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 질염의 치료 시 질정을 반으로 잘라서 넣고 보험 청구에는 온전히 1 개를 쓴 것으로 한다.
. 막달 산모가 지방인 친정으로 가서 출산하겠다고 하면 내진하면서 진통이 오는 질정 촉진제를 몰래 넣어서 진통이 오도록 해서 친정에 못 가고 자신의 병원에서 출산하게 만든다.
. 자궁 경부 미란증이 없음에도 심하게 헐어 있다고 하면서 비보험의 레이저 치료가 필요하다고 겁을 준다.
. 질염 치료를 위해서 오신 분에게 미혼 여성 검진 등 여러 세트 검사를 권하여 받게 한다.
. 보험 적용이 되는 질염 균검사를 비보험으로 해서 비용을 많이 받는다.
. 간단히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해 갔는데 바이러스 검사와 질확대경 검사를 설명도 없이 해서 비용이 대폭 많이 나왔다.
. 수술이 필요 없는 작은 난소 물혹이나 근종을 간단히 복강경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수술을 유도한다.
. 둘째를 낳고 산후 진찰을 오는 모든 산모에게 질이 늘어져서 남편이 바람 날 것이라고 하면서 이쁜이 수술 (질을 축소시켜 주는 수술)을 모두 권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를 찾아온 분들로부터 직접 혹은 그 병원에 근무하던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어서 알게 된 내용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모두 과잉 진료라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특수성이 있고 필요한 검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학은 수학이 아니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여약사가 있다. 나도 의사이다 보니 만나면 아무래도 의료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만나서 위에 말한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인이 다니던 여의사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자신이 당한 것과 완전히 같은 상황이라고 하면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그 병원을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그런 진찰을 받으러 올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내의 친구이기도 하여 오랜 친분이 있어 나에게 부인과 진찰을 받는 것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른 정보를 준다고 한 것이 더 이상 의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진찰을 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원래는 비용이 좀 들기는 했지만 잘 받고 있던 부인과 검진을 못 받게 되고 말았다. 과연 내가 한 일이 잘한 일일까?
방송 덕분에든 지인의 추천으로든 진찰을 받으러 경기도에서도 오고 강원도 심지어는 충청 이남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주로 산모분들인 경우가 많은데 한 시간 이상 거리의 진찰은 산모나 태아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근처의 분만 병원을 정해서 다니시라고 조언해 드린다.
그럼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솔직하고 양심이 있는 의사를 어떻게 찾아서 진료를 받을 것인가?
나를 찾아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그건 정답이 아니다.
어떤 사기꾼도 본인이 사기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도 사기꾼 의사는 아니다. 그러나 사기꾼이 아니라는 확증도 없다.
그리고 설사 사기꾼이 아닌 믿을만한 의사라고 해도 멀리서 나를 찾아오는 것도 좋은 답은 아니다. 내가 불사신으로 죽지 않고 살아서 영구히 진료를 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자신이 진료를 받는 의사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통해 믿을 만한 의사를 찾아보되 기본적으로 믿을만한 의사인지 아닌지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본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의료 외적인 것 즉 병원의 규모, 의사의 수, 병원 장비와 시설, 의사와 직원의 친절함, 진료 비용 정도뿐이다.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원칙과 양심에 따라 진료를 하는지 의료의 질 자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신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치료 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믿음에도 불구하고 원칙에 어긋난 진료를 하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사를 골라내고 퇴출시킬 방법은 없다.
"너 진통 산모가 있어서 여기 못 올지 모른다고 했잖아? 그 산모는 출산했어?"
"응 그랬는데 그냥 째고 왔어."
"잘했다. 우리가 일 년 만에 처음 얼굴 보는 거지? 요즘 분만은 얼마나 하니?"
"글쎄 한 2, 30명 되나?"
십여 년 전 같은 대학 병원 산부인과 출신 의사들 모임인 의국 송년회에 갔을 때 옆 테이블에 앉은 선배 의사들의 대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여기서 째고 왔다는 말은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하였다는 뜻이다. 어떤 사유로 수술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술할 수밖에 없는 사정인데 조금 당겨서 수술을 하게 될 것일 수도 있고 수술할 필요가 없는 산모를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의학적 타당성 없이 수술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시간만 좀 더 여유 있게 기다리면 자연 분만이 충분히 가능한 산모를 저녁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수술한 경우라면 의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만한 일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런 이유로 수술했다고 해도 사실대로 사정을 말하고 수술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저녁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수술해야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의사도 많지 않겠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래도 좋다고 하는 산모나 가족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해당 선배는 모임에 가지 않거나 아니면 모임에 가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거짓으로 내세우는 구실은 아마도 다음 중 하나일 것이다.
1. 골반이 좁아서 자연분만이 힘들겠다.-->협골반으로 수술한 것이 전체의 제왕절개의 50% 임. 실제 통계상 협골반의 10배 이상이다.
2. 아기가 떠 있다.--> 진통이 와서 힘을 주기 전에는 태아는 원래 떠있다.
3. 골반이 통뼈라서 안 되겠다.--> 어떤 사람은 골반이 통뼈고 어떤 사람은 분리된 뼈고 그런 건 없다. 골반은 원래 하나로 붙은 통뼈다.
물론 골반이 지나치게 좁은 분도 분명히 있고 진통이 한참 진행되었음에도 태아가 하강하지 않는 난산도 있다. 산모의 나이가 35세 이상인 노산인 경우 뼈의 연결 부위인 연골이 유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을 산모들이 이해하기 쉽게 통뼈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도 사람이고 사생활이 있다. 그러나 진통 중인 산모가 있다면 내 버려두고 모임에 간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의학적 타당성이 없이 수술이든 검사든 어떤 처치를 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피해야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담당 의사가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산모나 가족은 물론이고 그 상황에서 함께 있은 의사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제삼자는 설사 의사라도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의학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아서 이런 선택이 맞는 것인지 저런 선택이 맞는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2017년 건강 보험 심사 평가원의 '제왕절개 분만율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17년 우리나라 총 출산 산모는 352,789명이었다. 이중 제왕절개로 출산한 산모는 158,704 명으로 총 제왕절개 수술률은 45.0%이 된다. 초산 산모의 제왕절개 수술률은 48.8%로 거의 50%에 육박한다. 제왕절개 수술률이 53%인 터키를 빼고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참고로 2017년 OECD 평균 제왕절개 수술률은 26.6% 였으며 제왕절개 수술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이스라엘로 14.8%였다.
제왕절개가 많아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령 임신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둘째, 의료 분쟁의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셋째 한 자녀만 낳고 단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등이다. 2017년 출산 산모 중 28.9%가 35세 이상이었다. 35세 이상의 산모 비율은 2006년 13.9%에서 2017년까지 2배 이상 늘어났다. 고령 임신과 출산이 늘어나면 임신 합병증의 발생 위험도 높아지며 골반의 유연함은 떨어진다. 당연히 제왕절개 수술 사례가 많아지게 된다. 의료 분쟁은 그 비율도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의사의 과실이 인정될 경우의 배상 비용은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렵게 대폭 늘어났다.
노산 출산이나 한 자녀만 낳는 경향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결혼 연령은 앞으로도 점점 늦어질 것이고 2명 이상의 다자녀를 출산하는 부부도 줄면 줄었지 더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제왕절개 수술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은 분쟁의 위험으로 초래된 방어적 진료를 얼마나 줄이는가 하는 것뿐이다.
방어적 진료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산모와 가족, 의료진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
나는 의사와 같은 전문가에게는 솔직함이 결국은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친절함도 좋고 전문성이 있는 것도 좋고 실력도 갖추어야 하지만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진실한 마음이다. 다만 그 진실을 바탕으로 한 솔직함이 단점이 되어 자신에게 날카로운 칼로 되돌아오는 일은 의사들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신뢰란 어떤 자료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상호 간에 관계를 이어 오면서 사소한 여러 가지가 모여서 형성이 된다.
이스터 에그 (Easter Egg)는 원래는 부활절 달걀이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책이나 게임 등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을 뜻한다. 서양에서 부활절에 달걀을 미리 집안 어디엔가 숨겨두고 아이들이 숨겨놓은 달걀을 찾도록 하는 풍습에서 이스터 에그라는 말이 나왔다. 그림들에도 화가가 그런 식으로 숨겨놓은 이스터 에그들이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다. 그는 감추어진 연인으로 알려진 알바 공작부인을 모델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중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알바 공작부인"의 그림에서는 알바 공작부인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녀가 가리키는 바닥에는 희미한 글씨로 "Solo Goya"라고 쓰여있다. 오직 고야뿐이라는 뜻이다. 고야는 흠모하는 여인이 자기만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 고야처럼 그림을 그렸다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자리에 나는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Solo Confianza"
오직 신뢰뿐이라는 뜻이다.
-여기 실은 그림-
프란시스코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