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몰려와 춥다고 오들오들 아우성이다.
한 학생이 손가락을 덜덜 떨어가며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 곱셈추위 장난 아님ㅋㅋㅋ'
뭣이라고?
꽃샘이 아니고
곱셈추위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봄인데 몇 배로 추워져서 곱셈추위죠” 라고 한다.
‘와우, 어이없는 요즘 애들’
꽃피는 걸 시샘해서 꽃샘추위라고
좀 알고 쓰라고
공부 좀 하라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좀 해줬더니
나를 힐끗 째려보고는
“골이 따분한 이야기 좀 그만하세요” 라고 한다.
‘우와, 예의없는 요즘 것들’
어른한테 말을 그따위로 하면 되겠냐고 따끔하게 충고했더니
뒤에서 누군가 “어쩔티비, 감나라 배나라, 일해라 절해라 하지마세요”라고 한다.
‘아아, 세상에나 말세로세’
앙팡트래블, 무서운 아이들, 무식한 녀석들...
어른이 가르켜 주는데도 고마운 줄을 모르다니...
주최할 수 없는 분노와 더불어 연민으로 마음 한구석이 절여온다.
아무렴 맛춤법도 잘 모르는 너희들과 나는 틀리지
아니 마춤법이던가?
아뭏튼!
*골이 따분한
-> 고리타분한 (학생이 일부러 혹은 잘못 알고 사용한 표현)
*어쩔티비
-> "어쩌라고 티비나 보셔"의 줄임말,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은어
*감나라 배나라
-> 감놔라 배놔라 (학생이 일부러 혹은 잘못 알고 사용한 표현)
*일해라 절해라
-> 이래라 저래라 (학생이 일부러 혹은 잘못 알고 사용한 표현)
*앙팡트래블
-> 장 콕토(Jean Cocteau)의 소설 앙팡테리블(Enfants terribles : 무서운 아이들)을 잘못 사용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도마 위에 자주 오른다. '성공의 조짐이 보인다'란 말에서 "왜 성공을 조져요?"라고 말하거나 '유선상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에서 "유선상이 누군데 거기다가 안내를 해요?" 하는 식의 웃지 못할 우스개도 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 사회성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성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세대가 달라지면 언어도 달라지는 것이다. 라떼도 그랬지만 요즘 mz세대 언어는 그 차원이 다르다. 얼마나 아는지 한번 스스로 체크해 보도록 하자.
감다살(감 다 살았다), 감다뒤(감 다 뒤졌다)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캘박(캘린더 박기)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저메추(저녁 메뉴 추천)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무물보(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디토합니다(인정합니다)
꾸웨엑(후회해?)
위의 시는 이러한 세대 간 언어차이를 재제로 만들었다.
시의 기본 요소인 운율을 살리기 위해 각운을 구성했고,
연의 구분이 깔끔하진 않지만 대칭형 반복 구조를 설계했고,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황당함과 분노를 점층의 수법을 사용했으며,
운율을 위해 울림소리 'ㄹ'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했으며,
'우와, 와우, 아아'에서는 감탄사에 변화를 주어 탄식이 점점 깊어짐을 나타내고 있고,
'요즘 애들'에서 '요즘 것들'로 변화를 주어 시적화자의 경멸감을 고조시켰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어른 역시 남의 폰이나 훔쳐보고 간섭하는 꼰대의 오지랖를 보여주려 했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언어 수준과 태도를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 또한 언어와 교양 수준이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비틀어서 풍자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마지막 연에서는 잘난척하는 어른의 틀린 표현이 모두 몇 개인지 세어보는 것도 팝콘 퀴즈처럼 담아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담아낸 '서정시'를 감히 쓰지 못하는 '할 일 없는 팔레오'가 장난 삼아 설계한 일종의 실험시라고 자평한다. 그래서 '시를 썼다'가 아닌 '시를 설계했다'로 표현하겠다. 시를 잘 쓰는 작가님들이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나도 시를 쓸 줄 안다. (X)
나도 시는 만들 수 있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