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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Sep 09. 2021

#37. 그것은 그저 3천 원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그동안 감사하게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 직접 그린 그림을 주신 화가 분도 있고 손으로 깎아 만든 조각 작품, 본인이 쓴 책, 아티스트 분의  자작곡, 병원 로고를 그린 일러스트, 웨딩 사진가가 찍어준 병원 내부 사진, 순산 모임 분들이 주신 병실 TV와 벽 조명, 순산을 위한 짐볼과 회음부 방석, 거기에 얼마 전에는 LG 하우시스에서 다시 해준 인테리어까지. 물론 현금으로 선물을 주신 분도 있고 케이크이나 과일을 한가득  선물해 주신 분도 많았다. 병원 주변의 빵집의 빵과 떡집의 떡은 다 먹어 본 것 같다. 손 편지도 많이 받아서 앨범에 붙여두고 있는데 앨범이 벌써 4 권을 넘었다.


의사를 하면서 받은 선물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물이 하나 있다. 내가 의사가 되고 나서 가장 처음 받은 선물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 면허증을 받으면 우선 인턴이라는 1년짜리 수련의사 생활을 한다. 인턴은 한 달씩 각 진료 과목을 돌면서 의사로서의 실제 술기를 익히는 기간이다. 

인턴은 대학 병원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의사인데 나이도 어리고 해서 의사인 듯 의사 아닌 듯 애매한 위치다. 주로 하는 업무는 진료 차트 준비, 검사물 채취 및 검사 결과지 확인, 혈관 주사 등이다. 소변을 못 보는 환자의 배뇨나 변을 보지 못하는 환자의 장을 비우는 관장도 업무 중 하나다.


내과 인턴으로 일하던 때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대학병원이라 중증 환자들이 많았다. 어느 날 간경화로 간성 혼수상태인 할아버지의 관장을 도왔던 적이 있다. 관장은 비눗물이나 글리세린 같은 용액을 항문으로 넣어서 하는 관장도 있고 대장 내시경 검사 전에 하는 것처럼 완전 관장이 필요한 경우 설사제를 다량 먹어서 관장을 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변을 보지 못해 직장에 꽉 들어찬 변은 그런 방법으로는 빼낼 수가 없다. 간 기능 이상으로 변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독소가 몸에 쌓여 혼수상태가 개선이 되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 치료를 위해 관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경우에 시행하는 마지막 관장 방법이 핑거 에네마다. 우리말로 하면 손가락 관장이다. 손가락을 항문에 넣어서 변을 조금씩 조금씩 파내는 관장법이다. 손에 글러브를 끼고 하는 것이지만 오래 묶은 변이라 냄새도 냄새거니와  딱딱하면서도 몽글몽글한 느낌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그래서 핑거 에네마가 자신에게 걸리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요리조리 피하고자 꼼수를 쓰는 인턴도 많았다. 나야 운도 없는 판에 꼼수와도 거리가 먼 성격이라 할아버지의 관장을 맡게 되었다. 그 할아버지의 손 관장은 변이 워낙 단단하고 나오지 않아 30분 이상 거의 1시간쯤 걸렸던 기억이 난다. 두꺼운 가운을 입고 있어 덥기도 하여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을 좀 했다. 그런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는지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시던 할아버지의 부인되시는 할머니께서 관장을 끝내고 나가는 내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가운 주머니에 꾸깃꾸깃 접은 천 원짜리 3장을 넣어주셨다.

"수고했어요. 학생"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완강히 주시어 할 수 없이 받았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은 돌아가셨겠지만 그 냄새와 그 돈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그 3천 원은 그저 3천 원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의 표시일 것이다. 그리고 내 옷장과 서랍에는 그런 마음들이 곳곳에 보관되어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서 받은 잊히지 않는 선물도  역시 오래전에 받은 것으로 함께 근무했던 직원에게서 받은 것이다.

지방 의료원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대체 복무로 산부인과 과장으로 있을 때  진료실 보조 직원이 벤자민 고무나무를 선물해 주었다. 그때는 내가 젊어서 지금보다 더 성격이 불같았고  반대로 그 직원은 산부인과 근무를 처음 해보는 초보라서 실수가 잦았다.

수시로 잘못을 지적받고 혼나고는 해서 주눅이 들었는지 다른 선생님 앞에서는 그리  실수가 많지 않음에도 내 앞에서는 유독 실수를 많이 했다. 질정 하나 떨어 트렸다고 혼내고 환자 접수 순서를 틀리게 잘못 호명했다고 해서 엄하게 혼을 냈다. 사소한 실수를 그렇게 못되게 꾸짖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는 인색하고 꾸짖는 것에는 후하다.  


그런 긴장되는 분위기에 놓이다 보니 포셉으로 질정을 집어서 나에게 건네주면서 겁을 먹어 손을 부들부들 떨고는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안됬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도  인격적으로 미성숙 하지만 그때는 더 심하게 미성숙했을 때였다. 내가 하는 일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의료 관련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 변명이고 내가 강박적 성격인 탓이 클 것이다.

1년간의 의료원 근무를 마치고 내가 산부인과 과장으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이 왔다.

맨날 혼나기만 해서 주눅이 들어 내 얼굴도 똑바로 보지 못했던 그 직원이 쭈뼛쭈뼛하면서 작은 화분에 담은 한가닥 짜리 벤자민 고무나무를 아무 말 없이 내밀었다. 의외였다. 한두 달 전부터인가 접수 창가 유리병에 작은 나무 이파리가 하나 담겨 있는 것 같더니 내게 주려고 꺾꽂이를 해두었던 모양이다. 내가  선물을 받을 정도로 잘 대해 주지 못해서 의외였던 점도 있지만 내개 그렇게 무언가를 쑥 내밀 정도도 되지 못할 정도로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선물을 주었던 점이 더 의외였다. 


그 나무는 이사 다닐 때마다 반드시 함께 가지고 가고 분갈이도 중간중간해서 한 20년 정도 키웠다.  이파리 하나가 어른 키만큼 될 동안 키웠는데 몇 해 전 아주 추운 겨울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얼어 죽었다. 나무가 아까워서라기보다 그 직원에 대하여 일종의 속죄의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여 키웠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하였다. 그 직원은 지금도 병원 계통에서 근무하는지  궁금하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든 나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지금쯤은 다 씻겨졌으면 좋겠다. 언젠가라도 우연히 만나면 선물해준 고무나무 덕분에 내 마음의 죄책감도 많이 덜 수 있어서 고마웠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얼마 전 순산 체조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해서, 혹은 산모 수첩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해서 나에게 혼났다고 하는 내용을 어떤 산모 분의 출산 후기에서 봤다. 나는 여전히 못된 상사고 배려심 없는 원장이다. 칭찬에는 인색하고 잘못의 지적에는 예리한 내 성격은 그동안 받은 숱한 선물들이 부끄럽게도 아직 고치지 못했다.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항상 마음 저 깊은 곳에 있으면서 겉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오래전에 "마지막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졸작 소설을  산부인과 의사회 홈페이지에 연재한 적이 있다. 남자 주인공이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내가 오기 전에 떠나고 말았지만 나는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갔다.

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알려 주고 갔다. 꽃에 의미를 준 시인처럼 그녀는 갔지만 내 삶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일에서는 숨겨진 숭고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당장은 알기 어렵더라도 그녀의 고통과 나의 괴로움에도 반드시 그럴만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라고 해도 좋고 삶에 대한 의욕이라도 해도 좋고 그런 것을 주고 갔다.

그녀가 나에게 준 선물은 그런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는 것처럼 내가 나를 믿고 그들을 믿고 삶을 믿는 것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았다. 내일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태양이 뜰 것이다. 내게 힘든 가을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뒷모습의 여인을 많이 그린 빌헬름 함메르쇼이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을 그린 덴마크의 화가로 피터 일스테드라는 화가가 있다. 함메르쇼이의 처남이기도 한 그는 잔잔한 실내의 포근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의 그림은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혀 준다. 여기 실은 그림은 젊은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서랍장에 올려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그녀에게 아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여기 실은 그림-

피터 일스테드의 “엄마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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