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머치 토커
이번에도 탐지기를 둘러메고는 멀고 먼 강원도로 산행을 떠나 보았습니다.
애당초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눈이 돌아간 세속적인 산행이라 진정한 등산의 묘미를 논할 처지는 못됩니다만, 그래도 거의 일주일 단위로 꼬박꼬박 산을 오르니 산에서의 다채로운 계절 변화와 그 세세한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어 등산 그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죠.
오늘의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높이로 약 100m 정도만 더 올라가면 옛 고갯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서낭당 흔적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산행 중 흔히 만나는 묘지입니다.
묘지라고 하고 뭔가 으스스하고 싫을 것 같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쉴 수도 있고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며 후손들이 진입로를 잘 정비해 둔 경우가 많아 의외로 금속탐지에서는 반가운 존재입니다.
잠시 쉬면서 비석을 살펴보니, 여기 묻힌 사람은 조선시대 종2품 가선대부 벼슬을 지냈던 지체 높으신 분이었네요. 지금은 영감이 노인을 의미하는 정도로 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정2품 이상은 대감, 종2품에서 정3품은 영감이라고 불렸습니다. 따라서 영감은 높은 벼슬을 지내는 사람에게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비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남원 양씨인 양부사와 그의 배우자로 내명부의 정부인 품계의 전주 이씨의 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묘는 묘비가 아예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벼슬하지 못한 거사, 처사, 학생이 대부분인데 이처럼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의 묘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양부사 영감님~ 덕분에 잘 쉬었다 갑니다."
설렁설렁 걷다 보니 고갯길에 끝에 도착했습니다. 옛 지도상 이름이 적혀있는 고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길목이라 아마도 서낭당 흔적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적중했네요.
자세히 살펴보니 깨진 기와가 많이 보입니다. 과거 서낭당 돌무더기만 있었던게 아니라 번듯한 당집까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당집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연히 퇴락한 것인지, 1970년대 미신타파 운동으로 철거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높은 고갯길에 기와까지 얹은 당집을 짓는다고 여러 사람들이 꽤나 고생을 했을 듯합니다.
희귀한 조선시대 고갯길 서낭당 사진입니다. 왼쪽에 큰 돌무더기가 보이죠? 옛사람들은 여기에 엽전이나 음식 등을 놓아두며 안녕과 복을 기원했습니다. 또한 고갯길에 앉아 쉬다가 엽전이나 곰방대를 흘리기도 했죠. 그걸 수백 년 후 저 같은 사람이 금속탐지를 해서 찾아내는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 고마운 조상님들 ㅠ
고갯길 주변에 돌무더기가 흩뿌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탐지기만 들이대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신호가 막 울려댈 것 같아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좌판을 깔고 본격적으로 탐지를 시작합니다. 아주 튼실하고 커다란 못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당연히 요즘 못이 아니고 옛 목조 건물을 지을 때 주로 사용했던 못이죠. 아마도 당집을 짓는데 쓰인 못인 듯합니다.
문득 추억의 수수께끼 하나가 떠올라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갑니다.
Q > 분명 찾았는데도 못 찾았다고 하는 것은?
A > 바로 위에 찾은 못~ ㅋㅋㅋㅋㅋㅋ
또... 또... 아재드립 못 참아 죄송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혼자 시시덕거리면서 마냥 즐거웠는데,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곳을 파보니 99%가 탄두 & 탄피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또 어질어질합니다. 찾은걸 한쪽에 다 몰아놓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아서 정신이 아득해지고 진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포기하려는 찰나, 탄피밭 사이에서 우상향에 음성표가 있는 중형전 하나가 튀어나오며 희망고문을 합니다.
"여기 아래에 내 친구들 많아, 좀 더 화끈하게 파 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호음이 나는 곳을 힘들게 파보면, 파는 족족 탄피네요. 결국 GG를 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이곳은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다닌 고개이고 돌무더기에 번듯한 당집까지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탄피가 쌓이고 이후 돌과 뒤섞여 버린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이 부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무너진 당집과 흩어진 돌, 탄피들 사이에 홀로 핀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왠지 처연해 보입니다.
인접한 두 번째 포인트로 왔습니다. 여기는 아까보다 해발고도가 낮고 양지바른 곳이라 풀이 무성하네요. 경칩이 지난 시점, 겨울잠에서 깬 뱀들이 튀어나와 발모가지를 물것 같아 바짝 긴장하고 지나갑니다.
고개 정상 부근에 이르자 V자 형태의 골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가운데 혼자 삐죽이 서있는 식물은 혹시 산삼일까요? 설마 그럴리는 없겠죠.
V자 길을 오를 때만 해도 좋았는데 고개 정상에 이르자 판이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옛길 흔적조차 뚜렷하지 않고 밋밋하게 생겨먹은 저~질 고개네요! 꼴랑 10원짜리 하나 찾고 하산합니다. 사진 찍기도 귀찮...
하산하는 길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가 노니는 농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염소는 잘 보면 눈동자가 네모죠. 그래서 좀 괴기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염소는 키워서 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요? 고기? 젖? 가죽? 뿔?
조금 떨어진 마지막 포인트에 왔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고갯길 주변에 신호가 잡힌 곳을 살짝 파보니 돌 아래서 반갑게도 엽전이 얼굴을 내밉니다.
아주 잘생긴 호조 당일전입니다. 엽전의 테두리를 '연(緣)'이라고 하는데 연이 큰 엽전들이 보기가 좋습니다.
바로 옆에서 큼직한 진휼청 당이전도 나옵니다. 흔한 전종이지만 그래도 당이전이 작은 당일전보다는 발견할 때 더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흔해서 가격이 저렴하나 서체도 좋고 잘 만들어져 구매할 경우 가성비가 좋은 상평통보입니다.
잘생긴 호조 당일전이 또 등장합니다. 연이 넓은 걸로 보아 아까 그 녀석의 친구인가 봅니다. 같은 호조에서 만든 거니 친구 아니면 형제가 맞죠.
공조에서 만든 당이전과 특이한 물건이 나왔습니다. 얼핏 돗자리 짤 때 쓰는 고드렛돌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신라 토기인 굽다리접시 뚜껑 손잡이로 보입니다. 이는 박물관 자료까지 샅샅이 뒤져 알게 된 것으로 95%의 신뢰도를 자부합니다.
언제나 반가운 봉황 도안의 대한제국 근대전입니다. 광무 10년(1906년)에 발행한 반전이네요.
이번엔 통영관리영에서 만든 당오전, 그리고 정체 모를 물건이 깜짝 등장하네요. 어떤 상상 속의 동물을 형상화한 것 같아 보이는데 작은 함이나 경대, 가구 같은데 붙어있던 장식으로 보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탐지물에 무아지경이 되어 땅만 보고 있다가,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놀란 표정으로 서있네요. (갑자기 뒤에 사람이 서있어서 실은 내가 더 화들짝 놀람)
하긴 웬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소리 내는 물건을 들고 깊은 산속에서 서성거리니 할아버지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고사리를 따러 산에 왔다는 할아버지에게 이게 금속탐지기인데 어쩌고 저쩌고 설명해 주니 그제야 놀랐던 얼굴이 풀어집니다.
긴장을 풀고 웃으시는 할아버지에 저 또한 미소로 화답하며 마음마저 따뜻해졌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쿠, 예서 다리 좀 폈다가자." 하며 옆에 털썩 주저앉기 전까지는...
할아버지(이후 박찬호)는 금속탐지로 탄피가 하나 나오는 걸 보더니만 진짜 박찬호가 되어 6.25 때 피난 간 이야기를 시작으로 미군이 원조한 딱딱한 분유 먹은 이야기, 밀빵, 보릿고개 등 자신이 겪었던 장대한 인생의 드라마를 풀어놓습니다. 진짜 네버엔딩스토리... 하아...
처음에는 예의상 맞장구도 쳐주고 끄덕끄덕했는데 그게 30분이 넘어가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하아...
그러다 박찬호의 전화가 울립니다.
"여보세요? 어... 어디냐고? 산인데... 좀 쉬었다 내려가려고" (네에에? 좀 쉬었다라굽쇼? 하아...)
결국 한참을 더 말고문하고 나서야 완봉승을 거둔 박찬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살펴가시라는 인사를 뒤로 받으며 흐뭇한 표정을 한 채 박찬호는 떠납니다. 이쯤에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네요.
그동안 손해 본 시간을 만회하려는 곡괭이가 미친 듯이 신들린 8분의 8박자로 춤을 추며 이후 6개의 엽전을 더 찾아내고 맙니다.
박찬호와 힘겹게 맞서 싸운 결과물입니다. 덕분에 날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박찬호 선수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없음을 밝힙니다. (사실 팬임)
팬이므로 제목 어그로 좀 끌어보았습니다. 그래도 산에서는 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