동물이 마찬가지다. 이때 잘못 던진 한마디 말은 산모에게 평생의 상처가 된다. 이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아주 많다. 어떤 것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모른다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좋다. 반면 다행히도 해야 할 말은 많지 않다.  그것도 잘 모르겠다면 한마디만 하면 된다.

"잘하고 있어 대단해."

말는 데 딱 3초 걸린다. 출산에 걸리는 대략 10시간의 만 분의 일의 시간이다. 나는 무뚝뚝한 의사다. 그래서 산모분들께 "힘내세요"라든가 "애쓰셨다"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왠지 쑥스러워서 안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는 아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아내의 입장에서 나는 출산이 끝나면 볼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평생 보아야 할 사람이다. 의사야 무뚝뚝해도 남이니 이해가 되지만 남편의 생각 없는 말에는 크게 상처를 받는다. 남친은 남자 친구고 남편은 남자 내편이기 때문이다. 


출산이란 자신들의 2세가 태어나는 일이다. 아기는 두 사람의 유전자가 정확히 반씩 합쳐졌다. 49대 51도 아니고 51대 49도 아니다. 정말 너무도 공평한 법칙이다.  아기가 아버지의 유전자를 더 많이 혹은 어머니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가졌다면 세상은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출산은 공평하지 않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남자가 없어도 출산할 수 있다. 역할이 거의 없다고 해서 할 일이 아주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가 부모님들께--


진통 중이나 출산 후 면회와 관련한 당부

진통 중에는 산모의 몸 상태는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시가 식구들은 산모 입장에서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손님도 아니다.  출산 당일은 면회를 오지 않도록 하고 출산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은 면회를 와도 되기는 하지만 이때도 미리 연락을 해서 어느 시간이 편할지 의견을 물어보고 방문을 하는 것이 좋다. 면회 시간도 너무 길면 산모의 안정에 해로우므로 짧게 마치는 것이 좋다. 수고한 며느리를 격려도 하고 태어난 아기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긴 시간의 방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출산 방법과 관련한 당부

출산 방법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가 있는데 가능하면 자연분만이 좋지만 출산 방법은 산모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의료진과 상의하여 결정할 일이다. 이때 시가 식구들께서 자연분만을 고집한다거나 혹은 반대로 아기를 위해 제왕절개를 해서 출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불가피하여 제왕절개를  하게 된 상황에서 "네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되는데 그것을 못 참고 수술을 하고 말았구나" 하는 식으로 임신부를 비난하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된다.  중국의 사례지만 얼마 전에 가족들이 제왕절개 수술을 동의해 주지 않아 임신부가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산모와 아기 모두 사망한 사례도 있다. 출산 당시의 고통은 당사자인 산모 외에는 누구도 모른다. 시어머니는 과거에  출산을 해 보셨으니 그것을 아주 모르지는 않겠지만 세월이 지나서 잊기도 하였을 것이고 여성의 몸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산모의 절절한 고통을 알기는 어렵다.  따라서 출산 방법과 관련하여서는 일체의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출산 방법은 산모와 의료진이 함께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다.


성별과 관련한 당부

요즘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남아 선호 풍조가 심했던 과거에는 성별과 관련한 갈등이 많았다. 요즘도 그런 갈등이 아주 없지는 않다. 태어난 아기가 원하는 성별의 아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간혹  원하는 성별이 아닐 경우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분들이 있다. 당사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 어쩔 없지만 당사자도 아닌 주변 가족이 그렇게 말하면 산모의 입장에서 매우 서운함을 느낀다. 10달 동안 품고 수시간 내지 십 수 시간에 걸쳐 고생을 했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면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성별과 관련하여 비교가 될 수 있는 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거나 첫째 딸은 재산이라는 말도 좋지 않다. 은연중에 아들이면 좋고 딸이면 안 좋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기도 하고  둘째 딸은 재산이 아니고 빚이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하게 출산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산후조리와 관련한 당부

산후조리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영양 관리이고 둘째는 적절한 운동 관리이다. 과거에는 팔이나 다리가 아픈 것을 바람이 들어서라고 생각하고 옷을 두껍게 입고 양말을 신어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런 후유증이 생기는 것은 과거에 임신부들의 영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출산으로 칼슘이 많이 소실되면서 골다공증도 흔하게 온다. 심한 영양 부족, 심한 빈혈이 드물지 않다. 조리를 한다는 이유로 출산 후에 너무 누워만 있는 것도 좋지 않고 반대로 너무 일찍 무리한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다.  적절하게 산모가 견딜만한 정도의 움직이나 산보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출산하고 나서 바로 집안 일도 하고 밭일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육아도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특히 나도 아기를 낳아 보았는데 너는 이렇게 유난을 떠냐 하는 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시어머니도 과거 출산 경험이 있는 분이지만 과거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은 과거보다 출산 과정도 길어지고 더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 시대보다는 훨씬 더  난산의 사례가 많아졌다. 너무 일찍 직장에 복귀하도록 재촉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산후에 우울증도 많이 오는데 옆에서 잘 살펴보고 격려하고 지지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너무 유세를 한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매우 해롭다. 우울증은 무서운 병이라서 방치하면  위험하다. 심하면 약물 치료도 해야 한다. 회복에 필요한 시간도 사람마다 다르며 6주라고 하는 것은 최소한의 기본 회복 기간이며 그 이상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요즘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과거에는 육아를 다른 가족들이 나누어서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독박 육아라고 해서 산모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족들이 최대한 배려해야 하고 남편의 육아 참여는 그런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가 아니다. 딸처럼 혹은 어머니처럼 생각하려 해도 똑같을 수가 없다. 이것도 하지 말아라 저것도 하지 말아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어쨌든 진통이라는 것은 그리고 출산이라고 하는 것은 일생에 한두 번 겪는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한 번이라도 겪어 보거나  옆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다 떠나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힘든 과정에 있는 인간에게 그런 고통 중에 있지 않은 다른 인간이 도와줄 것은 없는지, 격려해 줄 것은 없는지, 위험한 상황은 아닌지 지켜보아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출산 과정에서 가족은 조언자가 아니다.  어떤 개입을 할 수 있는 관계자가 아니다. 그저 지지자일 뿐이다. 가족 특히 시가 식구들이 가져야 할 역할은 그것이며 필요한 말은 한마디다. 

"수고했다."  "애썼다. 하는 말이 필요할 뿐이다.


마르크 샤갈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제일 좋아하는 화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포근한 느낌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많다. 그가 그린 그림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하나 있는데 제목이 "출생"이라고 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상당히  세부 묘사가 충실하다.  사진의 왼쪽에 출산하는 여성이 있고  출산을 돕는 조산사가 신생아를 안고 있다. 산모는 지쳤으며 침대 뒤편 바닥의 남성의 역할은 불분명하다. 화면의 구석에는 소와 랍비 등 여러 인물들이 있어 출산하는 순간을 축하하는 것으로 보인다. 샤갈은 희망과 출발의 의미로 밝은 색조로 그리기는 하였으나 산부인과 의사로서 내가 볼 적에는 산모에게는 그리 편한 환경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출산의 순간에 여러 사람이 주변을 서성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출산은 시끄러운 파티처럼이 아니고 조용하고 숭고한 의식처럼 진행되면 좋을 것이다.



-여기 실은 그림-

마르크 샤갈의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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