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금통
와, 절대 안 까먹을 것 같아요.
와, 생일이 이브라고요? 특별해 보여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잊지 않고 제가 꼭 축하할게요.
내가 나의 생일을 공개하면 보통 이런 반응이다. 그래서 살짝 기대도 했었지만 막상 이브 날이 되면 은근히 조용했다. 날이 날이다 보니 내 생일보다는 본인의 연인들, 가족들 챙기기에 더 집중하게 될 테니 내 생일 정도 잊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내 생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생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초등학생시절 나는 내 주변 친구들의 생일에 과자를 가득 담은 박스 하나씩을 선물했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내 생일날, 어린 마음에 친구들이 나에게 무엇을 줄지 기대를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선물을 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고, 축하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조금은 용기 내서 물어보았다.
"니들 오늘 내 생일인데, 왜 생일 선물 안 주냐?"
한 친구가 말했다.
"니 생일 파티 안 했잖아."
아, 이게 파티를 해야 주고받는 거였나? 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주고 싶으면 줬었는데. 조금 서운했다.
다음 해였나? 몇몇 친구들을 모아놓고 시내 패스트푸드 점에서 내 생일파티라는 걸 했다. 고모가 와서 어린 조카의 생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 그냥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생일 파티였다. 우린 패스트푸드점 특유의 작은 테이블을 헤집어 억지로 공간을 만들고 케이크를 올려놓고 초를 켜고 친구들은 노래까지 불러줬다.
케이크를 자르려는데, 사실 자를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 나누지 않고 그냥 먹으려고 해도 집기가 없었다. 어색한 공기가 잠깐 흘렀고 당당히 박스 위에 놓여있던 케이크는 다시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 아무렇지 않게 파티는 마무리되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았던 그 파티는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던 걸까? 다시 포장된 케이크처럼 내가 내 생일을 대하는 마음도 같이 들어가 버렸다.
그냥 나에겐 모든 게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생일 파티는 해야만 한다는 친구의 권유에 진행했던 파티. 괜스레 친구들의 진심이 어디까지일까를 재던 내 마음. 어린 조카를 위해 시간 내 준 고모를 보고 드는 죄송스러움. 고모에게 부탁했을 아버지의 마음.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던 상황.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내 생일을 축하받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 생일파티도 케이크를 올리기 위해 억지로 공간을 만들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꼭 그날 때문은 아니겠지만 난 지금도 내 생일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는다.
그래서 예전엔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며 철석같이 약속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당일이 되어 조용하다면 역시 그렇지 하고 끄덕끄덕하곤 했는데, 이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생일날에 대해 말 한마디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오히려 특별한 날에 태어난 것 같아 으쓱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내 생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둘째치고 엄마, 아버지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건 맞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이브에 태어나 항상 특별하다고 말씀해 주셨고 이브날이라고 롤케이크도 받으셨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조차 그 강원도 산골로 케이크를 보내주시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도 잘 안다.
사실은 나의 탄생에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축하하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또 지금은 바로 내 곁에서 나의 생일날 날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하는 아내도 있다. 이제는 나도 내 생일을 조금은 좋아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는데, 요 며칠 전 내 생일을 알게 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와, 절대 안 까먹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