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기회

재판이후

by Pale Cactus





제임스의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마티아스가 눈치채면 차를 통째로 뒤집 어버릴 것이다.

숨이 막히고 등줄기에선 차가운 땀이 느껴진다.

찰나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스스로 되뇌며 키에 손을 뻗는다.

월터와 마지막으로 말한 그날처럼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






재판이 끝이 났다.

월터의 예상과 달리 미성년자인 제임스의 형량은 무거웠다.

수지의 변호사부대와 더불어 배심원들도 한 팀이었다.

그 틈에는 이웃이었던 마사할머니도 끼여있었다.

평생 할 일 없이 세금을 낭비하며 남들의 앞마당에 들어가 장식품을 훔치는 고약한 노인이다.

보잘것없는 월터의 앞마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환한 미소에 빨간 마법사모자가 매력적인 난쟁이동상을 훔쳐갔다.

그녀의 옷차림은 언제나 목이 늘어난 파자마와 슬리퍼에 주운 담배를 물고 다녔다.

이웃들이 조금만 늦잠을 자는 날이면 그들의 정원에 앉아 신문을 먼저 읽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줄 알아 내버려 두었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지극히 정상이며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언제나 그녀의 무기가 되었다.

60대라고 우기기를 10년째이니 대략 70대일 것이다.

그녀의 몰골은 좀비처럼 흐물거리고 쾌쾌한 곰팡이냄새가 심했다.

비위가 강한 월터도 따지러 갔다가 그녀 앞에서 들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그런 그녀가 법정 배심원석에선 너무 달랐다.

평소와 다르게 빛나는 백발의 볼륨이 들어가 있고 우아한 금테안경도 쓰고 있다.

그녀 근처에선 화장품향기가 나고 그녀의 옷은 단정한 재킷으로 안프릴셔츠도 빛이 났다.

미간에 한껏 힘을 주고 모두를 노려보던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자한 미소로 자수가 놓인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맞은편의 Mr.Lee의 얼굴을 정돈해 주었다.

월터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자 Mr.Lee가 막아선다.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는 월터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재판의 결과는 변할 수 없다. Mr.Lee라면 수가 있을 것이다.

그의 표정을 바라보고 무한한 신뢰감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월터의 차가운 양손을 포개 잡고 사람들에게 눈짓을 했다.

모두 준비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 성경책을 건넸고 둥글게 섰다.

Mr.Lee는 월터의 손을 성경책위에 포개며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둥글게 서있는 모두가 눈을 감고 그의 기도를 되뇌었다.

어느새 월터도 눈을 감았고 기도가 끝난 후 아멘을 외쳤다.

다시 뜬 눈앞엔 모두가 그를 위로하며 안아주려고 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Mr.Lee의 말에 눈물을 삼킨다.

제임스를 도울방법이 있을 것 같아 기뻤다.





면회시간엔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되뇌며 후회와 수치심을 안고 가족을 만나러 간다.

제임스도 다르지 않았다.

몇 달 만에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진되어 있었다.

월터는 애써 격앙된 목소리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며 항소하길 권유했다.

초점 없는 제임스는 월터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그 여자애가 널 먼저 유혹한 거잖아 말을 해봐’

면회장은 물을 끼어 얹은 듯 차갑게 변했다.

모두가 자신의 죄를 상실한 듯 월터를 노려봤다.

주변의 눈치를 보던 제임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쪽으로 다가갔다.

‘항소하지 마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

월터의 얼굴은 무너져 내리며 서류를 주워 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시아 갱이 제임스의 방을 찾아왔다.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반항하기 포기한 제임스는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한다.

목에서 발목까지 문신으로 뒤덮인 이는 웃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제임스를 안심시키며 얼굴만 가격했다.

쓰러진 제임스를 둘러싸고 그의 옆구리며 다리를 사정없이 밟았다.

이미 퍼렇게 물든 몸은 붉게 물들어갔다.

제임스의 움직임이 없자 그들은 내일을 경고하며 방을 떠난다.

제임스는 느낄 수 있었다.

내일까지 방법을 찾지 않으면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미스가 약봉지를 들고 다가온다.

다 쓴 책을 찢어서 만든 겉포장 지는 허술했지만 안엔 중량을 표시한 랩은 꽤나 견고했다.

문틈 사이로 손을 넣어서 더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소등 30분 전 종이 울렸다.

쓰러져있던 제임스가 철창너머의 스미스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빨려 들어간 팔은 움직이지 못하고 이내 탁하고 부러졌다.

스미스의 얼굴이 구겨지고 신음소리가 났다.

재빨리 부러진 팔을 잡고 그의 입을 막았다.

그의 목을 힘껏 눌렀고 스미스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제임스의 몸이 들썩 일정도로 반항하던 스미스는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를 들쳐 엎고 스미스의 방에 도착한다.

작은 거울과 변기 2층침대등 제임스의 방과 구조는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분의 서랍장과 옷걸이 수많은 포스터와 잡지 카세트도 있었다.

그를 침대에 눕히고 서랍을 뒤지기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약을 찾을 수 있었다.

양도 제법 많았다.

보통 이 정도양이면 시드와 거래를 할 것이다.

제임스는 찾은 모든 약을 들고 방으로 돌아간다.

그날밤 인원수를 체크하며 스미스의 죽음이 발각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다만 시드가 호랑이 같은 눈을 부릅뜨며 마약을 찾으려 혈안이었다.

점심시간 후 제임스는 시드의 방에서 모든 마약을 꺼내놓았다.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떠는 제임스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되고 눈물인지 땀인지 침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시아갱을 피하려다 시드에게 오늘 죽을 수도 있다

고개를 든 제임스 앞에 사악한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친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 다시 쳐다보니 시드가 웃고 있다.

‘이제 네가 나 좀 도와야겠어 다신 월급은 없어’

황당한 제임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제임스가 시드를 선택한 이유였다.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동료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면 전력을 다해서 싸우지만 이익이 된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혈육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백인이지만 어느 갱에도 속하지 않는 시드의 힘은 막강했고 누구도 그를 거스를 수 없었다.

시드가 주로 하는 사업은 마약과 도박이다.

마약을 운반하며 취해도 되지만 그것은 시드의 노예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스미스의 죽음에도 갱단은 빠르게 제임스를 수용했다.

시드의 갱에 들어온 후로 그는 배급실에서 식판을 들고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수개월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받아 드니 눈물이 났다.

옆자리에서 오늘 메뉴가 맛이 없다는 사람들의 음식을 받아먹기도 했다.

식판을 든 아시아갱들은 제임스와 함께 있는 시드를 보고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시드에게 충성하기 시작했다

갱단 누구도 돈을 받지 못했다.

다신 담배, 음식, 술, 마약, 핸드폰을 빌려주기도 했다.

제임스가 원하는 것은 항소하겠다고 고집부리던 아버지 윌터의 소식이었다.

그의 소식통에 의하면 월터는 저수지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하지만 지역경찰이나 교회사람들은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

점점 궁핍한 생활에 마약장사는 물론 도박도 시작했다.

이때 연락이 닿아 틈틈이 입금해 주어서 생활은 편해졌다.

로난을 믿어서였을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시드에게 돈을 빌려서 도박하길 며칠이 지났을까

수중의 돈을 물론 빚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자로 써야 할 로난의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

시드는 불편한 기색을 비취며 그의 키를 재갔다.

로난이 입금하지 않는다면 다음 달에는 산채로 배가 갈라질 것이다.

케일신부를 꿰어내어 로난을 찾아서 겨우 이자를 내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허망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수지를 보고 싶어서 도움을 준 케일신부를 속였다.

그렇게 마주친 수지는 앳된 모습의 치어리더를 입었던 소녀에서 정장에 총까지 든 숙녀로 변해있었고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때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은 질투일까 사랑일까

그녀는 내가 한 일로 나를 미워할까 사실은 고마워하지 않을까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에 마티아스의 말이 떠올랐다.

키를 잡았던 손을 떼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유리창너머로 마티아스가 노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탁 트인 야외에 눈이 쌓인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트렁크에서 백팩을 꺼내 둘러메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도망치지 않는 것에 대한 선물인 것처럼 제임스에게도 신발을 건넨다

그를 따라 산을 올랐다. 험하지 않았지만 눈이 쌓인 나무들에 둘러싸여 숨을 크게 쉬니 가슴이 탁트였다.

어둑해지는 산숙의 침묵과 야생동물의 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왔다.

비가 오기 시작하고 마티아스는 빠른 걸음으로 제임스를 재촉했다.

마티아스의 걸음마다 허리춤의 작은 도끼가 철렁거렸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제임스는 마른 장작처럼 깔끔하게 반쪽이 날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앞서기 위해 뛰기 시작했지만 그를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온몸이 젖고 비를 맞아서 몸에서는 뽀얀 김이 올라왔다.

무릎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는데 너무 조용하다.

길 끝에 그가 제임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자신의 백팩에 무기라곤 금속으로 된 컵뿐인데 맞서 싸울 수 없을 것 같다.

마티아스 가까이 다가가자 숨이 턱 막혔다

겨우 올려다보는 제임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안심시킨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큰 문이 보였다.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앞서가던 마티아스는 제임스를 와 발을 맞추어 걸으며 물을 건넸다.

페트병을 따기 무섭게 들이켠 제임스는 남은 물을 머리에 부었다.

빈병을 받아 든 마티아스는 난감한 표정으로 가방에 넣었다.

제임스의 시선이 흐릿해졌다.

이상함을 감지한 제임스는 마티아스를 돌아봤다.

다리에 힘이 플리고 숨을 쉬기 힘들어진다.

이 느낌은 어디서 느낀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눈을 감지 않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순간 무너지는 제임스를 부축하고 멀찍이에 큰 문이 열린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