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 아침. 새벽 4시에 깼다. 병원에서는 네다섯 시쯤부터 간호사들이 들락거리면서 불도 켜지고 정신없다. 조금 더 뒤척이다 일어나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다. 파란색 수술복도 입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님이 오셔서 링거를 꽂아주었다. 페스티벌 준비 완료! 이제 조금 실감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얼른 현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그러고도 한참이나 지난 8시나 돼서야 교수님이 등장했다. 기다리다 지쳐 살짝 잠에 들었다.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교수, 의사 두 명, 간호사 한 명이 몰아치고 사라졌다. 오전에 수술할 거라고 했다. 내가 두 번째로 큰 도토리라 두 번짼가보다. 얼른 가족과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신마취에 대해서 읽어보고 있으니, 송 씨가 떨고 있었다. 송 씨는 오늘의 가장 큰 도토리다.
“자고 일어나면 끝나있을 거예요!”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해보지만 송 씨의 표정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송 씨가 휠체어를 타고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 또한 데리러 왔다. 엑스레이실을 들러서 엑스레이를 찍고, 수술실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아직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휠체어를 타는 게 영 어색하다. 심지어 직원이 계속 밀어준다. 일어나서 걷겠다고 했더니 거절당했다. 흠. 직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다른 직원과 수다를 열렬히 떨더니 지하 1층에 도착하자마자 수술실에다 넣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엑스레이..!” 짧은 외마디에 “아 맞다.”라며 엑스레이실로 데려다주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수술실로 가려는 찰나, 이번엔 엑스레이실에서 다시 부른다. 까먹고 안 찍은 게 있단다.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우주의 신호인 건가? 지금 도망칠 타이밍인가? 요란한 우주의 신호에도 무색하게 세 번째 시도에는 수술실 문이 열렸다. 수술실 앞에 환자들이 대기하는 곳에 나를 세운다. 직원은 “수술하기 전에 액땜을 많이 하셨네요?” 하더니 사라졌다. 그저 너털웃음을 지을 수밖에. 직원들이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닐까? 어제부터 극히 피곤해 보였던 직원들의 얼굴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다. 수술할 때 실수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후.. 슬슬 걱정과 긴장감이 올라왔다.
액땜. 큰 불운을 작은 불운으로 막는 건데, 수술이 얼마나 잘되려고 이렇게 자잘한 액땜이 계속되는 걸까! 수술같이 한 번의 작업으로 앞으로가 결정 나는, 그런 무서운 일을 앞두고 있으면 작은 신호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누군가는 수술하는 거 자체가 액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액땜이면 어떻고 액땜이 아니면 어떠랴. 액땜은 진짜로 액을 막았다기보다, 작은 불운들로 경각심을 깨워주는 걸 텐데. 무릎을 다쳐버린 바람에 관절에 관해서 공부하게 되었고, 보험도 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고,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러니 남은 생에 대한 태도가 조금 달라지리라. 그렇게 큰 불운을 막을 수 있는 거겠지. 자세, 습관, 일상 음식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액땜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수술실 앞에 앉아서 20분 정도 기다리면 된다더니 좀처럼 부르지 않는다. 피가 묻은 시트가 있는 침상, 양 갈래머리를 하고 울상을 한 사람들, 정신 없이 바쁜 의료진 (혹은 수다 떠는 의료진) 그리고 마취에 대한 설명 애니메이션을 여러 번 봤다. 마취 애니메이션은 처음 봤을 때는 무시무시했는데, 10번쯤 보니 점점 졸려왔다. 이제 전신마취에 대한 건 외울 지경이다. 휠체어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누가 지나가면 나를 데리러 왔나? 하지만 무심히 스쳐 가면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졸았다. 10시가 가까워지니 전공의라는 사람이 왔다.
“전에 수술하시던 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대기시간이 길어졌어요. 지금 끝나서 수술실 정리 중에 있으니 20분 정도만 더 기다리시면 됩니다. 많이 기다리신 만큼 더 꼼꼼하게 해드릴게요.”
고마운 말이지만 어딘가 서늘해졌다. 많이 안 기다린 사람은 좀 대충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어쨌든 송 씨의 수술이 길어졌다고 했던 게 걱정되었다. 송 씨의 수술이 잘 되었냐고 물었더니, 생각보다 관절염이 심해서 그걸 치료하느라 늦어진 거고 수술은 잘 되었다고 말했다. 하긴, 의사 입장에서 수술이 잘 안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수술이 잘 되었냐는 질문은 결국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침내 10시 반경, 마취실 입장.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 아주 커다랗고 넓었다. 구경할 새도 없이 눕혀져 천장만 봤다. 교수님 얼굴을 보면 좀 진정될 것 같았는데 교수님은 없었고, 간호사들이 잔뜩 있었다. 입에 호흡기를 대고 숨을 쉬라고 했다. 이제 기절하는건가..? 생각하는 순간 간호사가 말했다. “지금은 산소만 들어가고 있어요” 그렇군. 몇 번 더 호흡한다. 주변으로 의료진들이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한다. “이제 마취제 들어갑니다.” 그리고 숨을 두 번 더 쉬었다.
간호사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났다. 몸이 덜덜 떨려올 정도로 추웠다. 따듯한 바람과 모포를 더 덮어주었다. 이때까지는 통증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처음 넘어져서 연골이 찢어졌을 때 정도의 통증. 욱신욱신 화끈화끈, 참을 만했다. 병실로는 언제 가냐고 물었다. 바로 가실래요? 라고 묻길래 그러겠다고 했다. 그대로 실려 가서 병동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만에 다시 그 침대로 돌아왔다.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다리는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붕대로 칭칭 감아져 있었다. 차마 자세히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통 주사 버튼이 옷에 꽂아졌다. 앞으로 4시간 동안 심호흡을 크게 해야 하고,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했다. 꾸벅꾸벅 졸면서 4시간을 버텼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면서 통증이 심해졌다. 무통 주사 버튼을 몇 번 눌렀다. 잠에 들지 않으려 사람들한테 연락도 하고 드라마도 틀었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신마취 중 인공호흡을 위해서 기도삽관을 하면 이럴 수 있다고 했다. 입이 바싹 말라갔다. 이 또한 인공호흡 할 때 침 때문에 숨을 못 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입을 마르게 하는 약물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을 마셔도 된다기에 물을 마셔보았지만 입 마름은 낫지 않았다. 밥을 주었다. 도저히 밥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침이 없으면 밥 먹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니! 드라마를 조금 보다가 다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