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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에서 물고기 화석이 쏟아지다

신생대 마이오세 두호층

by 팔레오
화석을 깔고 앉아있는 도시, 포항


포항의 웬만한 곳은 모두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때 형성된 화석 지층인 두호층이 광범위하게 분포합니다. 그러므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 개발이나 산업 단지 조성 같은 큰 공사판이 벌어지면 화석 대탐사 시즌이 시작됩니다.


두호층에서 나뭇잎 화석은 흔하게 볼 수 있으나 물고기 화석은 매우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간혹 특정 위치의 지층을 깎아낸 자리에서 그 귀하디 귀한 어류 화석이 왕창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평지가 부족해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는 게 일반적이죠. 여기도 아파트를 짓기 위해 대규모로 산을 깎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휴일을 맞아 모든 중장비는 멈춰 서있었습니다. 넓디넓은 화석산지는 아무도 없었으며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마치 비행접시처럼 생긴 동그란 돌은 지층 내에서 특정 압력을 받아 형성된 결핵체입니다. 엄청나게 단단하며 큰 것은 지름이 2~3m 정도 되죠. 간혹 깨진 결핵체 단면에 화석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크고 단단한 모암에서 작은 망치로 떼어낼 방법은 없습니다.



땅거지처럼 여기저기 땅만 보고 다니다 드디어 물고기 화석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네요. 물고기가 살아있는 상태 혹은 죽은 직후에 바로 매몰되어 화석화 과정을 거쳐야만 온전한 형태를 가진 화석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물고기는 죽은 후 약간의 부패가 진행된 상태에서 화석이 된 케이스입니다.



이번엔 머리 쪽이 분해된 물고기 화석이 등장했습니다. 몸통과 꼬리는 상대적으로 멀쩡한 걸로 미루어보아 다른 생물에게 머리 쪽부터 뜯어 먹히던 중에 매몰되어 화석이 된 걸로 짐작됩니다. 생선 대가리 맛있는 건 어찌 알고? 사람만 어두일미(魚頭一味)를 아는 것은 아닌가 보네요.



이 또한 어두일미를 아는 자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물고기 화석이 계속 나옵니다. 떨어져 나온 꼬리의 일부는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바로 아래에 있네요.


온전하지 못한 화석만 계속 나와 아쉬움이 점점 커져갈 무렵이었습니다. 큰 기대 없이 내리친 망치질에 돌이 갈라지는 진동이 팔을 타고 올라와 전기처럼 찌릿함을 느꼈던 짧은 순간, 눈이 번쩍 밝아졌습니다.



우와... 세상에...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예쁘게 좌우 대칭 쌍을 이룬 멋진 물고기 화석이 등장했습니다. 레고 미니피규어가 5c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닥 크지 않은 사이즈의 물고기지만, 그래도 형태가 완전한 데다 모암의 상태도 깨끗하고 단단해서 오늘의 장원이라 충분히 칭할 만합니다.



행운의 주문이 걸렸는지 상태 좋은 물고기 화석들이 인근에서 계속 나옵니다. 세로 방향으로 압력을 받았는지 살짝 변형돼 짜리 몽땅한 모습입니다.



또 나왔습니다.



산더미 같은 전석을 하루 종일 살펴도 파편조차 찾기 힘들 때가 많았던 물고기 화석이 그야말로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네 다음 물고기~



응, 또 다음 물고기~



물고기 화석밭 사이에서 성게 화석이 나타났습니다.


몸에 비해 가시가 가늘고 짧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것은 현생 보라성게보다는 말똥성게 쪽에 더 가까운 듯 보입니다.



이번엔 붉은색 침전물이 착색되어 더 선명하고 예쁜 성게 화석이 등장했습니다. 이 또한 말똥성게 쪽에 더 가까운 듯 보입니다. 우연이겠지만 색깔도 말똥성게알과 닮아있네요. 마치 속에 잘익은 알이 가득 차있는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성게알(사실은 정소) 참 별미죠. 보라성게는 여름이 제철이고 말똥성게는 겨울이 제철입니다. 말똥성게 알이 좀 더 색이 진하고 맛도 진해 더 비쌉니다.

그나저나 1,300만 년 전 신생대 성게알은 맛이 어땠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번엔 성게의 뒤를 이어 앙증맞게 작은 갯가재 화석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갯가재는 오늘날 갯벌이 많은 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데 동해안인 포항에서 이와 같은 화석이 종종 나온다는 건, 당시에 지금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갯벌 같은 지형이 꽤 넓게 분포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옆에서 갯가재 화석이 또 나왔습니다. 갯가재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먹이를 때려 기절시키는 해머같은 앞발을 가진 종도 있고, 사마귀처럼 나꿔채 잡을 수 있는 앞발을 가진 종도 있습니다. 화석이든 현생종이든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건 후자입니다.


머리를 덮고 있는 암석을 살살 두드려 걷어주면 그 치명적인 무기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화석들을 급한 마음에 현장에서 둔탁한 망치로 섣부르게 두드리면 십중팔구 화석이 박살 나게 됩니다. 집이나 작업실, 연구실 같은데로 가져와 아주 작은 망치와 송곳, 미니 드릴, 심지어 바늘까지 동원해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작업을 해야 하죠.



오른쪽의 밝은 색 이암에서는 육상 식물 화석이 우세하게 산출되는 반면 왼쪽과 뒤쪽 어두운 색 이암에서는 바다 동물 화석이 우세하게 산출됩니다.



어쨌거나 물고기 화석은 아직도 계속 이어집니다.



네 또 다음 물고기 화석~

물고기 화석 주변에 보이는 검은색 얼룩같은 흔적은 해조류의 일종인 '바닷말'의 화석입니다.



보다 세밀한 관찰을 위해 이어지는 물고기 화석을 DSLR과 접사렌즈를 이용해 찍어 보았습니다. 형태는 대체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몸통 중간 부분의 척추가 사라졌네요. 뾰족한 주둥이도 인상적입니다.



이 녀석은 골격이 완전합니다. 전체 체장에 비해 머리 비율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머리가 큰 물고기들은 큰 입을 이용해 자신보다 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어식어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 물고기가 생전에 그런 어류였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 형태의 유사성으로 미루어 위의 물고기와 같은 종으로 보입니다.



척추와 가시, 등지느러미, 가슴지느러미, 배지느러미, 뒷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가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 녀석은 머리에 두 눈의 흔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살아생전 넌 왕눈이였구나.



이날 발견한 것 중 가장 작은 물고기 화석입니다. 3cm 겨우 남짓한 크기죠.



그렇지만 이처럼 작은 화석도 확대해 보니 척추 위쪽 신경극과 아래쪽 혈관극을 비롯해 여러 뼈 구조까지 잘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전체 척추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뛰어납니다. 물고기 화석을 연구할 때, 척추뼈의 개수나 지느러미 위치, 머리뼈 등의 정보는 종을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석양에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곧 해가 질 테니 가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사진에 나온 것 외에도 많은 물고기 화석을 만났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보여드릴 수가 없어 유감입니다.



한 마리만 더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돌아가면서도 깔짝깔짝 들춰본 돌 아래 숨어있던 시커먼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아마 이 녀석은 살아있었을 때도 큰 돌 아래 숨어있기를 좋아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를 끝으로 제 몫을 다한 불멸의 망치는 가방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수고했어 오늘도!



차로 이동하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여기저기 깎이고 파여 숨만 겨우 붙어있는 앙상한 산의 처량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천 만 년을 버텨오면서 장구한 시간의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온 큰 산, 그 안에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석들이 지구상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먼지같이 작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후 어디론가 실려가 쓰레기처럼 매립될 운명이라니 참 기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서있는 이쪽 평지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산이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 여기도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면 한 때는 이곳이 숲이 우거진 산이었고 멋진 화석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수천 만 년 동안의 변화 과정을 말없이 기록해왔던 산...


마지막으로 남은 기록은 '인간에 의한 파괴와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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