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탐지, 겨울인가? 봄인가?

딱 기다려!

by 팔레오

금속탐지 이야기가 어느덧 23화가 되었습니다. 브런치북은 30편이 끝인지라 이제 이것도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는 듯하네요. 저로서는 시즌2, 시즌3을 이어나가고 싶으나, 늘 "땅 팠어요~ 엽전 찾았어요~"식의 사골국 레퍼토리의 반복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뻔하고 지겨워서 신물이 날 법도 합니다. 그나마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쳐주고 있을 때 떠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겨워할 독자의 마음과는 별개로, 저는 이러한 여정이 여전히 재미있고 엽전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기합니다. 얼핏 다 비슷한 엽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평통보의 종류가 3,000종이 넘으니 처음 보는 것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죠. 이를 채워가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포켓몬 띠부씰 모으는 기분에 견줄 수 있을까요? 피카츄를 잡으러 가는 로켓단처럼 오늘도 산으로 갑니다. 피카피카~


여러 포인트 중 가장 기대되는 곳은 과거 큰 마을을 연결하던 M고개인데 가는 도중에 확인하고 싶은 포인트가 있어 먼저 들려봅니다.



평지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봄이지만, 고지대인 이곳은 아직도 하얀 겨울의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네요. 이런 줄 알았으면, 돌아오는 길에는 눈썰매 좀 타게 비료포대라도 하나 밭에서 주워올 걸 그랬습니다.



정말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순백의 눈길이네요. 마치 그곳 너머엔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황금의 땅, 엘도라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며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했죠. 저도 따라 천천히 한걸음 내디뎌 봅니다. 똑같은 한 인간의 발자국이지만, 인류의 도약과 개인의 도약 클라스 차이가 어마어마하네요. 그래도 뽀드득~하는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아름답고 운치 있는 눈길을 걷는 기분만큼은 최고입니다.



와우~ 세상에 오르막길을 넘어서자마자 봄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이 산은 겨울산일까요? 봄산일까요?



더 아래로 내려가 옛 고갯길에 도착했더니 눈밭 사이로 돌이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서낭당 흔적인 듯 보이네요. 탐지기를 대보니 여러 곳에서 탐지음이 납니다. 하지만 눈이 녹지 않은 땅은 꽝꽝 얼어있는 데다 돌마다 강력접착제를 발랐는지 하나도 떼어내기가 어렵네요. 분명 돌아래 보물이 있지만 꺼낼 수 없는 안타까움에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유리벽 너머의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요.

"다음에 올 테니 딱 기다려!"



다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고갯길 위에서 눈부시게 내리쬐는 빛에 눈을 뜨기가 힘듭니다. 매양 흙 묻은 손으로 폰카메라 렌즈를 만지고 닦고 하다 보니 기스가 많아져 사진도 해롱해롱하네요.


억새밭을 지나 보이는 오르막길 끝이 오늘의 기대주 M고개입니다. 억새는 사투리로 '으악새'라고도 하죠. 옛날 노래 중에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으악새를 한동안 억새가 아니라 새 종류인 줄 알았더랬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억새밭에서 나는 소리를 감정이입해 가사로 담은 거로 알려져 있지요.



고개 끝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급경사의 지름길로 올라가 봅니다. 그런데 눈길이라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닙니다. 기껏 올라갔다가 여러 차례 주르륵 미끄러져 원위치로 돌아오니 또 위험한 상남자 오기가 발동하네요. 조금 옆길로 올라도 될 것을 기어이 미끄러진 길로 다시 기어오릅니다. 쓸데없는 가오 때문에 포인트가 코앞인데도 거북이걸음이 되어 도무지 진전이 없습니다.


예전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최고봉을 고작 몇십 미터 남기고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절감합니다. 그나마 실패해도 살아 내려오면 다행인데 종종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등반가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에베레스트 산 곳곳엔 오래된 시신들이 널려있다죠? 그런데 어떤 유명한 시신들은 후배들의 이정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 예로 녹색 부츠의 인도인 등반가의 시신이 '그린부츠'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붙잡으며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나아가는 생고생을 하고 나서야 겨우 고개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특히 가오와 지능은 반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과거 인터넷 산행기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돌이 잘 쌓여있는 모습이었는데 쫘악 흩어져있는 것이 누군가 먼저 왔었네요. 이런 경우를 지칭하는 전문용어 생각나십니까? 네, 맞습니다. '설.거.지'죠. 가오 넘치던 상남자는 알뜰살뜰한 주부로 태세전환해 설거지 할 준비를 합니다.



산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맥이 빠져 정신적으로 더 힘이 들죠. 먼저 밥 먹은 사람은 가버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사람이 설거지한다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네요. 이 시간 집에서 혼자 설거지하시는 주부님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참고로 저는 집에서 설거지 담당입니다.(오늘은 내가 마누라 등짝 때려야 하는 거 아닐까?) 아무튼 산에서도 쓱싹쓱싹~ 열심히 설거지를 하며 남은 음식물들을 한데 모아봅니다. 덕분에 제법 모였네요. 계급장, 엽전, 대한제국 근대전, 10환 1원, 일본동전 등등~

설거지 고수답게 꽝은 면해 다행입니다.



명색이 설거지 고수라면 다른 사람의 뒤치다거리까지 잘해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바쁘지만 흩어져 있던 돌무더기를 새로 이쁘게 쌓아놓습니다.



현명한 주부라면 아까 같은 위험한 길은 가지 않죠. 따라서 올라왔을 때와 달리 경사가 완만한 본래 옛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키보다 살짝 낮은 곳에 새둥지가 보입니다. 어쩌면 알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요? 두근두근~



역시나입니다. 잔설이 녹지 않은 이 시기에 알이 들어있을 리 만무하죠. 여름에 왔더라면 알이나 귀여운 새끼새를 볼 수도 있었겠네요. 이 작은 보금자리에 있던 산새가 건강히 자라 어디선가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과 산새알 프라이 맛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어느 쪽이든 진작에 떠나 운이 좋은 산새들이네요. 츄릅~



어느덧 차가 있는 임도까지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급경사 등반과 설거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허기가 일찍 찾아오네요. 오늘의 메뉴는 항상 산에서 먹던 그 밥이 아닙니다. 간만에 사치 좀 부려보려구요.



미리 맛집을 하나 찾아두었죠. 커다란 낙지가 토핑 된 해물 짬뽕입니다. 국물이 입에 짝짝 붙어서 호록 호록 마시다 보니 나트륨 일일 권장량을 가뿐히 넘어서 버렸습니다.



배를 채웠으니 후반전을 시작해 봅니다. 옛길이 뚜렷하게 살아있는 고갯길이네요. 이런 길은 무조건 탐지기를 켜고 훑으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물건을 만날 수 있기...



... 때문입니다. ㅠ


살짝 덮여있을 때, 영락없는 사람 해골인 줄 알았네요. 깜놀했더니 심장이 '아야~', 좌심실, 우심실이 짜르르합니다. 크기나 주둥이 튀어나온 모양새를 보아하니 고라니 두개골 같습니다. 그동안 산을 다니면서 고라니를 여러 번 맞닥뜨렸는데, 종종 풀숲에 숨어있다가 사람이 가까이 오면 그제야 소리를 꽥 지르며 냅다 도망가더라구요. 덩치도 큰 놈이 몇 m 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면 진짜 기절초풍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을 놀래키는 맹랑한 녀석이네요.



이 물건을 알아보는 분이 있을까요? 옛날 자전거 전조등을 켤 때 사용하던 발전기죠. 레버를 눌러 발전기를 자전거 앞바퀴 옆에 닿게 하면 위에 뚜껑 같은 것이 돌돌 회전합니다. 코일 주변에서 영구자석이 회전하면 패러데이 법칙에 따라 전기가 발생하고 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전구를 밝히는 원리입니다. 매우 친환경스러운 물건이지만 자전거 페달질이 두배로 힘들어지는 단점이 있었죠. 그런데 이게 어째서 산에 있을까요? 설마 옛날에 이곳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 선구자가 있었던 것일까요?



특이하게 생긴 이 물건은 '코하제(こはぜ)'라고 일본 버선에 단추 같은 역할을 하던 걸쇠입니다. 일제시대 유물이죠.



현대에도 기모노를 입을 때 전통방식의 버선을 신는데, 여기에 코하제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옛길을 훑으며 가니 간간히 탐지물을 만납니다. 훈련도감에서 만든 상평통보 중형전과 10원, 코하제 2개입니다.



와우~ 산에서 시계가 다 나옵니다. '파텍필립'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소박하게 '롤렉스' 정도면 좋겠는데, '실버탭'이라니 이건 듣보잡 시계네요. 그래도 마데 인 재팬인 걸로 보아 일제시대 물건이 아닐까 하고 억지로 우겨봅니다.

피카피카~ 겟또다제~



시작은 그럭저럭 좋았는데 고갯길 끝에 다다르니 몇 년 전 위성지도로 본 모습과 달리 새로 많은 무덤들이 조성되어 있네요. 무덤 주변에서 탐지해 봐야 나오는 것은 99.9% 술병 뚜껑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의미 없죠. 그리고 무덤 주위에서 탐지기 돌리는 건 모양새도 좋지 않구요. 실망하고는 왔던 고갯길을 다시 내려오는데 고목이 있는 자리에서 운 좋게 엽전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하나를 꺼내면 또 울리고, 꺼내면 또 울립니다. 이런 곳을 일명 '지게자리'라고도 합니다. 옛날 고개를 넘다가 지게를 세우고 앉아 쉬는 자리여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죠.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다 보니 엽전이 또르륵 흘러 차곡차곡 적립되는 개꿀자리입니다.



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조상님들이 땀을 식히며 쉬어 갔을까요? 하지만 오래된 나무는 완전히 썩어 밑동만 흔적으로 겨우 남았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람도 가고 나무도 가네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곧...

동전 챙겨 집에 갑니다. 룰루~



네모반듯한 돌도 나왔는데, 비석 같은 모양새라 공물과 함께 의도적으로 묻은 듯합니다. 범상치 않은 돌이라 일단 챙깁니다.



지게자리에서의 최종 결과입니다. 수백 년 동안 조상님들이 적립해 놓은 동전들을 화끈하게 일시불로 인출했네요. 맨 오른쪽 상단의 동전은 '대만주국 한푼'입니다. 신해혁명 이후 쫓겨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일본과 손을 잡고 세운 만주국에서 사용한 동전이죠. 가치가 높은 동전은 아니지만 금속탐지로는 처음 찾은 거라 신기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운 좋게 엽전을 비롯해 다양한 동전들도 만나고, 마지막 겨울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 무척 보람 있고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먼 길을 떠난 보람이 있네요.


그러나 아쉬웠던 한 가지, 땅이 얼어 발만 동동 구르면서 군침만 삼켰던 포인트가 계속 머리에서 맴돕니다.

"다시 말한다. 딱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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