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수술 페스티벌

by 샴스 Shams



아침에 수영장에 갔다. 하루라도 더 물을 만나고 싶었다. 수영장 사람들은 “오늘이 수술인데 왜 이렇게 초연해요?”라고 물었다. 수술 날 아침이 되어서도 전혀 긴장되거나 실감 나는 일 없었다. 미루고 있는 건지, 아니면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수술하기 전에 보통 사람들은 어떠려나. 긴장과 두려움? 그런 감정 대신 그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가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보다 지난하고 고단한 시간일 테니까. 그러니 마음의 중심을 잡아 주는 수영은 수술 전날이라 하더라도 쉴 수 없었다. 평소보다도 더 열심히 수영하고 수영장과 같은 반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온라인 회의도 했다. 무릎의 상태는 지난 한 달간 점점 좋아져서 붓기도 거의 없었고, 통증도 많이 줄어든 상태여서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 데 큰 무리가 되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꽤나 오래 다녔다. 그때 배낭은 최소 20kg 이상. 그때부터 아마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 것 같다. 얼마 전부터는 배낭 대신에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으니,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병원으로 이동해 입원 수속을 한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옷으로 갈아입고, 낯선 사람들과 방을 함께 쓰다니. 마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로 체크인 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설 확인. 여행지의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다들 어딘가 아픈 상태로 누워있는데, 혼자 여행하듯 툭툭 걸어서 여기저기 다니려니 약간 민망하다.


팔에는 팔찌가 채워졌다. 종이 팔찌를 보면서 락 페스티벌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다녀오고 나면 이 팔찌를 기념으로 간직하곤 했었는데. 무슨 페스티벌 대신에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이라는 글자와 마크가 그려져 있었고, 나의 나이, 생년월일, 이름, 혈액형, 코로나 검사 여부, 환자 번호, 바코드가 적혀있었다. 이건 기념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금 기다리자 병원안내도 받고, 수술 안내도 받았다. 전신 마취할 거고, 어쩌고저쩌고, 그중에 하나 눈에 들어온 건 머리!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양 갈래 머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핫, 수술 페스티벌(?)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낯선 도시에 와서 도미토리에 묵으며 페스티벌을 기다리고 있는! 페스티벌에 갈 때는 양 갈래 머리와 퍼런 티셔츠를 입기!


아무래도 이런 상상을 하는게 너무 철없게 느껴졌다. 같은 병실 송 씨는 내가 입원하고 몇 시간 뒤에 입원했다. 수술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교수님에게 수술받는다고 했다. 송 씨는 그야말로 겁에 질려있었다.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수술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저런 거구나. 페스티벌 망상(?)을 하면서 혼자 낄낄대는 게 아니고 말이지.


9층 병동 가장 끝에는 ‘석고실’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 정형외과 인턴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이곳으로 불려 갔다. 각종 망상 속에서 잠들었던 나는 비몽 + 짜증인 상태로 석고실로 갔다. 석고실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 거즈와 붕대들 쓰레기들이 널려있다. 침상도 몇 개 있는데 초록색 시트가 널브러져 있었다. 절여있는 의사와 인턴 여럿이 있었다. 졸림과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시네요.”


담당하는 전공의로 추정되는 의사는 잘생기고 키가 크다. 처음 병원 왔을 때부터 예진도 하고 자주 봤던 분이다. 잘생긴 얼굴과는 썩 어울리지 않게 다르게 인생 다 산 것 같은 말투와 표정은 계속 기억에 남았다.


“저한테는 아직 점심쯤까지밖에 안 왔는데요?”

“출근을 늦게 하셨나 보네요?”

“새벽 6시부터 했어요.”


새벽 6시부터 시작해서 밤 11시까지 왔는데 아직 점심시간 정도라니.. 이들은 잠을 자기는 자는 걸까? 내일 9시부터 수술인데, 이렇게 과로한 사람들이 한다고? 이틀뿐이지만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좀 많이 피곤해 보이고 바빠 보였다. 점심시간밖에 오지 않은 전공의와 다리 검사를 몇 가지 진행하면서 마취에 대한 것, 수술 시간을 물어봤다. 막 친절하진 않아도 물어보는 모든 것에 대답은 해주긴 한다.


“내일 수술들은 첫 번째로 수술하는 분 말고는 다 도토리 키재기에요. 그런데 환자분은 그 도토리 중에서 제일 큰 도토리라 빨리하실 가능성이 큰데, 언제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그건 교수님도 몰라요.”


내일이 수술인데, 아직도 수술 시간은 묘연했다. 그나저나 제일 큰 도토리라니… 나로서는 일생일대의 수술이지만, 일주일에 이틀, 십여 명을 수술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도토리 비유가 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도토리.. 도토리…. 수술실 앞에 쪼마난 도토리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잠드는 수술 전날 밤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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