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일들

팔레오의 실화

by 팔레오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의 지식과 통찰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불가사의하고 기이(奇異)한 일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신기한 이야기들은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뭇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크게 화제가 되기도 한다. 주로 다양한 매체나 소문을 통해 접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일 테지만 여기 내가 직접 겪었던 기이한 일이 있어 이야기를 꺼내본다.




아마도 8~9살쯤 되었을 무렵이다. 바퀴가 닳아서 반들반들해질 지경으로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어느 날의 일이다. 서울 한강 부근 자양동에서 살았던 나는 얼마 전 알게 된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꽤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지금의 건대입구 부근인 화양동을 지나서 능동 어린이 대공원을 경유해 동대문구 면목동 정도까지 흘러갔다가 우연히 한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거기서 거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남루한 차림의 할아버지와 마주치게 되었다. 골목이 너무 좁은 탓에 우리는 일단 멈춰 섰다. 그때 우리와 마주친 할아버지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수염이 덥수룩한 입을 떼며 말했다.


“ㅎ기사! ㅇ기사! 어디가? 늦기 전에 집에 가야지?”


얼떨결에 우리는 “네...”라고 대답하고는 지나쳤다. 잠시 뒤 친구에게 “저 할아버지 누구야?”하고 물었는데 친구는 도리어 내가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했다. 아까 ‘ㅎ기사’, ‘ㅇ기사’하고 말했던 건 혹시 나와 친구의 성씨를 말하는 것이었나? ‘기사’는 택시기사(技士)나 말을 탄 기사(騎士)처럼 자전거를 타고 있었으니 이름 대신 '기사'라고 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우리의 성씨를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명찰도 달고 있지 않았고 이곳은 우리가 처음 온 동네일 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들어왔던 골목길 끝 쪽에 사라질락 말락 하는 노인의 뒷모습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는지 적잖이 궁금해 뒤따라가 물어보고 싶긴 했지만 왠지 모를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 결국 자전거를 돌리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쯤 시시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마치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기이한 일로 남아 지금까지도 가끔 골목길을 걷다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물과는 상극(相剋)이다. 그렇다고 결코 물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더운 여름 시원한 냇가나 계곡, 강이나 바다를 보면 앞 뒤 재지 않고 풍덩 뛰어들고 싶어 할 만큼 물놀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문제는 물놀이를 할 때마다 크든 작든 수난(水難)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물과는 상극이라 표현한 것이다.


어릴 적 가족과 강원도 춘천에 가서 물놀이를 했다. 부모님이 잠시 한눈파는 사이 튜브를 타고 깊은 곳까지 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튜브의 공기가 빠지면서 그대로 물속으로 꼬르륵 가라앉았다. 이때 누군지 모를 어떤 아저씨의 도움을 받고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적이 있다. 조금 더 커서는 팔당호 부근에 놀러 갔다가 그리 깊지도 않은 여울에서 미끄러져 실족을 하고는 빠른 물살에 휩쓸려 깊은 곳까지 순식간에 떠내려 간 적도 있었다. 이때는 강건너에서 낚시를 하던 분의 도움으로 물귀신 신세가 되는 걸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엔 청평호 부근 냇가에 가서 또 물놀이를 했다. 이쯤 되면 물놀이가 무서워질 법도 하건만 겁도 없이 가슴높이 정도 되는 물에서 놀다가 발이 쑥 빠지면서 또 사고가 터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손을 뻗으면 금세 닿을 법한 가까운 곳에 어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이날 우리와 함께 놀러 온 일행 중 한 명으로 아버지의 친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빨리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가 물을 먹어대며 다급하게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물에 빠진 척 장난을 치고 있다고 여겨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물에 빠지면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숨을 참는다. 하지만 곧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을 맞이하게 되며, 이때 저절로 기도(氣道)가 열리면서 폐 속으로 익숙한 공기 대신 비릿한 물이 인정사정없이 콸콸 쏟아져 들어온다. 이때쯤 느끼는 극한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무섭고 끔찍하다. 폐에 물이 들어오는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곧 호흡이 끊어지고 의식을 잃게 된다. 이 상태에서 불과 몇 분만 더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으로 덧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도왔을까? 한두 번만 더 물을 마셨더라면 분명 숨이 멎었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허우적대던 내 발가락 끝에 암초와 같은 작은 바위가 느껴졌다. 발끝을 세워 그 바위를 딛고 서서는 정신없이 물을 토해내고 기침을 하고 난 이후에야 겨우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사고의 원인이 '전적으로 내가 수영을 잘 못해서 생긴 일'정도로만 여겼다.




언젠가 O군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무 살 초반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똥배와 살집 때문에 영락없는 40대 중년 아저씨로 보이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살짝 처진 눈매에 둥그스름하니 복스러운 코와 늘어진 귓불, 깊고 뚜렷한 인중에서 풍기는 얼굴 인상은 마치 도교적 느낌이 드는 동자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가정문제로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던 O군은 좀체 말수가 적었는데 이따금 한 두 마디 꺼낼 때 들어보면 말투부터 어눌하기 짝이 없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O군의 비범한 면모를 알게 되는 일이 생겼다. 여러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중 전생이나 환생, 귀신 따위에 대한 것들이 안줏거리가 되어 이야기꽃을 피웠을 때의 일이었다. 평소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때 별로 길지 않은 문장의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짧게 끊어 여러 번에 나누어 말하던 그가 희한하게도 이런 이야기에 끼어들고부터 점점 말이 많아지더니만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청산유수와 같은 달변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점을 조금 볼 줄 안다고 스스로 말했다. 사주나 손금이 아니라 관상, 즉 얼굴만으로 점을 본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 중에 일부는 이미 O군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중 한 친구는 유년시절 사이좋게 지냈으나 '일찍 죽은 나어린 여동생의 귀신이 주위를 맴돌며 가끔씩 빙의되는 까닭에 얼굴이 묘하게 어려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천진스러운 행동거지까지 갖게 된 것이다.' 라는 해괴하고 기분 나쁜 점괘를 O군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 화가 났을 법도 하건만 오히려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O군이 말한 건 모두 진짜라면서, 무섭고 신통력이 있다고, 진짜 용하다고 말하며 숫제 바람까지 잡으며 거들고 나섰다.


검증 가능한 과학을 신봉하고 미신이나 점을 믿지 않는 것이 20여 년을 살아온 나의 굳건한 지론이었으나 이때만큼은 재미 반 호기심 반에 내 점도 한 번 봐달라고 했다. O군은 처음에 난처한 듯 고개를 저으며 여러 차례 손사래를 치며 뺏다. 그러나 나와 주변 성화를 못 이겼는지는 몰라도 잠시 한숨을 쉬더니 이윽고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뱀눈을 하고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뜸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물과는 상극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물에 자주 빠져 죽을 뻔하지 않았었느냐'라고 묻길래, 나는 속으로 ‘어? 어떻게 알았지? 그냥 찍은 건가?’하면서 조금 놀라기도 했으나 짐짓 티를 내지는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물놀이하다 한두 번쯤 물에 빠져 곤경에 처했던 경험쯤이야 누구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런 적이 있기는 한 것 같다며 예전에 겪었던 수난의 일화들을 몇 가지 들려주었다. 그러다 물에 빠졌을 때 아버지의 친구분이 도와주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그는 재빨리 내 말을 끊고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저승사잡니다. 그분한테 물어보세요. 분명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겁니다.”


순간 오래되어 잊고 있었는지 조차도 몰랐던 기억의 저편 너머 흐릿한 기억 하나가 번쩍하고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소름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그날 내가 엉엉 울면서 아버지에게 “저 아저씨가 아까 내가 물에 빠져서 죽을 뻔했는데 안 구해주고 막 웃었어!”라고 일렀는데, 옆에 있던 그분이 “뭐? 네가 언제 물에 빠졌어? 난 못 봤는데?”라고 말했던 기억...


당시의 나는 그 뻔뻔한 오리발을 듣고 ‘아빠한테 혼날까 봐 저러는 거다. 암만 그래도 어른이 어떻게 거짓말을 해?’하고 생각을 하며 그 아저씨가 몹시 얄미워서 화가 났었다. 하지만 어린 내가 어른한테 더 이상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별도리 없이 속으로 울분을 그대로 삼켜야만 했다.


O군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아저씨는 절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에요. 저승사자가 그 아저씨한테 빙의돼서 형이 죽으면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너무나 황당했다. 그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었지만 딴엔 궁금해서 반문했다.


“그러면 저승사자가 일부러 찾아왔는데 왜 안 데려갔대?”

“가장 무섭고 악랄한 귀신이 뭔지 아세요? 바로 물귀신입니다. 다른 귀신들하고는 달라요. 물귀신은 일정한 때가 되면 반드시 사람을 잡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워낙 변덕스럽고 나쁜 귀신이라 저승사자도 얘들을 어쩌지 못합니다. 물귀신이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한 날에는 그 물이 이어지는 어딘가에 있는 여러 사람 중 누군가는 반드시 물귀신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하고 장소는 대충 알아도 물귀신 변덕이 심해서 누가 죽는지 저승사자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라도 하면 옳거니 하고 재빨리 그 곁으로 가서 얼굴을 바라보며 죽기를 기다리는 거죠.



형이 그날 죽지 않았으니 분명 그 물줄기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형이 죽지 않았으니 저승사자는 아니다 싶어서 바로 떠난 거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그분은 형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걸 전혀 모를 수밖에 없는 거죠.”


어눌했던 O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거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논리마저 완벽해 보였다. 만약 이 친구의 말이 맞다면 그동안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할 때마다 물귀신과 저승사자가 나타나고 같은 물줄기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소름이 끼쳤다. 뭐라도 반박을 하고는 싶었으나 어쩌면 이 친구가 저승사자나 물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얼이라도 빠진 양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O군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형도 모르는 영혼의 본성 때문이에요. 형의 보이는 이성하고 다르게 형의 영혼이 선해서 자꾸 남 대신에 죽으려고 해요. 그래서 물에 가면 자주 그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죽지 않은 겁니다. 웬만하면 물에 가지 마시구요. 그러면 형은 아마 80은 넘게 살 거예요.”


나는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자 오싹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좌중을 돌아보며 맥없는 농담을 던졌다.


“어휴,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80살이라고? 내가 자살이라도 해서 제 명에 못 죽으면 이 놈도 같이 죽여서 저승사자한테 보내라.”


그러나 본전도 못 건질 농이었다.


O군은 더욱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마 안 될 걸요? 하늘의 순리를 어기고 자살하려 한다면 죽지도 못하고 불구가 돼서 80살까지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행여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도 마세요.”


그의 신기(神奇)한 변모와 영험한 신기(神氣)에 압도되어 그랬을까? 나는 뭣에라도 홀린 듯 어느 순간 안주머니에서 지갑 속 사진을 슬쩍 꺼내 O군에게 조심스레 보여주고 있었다.



“부모님 사진인데 혹시 뭐 보이는 게 있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부모님 옆에 4명의 아이가 쭉 서있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둘은 밝아서 윤곽이 보이는데 다른 둘은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요.”


내 가족관계를 누구에게도 한 번도 꺼내지 않아 절대로 알 턱이 없는 그였지만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내 위의 형제 두 명이 있었지만 모두 첫 돌도 채우지 못하고 병으로 일찍 죽었다는 것을 언젠가 부모님께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제 나와 여동생만 남았으니 그의 말이 그럴듯하게 또 한 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어느덧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자 O군은 다시 안쓰러울 정도로 과묵하고 어눌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본래의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어떤 것이 진짜 그의 모습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놀랍고 기이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날, 이야기 끝 무렵에 들었던 말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갑자기 차갑거나 더운 공기가 확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소름이 잘 내려가지 않으면 귀신이나 저승사자가 지나가고 있거나 옆에 아주 가까이 서있다는 뜻입니다.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몸은 그걸 느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요. 또 이것도 몰라서 그렇지 사람이 죽기 전까지 저승사자가 세 번 찾아옵니다. 형은 이미 한 번 만났고요.”


O군의 말을 되뇌며 곱씹어보니, 어릴 적 면목동 골목길에서 만났던 남루한 차림의 할아버지도 어쩌면 저승사자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두 번 만났으니, 이제 겨우 한 번만 남은 셈인가?’


가끔씩 길에서 저승사자를 보면 무서워서 피한다던 O군, 삼신할머니를 보면 가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던 O군, 천기를 자꾸 누설하면 자신의 명이 짧아진다던 O군과는 아쉽게도 일찍이 연락이 끊어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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