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금속탐지를 떠나야 해

마조히즘인가?

by 팔레오

겨울에 즐기는 금속탐지만의 맛이 있습니다. 귀때기가 떨어지는 듯한 추위에 산으로 간다는 게 정신 나간 짓인 듯 하지만, 뭔가 자신을 학대하면서 느껴지는 쾌감(?) 같은 게 있습니다. 마치 아픈데도 피를 볼 때까지 얼굴에 난 뾰루지를 기어이 쥐어짜며 느끼는 쾌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그런? 고통과 쾌락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가네요.



태백산맥을 넘어오니 날씨가 좋아졌습니다. 지나는 길에 아주 특이한 구조물이 보이네요. 바로 평창올림픽 스키점프대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 저길 어떻게 스키를 타고 내려가 100m씩 날아갈 수 있는지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여기는 고도가 꽤 높은 곳이지만, 그래도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고개 부근까지 포장되어 있어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꿀자리입니다. 저 끝에 보이는 고개까지 조금만 걸으면 되는데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하던 땅 때문에 발이 푹푹 빠져 적잖이 곤욕을 치릅니다.


이에 상남자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내지릅니다.


"왜 이리 질척거려, 응?"


그나마 장화를 신은 게 다행입니다.



진흙탕에서 겨우 벗어나자 탐지기를 켜고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합니다.



철 쪼가리임을 알 수 있는 저음의 신호가 잡혀 잠시 고민하다 파보았는데, 옛날 칼이 나왔네요. 오래되어 나무로 된 손잡이는 진작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구리와 달리 철재질은 금세 녹이 슬어 참 아쉽습니다. 특히 철제 화살촉처럼 멋진 탐지물이 푹 삭아서 나오면 참 안타깝습니다.



고갯길에 당도했습니다. 기대했던 돌무더기는 없지만 과거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옛길이므로 주변을 잘 탐색해 보기로 합니다.



다행히 바로 엽전이 모습을 드러내줍니다. 오늘 긴 잠에서 깨어난 첫 번째 녀석입니다. 전에도 말했듯 첫 엽전은 의미가 큽니다. 옛길임을 증명하는 징표이자, 후속 엽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첨병이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바로 이를 증명합니다. 식물 뿌리가 절묘하게 엽전 구멍을 관통했네요.

"몇백 년 전부터 너와 나는 오늘 여기서 이 순간 만날 운명이었던 거야"

캬~ 운명론적 세계관 멋집니다.



멋진 중형전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왼쪽에 월표가 있는 훈련도감 중형전이네요. 이건 희소성이 좀 있는 엽전입니다.



희한한 물건이 나왔습니다. 일견 소총 청소할 때 쓰는 꼬질대 같아 보이는데요?



잡아 꺼내놓고 찬찬히 살펴보니 입으로 빠는 물부리가 확연한 것이 일체형 황동 담뱃대네요. 형태로 보아 조선시대 것은 아닌 것 같고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뻔한 엽전과 달리 좀처럼 보기 어려운 유물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급 좋아집니다.



그 와중에 봉황이 새겨진 대한제국 반전짜리 근대전도 한자리 거듭니다. 근대전은 언제 봐도 반갑습니다. 개인적으로 엽전 5~6개보다 근대전 하나가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잡해 보이는 버선모양 열쇠고리 장식 같은 것이 나왔습니다. 현대의 등산객이 흘린 열쇠고리 장식품 정도로 생각해 쓰레기를 모아 놓는 봉지에 던져 놓았죠. 그러다 전에 어떤 금속탐지인이 상투를 고정하는 은동곳을 못 알아보고 공사장 시멘트 못으로 생각해 저 멀리 휙 던져버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혹시나 하고 현장에서 폰으로 바로 검색해 보았더니...




오~ 이런 물건이었네요. 휙 던져버렸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습니다.^^



차곡차곡 탐지물이 적립되고 있습니다. 손맛도 최고, 기분도 최고~



말편자가 반으로 뚝 부러져 나왔네요. 조선시대 말은 그닥 크지 않았습니다. 사극에서 무관들이 타고 다니는 떡대 좋고 다리도 긴 말은 사실상 고증 오류, 개뻥입니다. 그런 말은 과천 경마장에서나 끌고 왔을 법한 외국 품종의 말이죠.


"말이 말 같지 않단 말이다!"


실제로도 금속탐지에서 나오는 말 편자는 하나같이 작고 앙증맞습니다. 편자조각과 편자못도 꽤 나오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왕래가 많았던 고갯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편자못입니다. 이걸 말편자 구멍에 넣어 때려 박았죠. 이러한 편자못은 금속탐지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오전 탐지 성과물입니다. 노래개에 달렸던 버선 장식은 쓰레기 봉지에서 부활해 품속 VIP석으로 이동한 탓에 사진에 나오지 못했네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포인트로 이동합니다. 포인트 입구에 도착했더니, 빨간 조끼를 입은 할배가 경계의 눈빛을 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어쩐 일로 왔느냐고 물어서 숨겨진 비기, 박카스 한 병을 꺼내 건네고는 금속탐지 어쩌고 조상의 흔적 탐방 저쩌고 뻐꾸기를 날렸더니 표정이 싹~ 풀립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빙판길이라 차는 여기 두고 걸어가라고 빨간 조끼 산불감시원께서 친절히 알려주시네요. 여기는 처음부터 입산 금지 구역이 아님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박카스 한 병으로 매수하고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훈훈한 정이 오가는 그런 즐거움 때문인 것입니다.



헥헥~

비록 포장된 길이라도 경사가 꽤 급해서 생각만큼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저 위에 보이는 산이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지도 분석 결과, 경사가 상당히 급한 곳이라 앞으로 더 험난한 길을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빙판길 끝 산길부터 본격적인 된비알 산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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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이 없냐구요?

앞에 사람이 걸어간다면 그 사람의 엉덩이를 정면으로 보고 갈 정도의 급경사를 올라가니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 말을 하고 말고 그런 상황이 아니라서죠. 카메라 꺼낼 힘조차 없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야 해발 1,000m 평평한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여기서 큰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탐지기를 켰는데 정적이 흐릅니다. 여러 번 끄고 켜도 화면만 들어올 뿐 스피커는 찍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스피커가 사망했네요.(다행히 주력으로 쓰는 고오급 에디션 금속탐지기는 아님)


"등산하느라 뻗어야 할 건 난데 업혀서 올라온 네가 왜 뻗어!" 산속에서 메아리가 치도록 절규합니다. ㅠ


무음상태에서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ID값 숫자를 보고 탐지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오른 산인데 그냥 내려가기가 너무 억울해 일단 바위에 앉아 멍을 때립니다.


문득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가 떠올라 머리를 쥐어짜봅니다.


'혹시 진동기능을 사용하면 어떨까?'


한번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서자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않았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주변을 스캔해 봅니다.


"옳거니, 부르르르 진동이 옵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비롯해 잡다한 금속이 너무 많습니다. 이곳은 능선길을 따라 지맥 등산로가 있는 곳이라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울려대는 진동 가운데에서 구리의 ID값과 가까운 수치를 나타내는 강한 진동을 느끼는 시점, 바로 그 순간을 잡아야 한다.' 손 끝에 전해오는 진동에 집중하며 다시 스캔을 합니다.


"지금이야! 바로 여기"



아오~ 별다방 아지매가 낙엽사이로 얼굴을 삐죽이 내밀고 방가방가하네요.


"저는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눈을 슬며시 감고 귀멸의 칼날, 카마도 탄지로처럼 전집중 호흡을 하며 탐지기와 내가 일체가 되어 천천히 스캔해 봅니다. 물아일체, 탐지기와 내가 하나 된 순간 신호가 잡힙니다.



오옷~ 드디어 동글동글 예쁜 친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오~ 공사장 워셔(Washer)네요.

결국 수행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는 낙심하여 터덜터덜 산을 내려옵니다.



천천히 내려오니 올라갈 때 그냥 패스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석축을 공들여 쌓아 놓았네요. 나름 이유가 있었을 텐데 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줄을 놓고 걷다가 가시나무에 긁혀 기어이 피를 보고 맙니다. 수행만 부족한 게 아니라 조심성도 부족했네요. 산에서는 이동할 때에도 왜 장갑을 상시 착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는 걸 피로써 다시금 증명합니다. 아오~



내려오는 길에 검은색의 돌무더기가 보입니다.



이건 석탄이네요.



과거 이 부근에 탄광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까 보았던 석축은 과거 탄광과 관련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겠네요.



급경사길을 다 내려와 포장길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까 걸어왔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팔자걸음 뺨치게 발자국이 삐뚤삐뚤한 건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치열한 몸부림의 흔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합니다. 아니 세상에... 갈비탕 김이 펄펄 나도록 뜨겁게 내와야지 이게 뭐꼬? 아오~


아무튼 밥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를 복기해봅니다. 피와 바꾼 엽전들과 산, 하얀 눈, 여러 일들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하네요. 그리고는 곧이어 다음 행선지를 생각합니다.


확실히 금속탐지 중증이네요.



마이 아파~

호~ 해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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