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엔 씁쓸한 맛이 있다. 2.

기억저금통

by 팔월의밤

1편 https://brunch.co.kr/@palbam/19




말 그대로 청천벽력. 태어난 지 8년, 6년밖에 안된 우리에겐 진짜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형들은 자신들이 백 원을 더 넣고 만들어진 것을 나눠주겠다며 백 원을 하나 더 넣었다. 그리고 그 형들은 우리에게 국자를 넘겨받아 손에 쥐었다.



'형아...'

'그래도, 좋은 형들인가?'



형들 곁에서, 또 그렇게 가까이는 아닌 위치에서 쭈뼛쭈뼛 속닥거리고만 있던 형제가 있었다.






사실 달고나는 먹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드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우리는 그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지분은 우리가 50프로나 가지고 있지만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가득한 설탕을 천천히 녹이고 넣고 싶은 만큼 소다를 콕 찍어 부풀리는, 그 재미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모든 걸 잃는 것보다는 달고나라도 반 나눠 받는 게 어딘가.


그렇게 달고나가 완성되었고 우리는 형들이 달고나를 나눠주길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달고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형들은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어버리고 있었다. 백 원이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기대하며 걸었던 그 기쁨의 길은, 겨우 백 원으로 누리려고 했던 오만과 슬픔의 길이 되어 풀 죽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엔 누가 있는가! 바로 우리의 해결사이자 슈퍼맨 '아빠'가 있었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아버지는 화가 났다. 아버지는 그 녀석들의 고개를 돌려버리겠다고 했다. 우리의 서러움을 풀어주려고 과장해서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에 동생은 놀라서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아빠, 근데..고개는 돌리지 말자."


아버지는 알겠다며 웃으셨으나, 사실 나는 조금 돌려도 괜찮을 거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긴 했다.


그렇게 지원군을 데리고 온 우린 그 길을 당당히 걸었다. 혹여나 이미 집으로 가버렸으면 어쩌지 걱정도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냥 마주치지 않아도 괜찮겠다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그 형들은 아직도 문방구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속닥속닥

'아빠, 저 형들이야.'


아버지는 가까이 가서 형들을 불러 세웠다.


"너희가 얘들이랑 같이 달고나 먹으려고 했던 애들 맞니?"


아버지는 확인 차 딱 저것만 물어봤는데 그 커다랗던 형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 뒤에 다리 하나씩을 꼭 쥐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그 형들을 다독거려 주었다. 형들의 말은 우리에게 나눠 주려고 했으나,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벌써 가고 없더라는 입장이었다. 아버지도 우리에게 그것이 맞느냐고 되물었고, 그런 거 같다며 고개 끄덕여줬다.


하지만 형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우린 한참 동안이나 멀어져 가는 그 형들을 지켜보다가 포기하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서 다 큰 형이 눈물을 보이고 있어서 조금 후련하기도 했고, 마음이 약해진 탓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또 하나는 이것도 거짓인 게 밝혀지면 아버지가 혹여 진짜로 고개를 돌려버릴까 싶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그 특유의 여유로움과 느긋한 느낌의, 주말이 시작되는 문턱의 학교 앞 문방구에서 우리는 인생의 쓴 맛이라는 예고편을 본 거 같다. 그날 달고나는 입에도 못 댔지만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그 길에 입안엔 단맛이 감돌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잡아준 그 손도 달달했나 보다.


지금도 나는 달고나만 보면 이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