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금통
내가 직접 한 보호자 사인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할아버지의 시간을 뺏을 일도, 글자를 모르시는 할머니를 당황시킬 일도, 일주일에 한 번 아들들을 보러 오시는 아버지를 귀찮게 할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새 학기마다 적어내야 했던 가족관계 및 연락처에 굳이 사실 그대로 적지 않는 것도 편했다. 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만 했는지, 왜 엄마는 같이 살지 않는지, 왜 아버지가 따로 타지에 계시는지 매해 바뀌는 담임선생님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보냈던 수많은 통지서들의 보호자 사인은 전부 나의 몫이었다. 가정통신문, 현장학습 확인서, 급식신청서, 우유 신청서, 성적표까지 모두. 그런 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저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가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사인이 내 몫인 건 변함없었던 와중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늦은 저녁 조교들은 으레 그렇듯이 종이컵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며 가족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주었고, 각자 한 장씩 가족들에게 편지를 한 장씩 쓰게 하였다.
나는 이 편지의 수신인이 내가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괜히 부끄러워하면서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던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편지에 힘을 싣지 않았다. 그래도 조교들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를 향한 편지임을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에게로 시작한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아버지에게
안녕하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급하게 써버린 척하며 편지지를 얼른 접어 마무리했다. 그렇게 애초에 목적지 없는 나의 가벼운 편지는 자연스레 며칠이 지나 우리 집 우편함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내가 제일 먼저 우편함을 열어 그것을 확인할 거란 것을 잘 알기에 도착하는 대로 받아서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늘 토요일에 내려오시던 아버지가 금요일 오후에 내려오시면서 생겼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나보다 더 먼저 우편함을 확인하신 것은 아버지였고, 아들이 당신에게 보낸 편지를 당연히 열어보셨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뜯으셨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하교한 나는 집에 계신 아버지를 보고 반가움에 인사했지만, 아버지는 손에 편지를 쥐고 계셨고 나에게 서운함이 쏟아졌다. 내가 비록 너희를 이렇게 키우고 있지만 정말 너는 나에게 할 말이 이것밖에 없었느냐고. 너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서운함에 소리치던 아버지에게 나는 차분히 설명을 했다. 편지를 써도 내가 받을 거라는 것을 알아서 그냥 그렇게 썼다고, 아버지에게 진짜 편지를 드릴 생각으로 그렇게 쓴 것은 아니라고. 말을 뱉고 나니 드는 생각은 지금 내 말이 혹여 아버지를 더 슬프게 할까? 였다.
내가 쓴 편지를 내가 확인하고, 보호자 사인은 모두 내가 직접 해야 했던 지금 우리 집 상황의 원인을 전부 아버지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 실은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걱정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이 저 가벼운 편지와 같다고 오해하시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도 당신에게 온 편지를 보고 들뜨셨을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애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아들이라 더 기대를 하고 봉투를 뜯지 않으셨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시리다.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법도 했지만 아직도 편지 한 통 쓰지 않은 난 여전히 못난 아들이다.
이번에야말로 아버지에게 나의 마음을 담아 꽉꽉 채운 편지를 써봐야겠다.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더 알게 되는 것이지만 실은 알고 있었더라고 일을 끝내고 고단한 가운데 매주 주말 서울에서 두 시간을 운전해 내려오시던 아버지의 노고와 희생을, 좋은 것만 해주고 싶어 늘 차를 가득 채워오시던 아버지의 사랑을.
실은 다 알고 있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