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십자가 놈들
시원한 물줄기가 주위에 퍼지며 공기 중에 뿌옇게 변한다.
안전상 거울이 없는 샤워장에 서로 마주 보지 않으려고 발가벗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정확히는 시드의 시선에 들기 전에 재빨리 몸을 씻었다.
빨간 명찰이 든 초록명찰이든 중요하지 않다.
시드가 발동하는 날에는 어느 살인자도 물로 얼굴만 훔치고 문 앞에 교도관에게 소리를 친다.
사회에선 엄연히 범죄이지만 교도소에서 통할 리가 없다.
이런 일을 교도관에게 말한다고 해결될까
유독 시드가 문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는 동성애자가 아니고 그전에 다른 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이 잔인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샤워시간에 반격할 수 없는 인간을 겁탈하기 때문이다.
당할 때는 대책 없이 당하지만 운이 좋다면 몇 대 맞는 것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
운이 좋지 않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은 후 겁탈당해서 한동안 걸을 수 없게 된다.
‘잘 잡아’
오늘은 다르다.
재소자들이 브래드의 양팔을 잡고 시드 앞에 세운다.
실핏줄이 터진 눈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린아이에게 너무 한 것 같지만 마지막 타깃이 된 스킨헤드는 팔이 부러지고 아직도 못 걷고 있다.
이것으로 시드의 욕정을 잠재울 수 있다면 이번 한 번쯤은 하늘에 계신 분도 눈감아주실 것이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뺨의 상처를 지나 목의 상처까지 흘러내린다,
‘나치 놈들이 어떻게 제임스를 알지?’
눈 속의 십자가 놈들의 심벌을 보고 나치로 오해한 것 같다. 그들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아니다.
차라리 나치들은 문신과 스킨헤드를 하고 자기들 까리 모여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니 걱정할 것이 없다.
산속의 흰십자가놈들은 다르다.
한여름의 더위를 삼킨 숲은 어둠이 내려앉자 풀내음이 물씬 풍긴다,
기다란 길을 따라가면 터널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서있다.
브래드와 친구들이 여름동안일하는 곳이다,
마약을 찾는 학생들이 몰려올 때면 풀내음은 이따금 대마냄새로 가득 찬다,
까맣고 별 하나 없는 터널 안은 위험하지만 경찰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곳은 마약 하는 사람은 모두 알지만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망을 보던 돈테가 졸고 있는 제인을 흔들 어깨 운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오기엔 위험한 곳이기에 주시한다.
제인이 돈테의 뒤통수를 세게 친다.
’ 브래드엄마잖아 ‘
멀리서도 브래드엄마의 입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보통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하나이다.
마음이 약한 브래드가 건넨 마약만 팔았어도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가늘게 눈을 뜨고 다가오는 까만 이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잽싸게 브래드의 어깨를 끌어다 자전거 쪽으로 밀어 넣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전거에 올라탄 브래드는 돈테를 불렀다.
뒤늦게 핸들을 잡은 돈테는 발을 허우적대며 페달을 밟았다.
브래드는 이미 제인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간다.
좀비처럼 삐걱대며 다가오는 엄마를 뒤로 하고 아지트로 향한다.
아지트라고 해봐야 산속에 버려져있던 성터이다.
약쟁이나 홈리스들이 가기엔 시내와 멀었고 물이나 전기도 없는 외진 곳이라 오래 있을 수도 없다.
어느 날부터 나타난 트럭과 사람들 때문에 피했지만 엄마가 모르는 곳은 이곳뿐이다.
돈테가 놀라서 소리쳤다.
’ 누가 성을 지은 거야?‘
정말이었다. 오랜만에 간 성터는 거의 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창문엔 단단한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중앙의 큰 문은 잠겨 있었다. 제인이 아이들을 불렀다.
성당으로 보이는 곳의 뒷문이다.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평범한 성당이었다. 성담에서 이어지는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제인이 돈테를 밀어 넣었다. 돈테를 밀려서 문안으로 들어왔다.
긴 복도를 따라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들의 자화상이 펼쳐졌다.
하나의 문이 더 있었다.
이 문을 연다면 다시는 돌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돈테가 침을 삼키며 뒤돌아봤다.
당황한 제인이 브래드를 쳐다봤다.
브래드는 긴한 숨을 쉬며 앞장섰다.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이번의 방은 큰방이었지만 곳곳에 개인적인 물건이 보였다.
흑백사진과 무기 관련 잡지들이 책상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위로는 십자가문양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양옆엔 사람보다 큰 그림도 걸려있었다.
오래된 장총과 칼들이 벽에 걸려있었고 그사이에는 은빛 성배와 흰 십자가 방패와 할버드가 함께 놓여있었다. 중앙의 유리보관함엔 오래된 종이에 알 수 없는 글자가 가득했다.
다른 벽전체엔 책으로 가득했다. 영어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언어의 책도 많이 꽂혀있었다.
제인이 한 권 꺼내려고 하자 돈테가 막았다. 정확히는 두려움에 떨고 제인의 손을 잡은 것이다.
‘이곳은 악마소굴이야!’ 소리치며 주저앉았다.
소리에 놀란 제인이 돈테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켰다.
브래드가 이어지는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갔다간 돈테때문에 들킬 것이다.
브래드의 신호에 제인이 돈테를 일으키고 되돌아간다.
빠져나오자마자 힘이 빠진 제인이 돈테를 밀쳤다.
‘악마숭배자들이잖아 ‘ 돈테가 소리쳤다.
자전거에 올라탄 제인이 진절머리를 냈다.
‘멍청아 저건 나치잖아 ‘
둘의 언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브래드가 둘을 재촉했다.
쾌쾌한 대마냄새가 가득한 밤길에 진정된 돈테가 물었다.
‘그럼 저건 뭐야’ 돈테가 뿔태를 올린다.
브래드가 대답한다.
‘알 게 뭐야’
브래드에게 사던 무리 중에 한놈이 마약의 중량이 적다고 모함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믿지 않던 친구들도 진짜인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의심하니 갱에서도 브래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난 네가 잘되는 게 싫어’
마주한 그가 한 말에 더 이상 설득하길포기하고 돌아서자 하늘이 핑 돌았다.
뿌옇게 변하는 시선에 무기를 든 녀석이 브래드의 목을 지그시 밟았다.
‘조심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얀 눈이 발목까지 차 있었다.
병원에 갈 수 없던 브래드는 붕대를 감고 몇 밤을 보냈다.
기상이변으로 비바람 태풍이 마을을 덮쳐서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뉴스에서 안전하다는 속보를 듣고 집 앞으로 나왔을 때 눈 쌓인 곳에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제인의 장난으로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무거웠다.
쇠막대 올려다보니 성에서 본 십자가 문양이 펄럭이고 있었다.
집에 있는 동안 마약에 절여있던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피가 가득한 바닥엔 녀석이 매일 입는 조끼가 있었다.
‘누가 이런 장난을’
브래드는 조끼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 속의 십자가 놈들이다.’
운이 좋아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의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브래드는 도박을 해야 한다.
재소자들의 손을 뿌리치고 시드 손의 칫솔을 빼앗는 것에 성공한다.
’ 그놈들 나치 아니란 말이야! 내가 맞으면 넌 뭘 걸래‘
달려드는 재소자를 제지하던 시드가 그의 키에 맞게 앉아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글쎄 뭐 하고 싶니?’
무기를 뺏겼지만 그의 위화감은 더 짙어진다.
반격 없이 원하는 것을 묻자 당황했지만 그에게 틈을 보여선 안 된다.
‘나 나를 너의 오른손으로 받아들여줘’
괴상한 소리를 내며 시드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브래드는 시드의 정수리를 가만히 쳐다봤다.
꺽꺽거리며 들썩이는 어깨가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지금이다 지금뿐이다. 브래드는 온 힘을 다해 칫솔을 내리꽂았다
질끈 감은 눈을 떠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살에 파고든 칫솔대와 브래드의 손을 꽉 움켜쥔 시드가 브래드를 노려봤다.
‘아쉽네 목 앞을 찔렀다면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놀란 브래드가 뒤로 물러나서 쓰러졌다.
삐-
목욕시간이 끝났다.
’ 저놈 건드리지 말고 기다려 ‘
빨간 명찰의 재소자들이 브래드를 데리고 샤워장을 떠난다.
’ 급한 연락 하셨나요?‘
마티아스가 제임스를 재촉했다.
문자를 보낸 제임스가 마티아스에게 핸드폰을 건넨다.
더 가지고 있다가는 어디로 보내는 지도 물을 기세다.
로난이 계좌로 돈을 낸 것도 확인했으니 더 이상 필요가 없다.
’ 신부님 감사해요 제형제를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케일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 오늘 밤엔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전에 어디를 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먹고 싶은 거라든지?‘
순간 제임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주위의 큰 빌딩사이에 자리한 트레일러 다이너는 소박했다.
커피라는 불빛이 반짝이며 철 지난 크리스마스 장식이 창가며 입구에 가득했다.
파이가 먹고 싶다는 마티아스말에 케일은 로난을 지키기로 한다.
제임스와 그가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머리가 엉망이고 수염이 제멋대로 난 나이 든 사람들이 절반 멀끔한 정장을 입었지만 앞엔 담배꽁초만 가득한 사람, 차려입은 사람 중 소수는 가슴왼쪽에 알래스카 주기가 새겨진 작은 골드핀이 반짝였다.
주위를 더 보기도 전에 커피를 든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마치 담배를 물은 듯 재떨이냄새와 함께 주문을 받았다.
눈짓으로 앞의 컵을 뒤집기 재촉했다.
마티아스가 급히 두 컵을 뒤집자 묽은 커피가 따러지고 향이 퍼졌다.
‘여기는 순록소시지가 유명하니깐 파이 먹기 전에 먹죠’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 문쪽을 자꾸 쳐다봤다.
메뉴가 나오고 광어버거를 집어 들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정장을 입은 무리들이 들어왔다.
제임스가 순간 수심에 찬 표정으로 변한다.
먹기 바쁜 마티아스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정장을 입은 여자무리들이었다.
오랜만에 여자를 봐서 놀란 것으로 치부하고 먹을 것에 집중한다.
의자를 끄는 소리를 내며 제임스가 일어난다.
주문을 마친 종업원이 떠난 뒤 테이블에 섰다.
‘수지야’
재킷을 벗어 동료에게 넘기자 그녀의 왼쪽가슴에 알래스카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골드핀이 반짝였다.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이 일어남에 사고가 멈춘다.
분명 200년 이상의 수감으로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올 수 없는 그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오후간식시간에 맞닥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제임스’
주위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