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금통
"할아버지는요?"
나는 밥상에 커다란 대접에 담긴 국수를 보며 묻는다.
아까 전화했는데 아직도 안 오셨다고 다시 전화해 보신다는 할머니
"아니, 점심해 놨다고 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오시니껴. 국시 다 뿔어 터진다. 에이 고마 진짜"
짜증을 내며 끊으신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에게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끼리 먹자며 어여 먹으라고 하셨다. 늘 내 그릇은 제일 큰 대접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먹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싹 비워져 있던 것이 할머니 국수였다.
먹다 보니 곧 할아버지의 오토바이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고,
급하게 집으로 들어오신 할아버지
"미안허네, 내 급히 오려고 했는데 이래 되었네. 많이 뿔어버렸는가?"
그러자 할머니는
ㅋ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웃으시더니 (진짜 거의 저렇게 웃으셨다.)
"사실 아직 당신 국시는 삶지도 않았으니까, 기다리소. 인자 물 올리니더."
하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턱 올리셨다. 나는 그제야 같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할아버지는 나이 많은 이를 놀렸다며 같이 웃으셨는데, 분명히 조금 씁쓸한 눈빛이었다. 분명히...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늦게 오니까 그렇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카운터 치셨고 할아버지는 씁쓸하게 식탁에 앉아 계셨었다.
보통 할머니는 점심 밥 하기 귀찮다며 "오늘은 국시 먹자 국시."라고 많이 말씀하셨었는데 내가 직접 국수를 만들 때는 생각보다 간단하진 않다. 면도 삶고, 육수도 준비하고, 위에 올릴 고명도 노란 지단, 하얀 지단, 애호박 조금에 파 또는 김도 올린다. 국수에 넣어 먹을 양념장까지 만들려면 나에겐 그렇게 손쉬운 음식은 아닌데 할머니는 언제나 귀찮아하시며 대충 먹자며 나온 것이 그 잔치국수였다.
20대 초반부터 시집을 와 평생 할아버지와 5남매의 밥을 해주시고, 자식들 다 크니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식들의 자식까지 돌보아야 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밥상은 얼마나 무수히 차려져 왔던 걸까? 어쩌면 할머니의 음식 숙련도는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사랑 그 크기와 같은 게 아닐까? 나도 할머니를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아직 서툰 내 국수 솜씨를 보면 할머니의 사랑이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안다.
손주들도 하나씩 객지로 떠나고 할아버지 마저 먼저 떠나시니 할머니의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셨다. 이제 더 이상 뒷바라지 하지 않으셔도 괜찮고, 더 이상 힘들게 식구들 먹일 걱정은 안 하셔도 되는데도 기력이 떨어지셨다. 힘든 뒷바라지였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할머니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시간은 흐르고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의 마지막이 찾아올 것임이 분명하지만 괜히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고 싶었던 거 같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할머니에게 여러 가지 음식 배워보기였다. 시간이 아직 있다는 생각에 몇 가지 배우지도 못했다.
속절없는 시간은 안일했던 나에게 결국 경보를 울려댔다. 할머니의 기억이 바스러지고 있다고 했다. 이제 할머니의 요리를 배우기는 어려워졌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냥 호들갑 좀 떨면서 요리를 배우고, 할머니에게 맛을 보이며 이게 아니라고 꾸중도 듣고, 이제야 잘하네 칭찬도 들어볼 걸..
두 그릇을 먹이고도 한 그릇 더 먹으라던 그 사랑은 우리 가족 모두의 원동력이었고 새벽부터 일어나 김이 나게 딱 맞춰진 그 사랑도, 보글보글 알맞게 끓어 연신 퍼먹던 그 사랑도, 손주들 행여 반찬 투정할까 한 번씩 특별히 해주시던 그 사랑들도 모두 내가 기억할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산더미 같은 국시는 아니지만, 오늘은 국수를 만들어 먹고 할머니께 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