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금통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빠르게 축적되는 지식과 기술의 시대임에도 과거로 간다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이 시간 속에서 과거를 향하는 방법을 떠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여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거나 고르지 않았던 다른 선택지가 가져올 결과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나와 연결된 그 모든 미세한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와, 나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혹여 나비효과로 인해 크게 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더 겁이 나는 일이다.
누군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돌아가겠느냐? 라고 물어왔을 때 어느 시점, 어떤 상황, 지금까지의 기억 등등 여러 가지 조건을 물어보며 이런저런 대답은 해왔지만 사실 현재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과거로 가는 것 자체에 흥미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들었던 생각 한 가지. 나에겐 과거로 꼭 가고 싶은 분명하고도 절실한 이유가 하나 생겼다. 기억이 지워진 채로, 지금까지 이뤘던 것들을 다 잃음에도, 무수한 선택지들의 맨 앞에 서서 다시 하나하나 선택해야 한다 하더라도 꼭 되돌려보고 싶은.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고, 2살 터울 남동생은 학교에 1년 일찍 입학 해 나보다 한 학년 아래 학년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형한테 이런저런 개인적인 고민은 한 번도 털어놓은 적 없었던 동생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내가 있던 교실까지 찾아와서 나를 불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급생 누군가와 다투었다는 것 같았다. 그게 싸움인지 괴롭힘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동생보다 2년을 더 살았던 그 당시의 나는, 친구들 간의 싸움에서 형이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해도 뒤이어 밀려올 수 있는 더 큰 문제들이 동생 또는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더 이상 다투지 말라는 말만 한 채 동생을 되돌려 보냈다.
그 후로 동생은 커가면서도 여전히 나에게는 개인적인 고민을 잘 털어놓지 않았는데 나는 그 이유가 동생 마음에 자리 잡은 어릴 적 본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형에 대한 부서진 신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결혼생활을 정리하셔서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살며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일을 하시며 따로 계셨기 때문에 동생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은 형이었을 텐데 그 형이 본인을 감싸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 후의 고민들도 말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용기 내어 말했을 동생의 고충을 철이 든 척 가장 나은 해결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돌려보냈던 그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내가 가서 싸워주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당장에 달려가 내 동생을 괴롭힌 녀석이든 녀석들이든 혼을 내주고, 혹여나 형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꼈을 동생에게 형이 언제나 옆에 있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채워주고 싶다.
그러나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그때의 그러지 못했던 나와, 내가 그러지 못함으로 인해 동생에게 사무쳤을 알 수 없는 그 감정들이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사무치고 있다.
누군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는 말에 이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