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

기억저금통

by 팔월의밤



"내가 이런 걸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했니?"



열자마자 쥐 인형이 반겨주는 선풍기 스위치 단자함을 열고 하신 말씀이었다. 삶을 살아오시며 많은 것을 겪은 탓일까. 고3임에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장난을 치던 우리들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 보이는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친근했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수업 분위기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지 않았다. 늘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분위기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떠들던 나에게 수업이 끝난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씀하셨고 선생님이 화가 나신 거라 생각한 나는 한 소리 듣겠구나 생각하며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지만, 예상과 다르게 칭찬으로 시작하시는 선생님이었다.


"밤아, 니가 한 번씩 수업시간에 하는 장난이나 대화들이 수업 분위기를 더욱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든다는 걸 알아. 그래서 그 부분을 탓하거나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그것이 조금 지나칠 때가 있어. 오히려 그럴 땐 원활한 수업 진행을 막기도 해.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만 조심해 준다면 선생님은 더 바랄 게 없어.


나는 너의 웃음을 보면서 참 밝은 아이라고 생각해. 누구와도 모나게 지내지 않고 항상 웃음을 담고 다니는 건 정말 보기 좋아. 그런데 나는 너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말이야.



그 웃음 뒤에 슬픔이 보여. "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내가 선생님 앞에 벌거벗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두꺼운 벽이 와르르 다 무너져 내가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남들에게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많은 것들로 가리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굳이 남들에게 나의 힘든 상황을 얘기하지 않거나 내 마음은 숨기고 그저 괜찮다고 말했다. 무언가 가지고 싶어도, 어딘가 가고 싶어도, 무언가 먹고 싶어도 굳이 남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참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고, 누구 때문인지 탓하려 하지도 않았다. 나하나 참고 내 감정을 숨기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나쁜 감정들 또한 마음 저 어딘가로 치워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것들을 덮어두며 새어 나온 부산물들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전부 가리지 못한 나의 어설픈 방어에 미세하게 흘러나오던 슬픈 감정을 선생님께 들켜버린 걸까 싶어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안도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나를 그저 밝은 아이로만 생각하고 지내오던 사람들 틈에서 나의 내면을 들어다 보려 했던 첫 타인이었다. 부끄러움과 동시에 뭔가 포근한 따뜻함이 느껴졌었다. 아직도 선생님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는 진짜 나의 감정들을 마주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다.


그 뒤로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넘겨짚었다면 미안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보여"라고 하시며 앞서 말씀하셨던 수업 분위기에 대해 한 번 더 말씀하시곤 자연스레 대화를 끝냈다고 기억한다.


나는 달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애써 앞면만 보여주는 달을 보며 그때의 나와 달이 닮아있지 않나 생각한다. 달의 한 면만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뒷면을 보려 했던, 혹은 봐버린 그 선생님의 말씀은 내 학창 시절의 기억 중 꽤나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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