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회복하지 못해도 괜찮다.
도피기제는 다양한 방어기제들 중 개인이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부인하거나 회피, 외면하기 위한 수단이다. 대표적인 도피기제로는 현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부인, 자신의 욕구·감정 등을 의식 수준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무의식에만 머물도록 하는 억압 등이 있다.
두산백과-'도피기제(Escape Mechanism)'
“나는 당신이 걱정됩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칼날 위를 걷고 있는 사람 같아 보여요.”
상담가에게 들은 내 첫인상이었다. 나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중이다. 한동안은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닐까, 꿈은 아닐까, 현실을 부인했다. 아직도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억압한다. 힘들어야만 하는 나를 외면하고 마음껏 울라고 안아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가짜 웃음이라도 지으며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도 알고 있다. 그게 내가 더 오래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는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고,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처음 ‘마음’을 담아 글을 썼고, 처음 타인에게 내 ‘마음’이 읽혔다. 듣기로는, 내 글은 ‘참 차분하게 읽히는 글’이었다. 심지어 내 안에 분노를 담아 아빠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읽어본 친구도 ‘글이 차분하네.’라고 했다. 나는 차분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왜 내 글은 차분할까, 내 마음은 격동하고 있는데, 왜 글은 그렇지 못할까. 마음을 외면하는 시선이 글에도 담기는 걸까. 결국 나는 뭘 쓰고 싶은 걸까.
글쓰기 첫 모임에서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회복’이라 답했으니, 아마도 회복에 대해 쓰려는 것이다. 듣기로는, ‘회복’은 하고 나면 끝나는 주제라 작가로 선정되기 쉽지 않고, 너무 광범위했다. 덕분에 집에 돌아와 주제에 대한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어 이어졌다. ‘회복을 어떤 시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시점마다 색깔로 나타내면 어떨까, 제주에서의 회복을 그림 그리듯 쓸 수 있을까?' 그러다 연결된 생각의 끝에서 친구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내 회복에 관심이 있을까?.. 그리고 회복이 끝나면, 내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까?”
“글쎄.. 이게 회복이 되는 일일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상실을 경험하잖아. 모양은 너랑 같지 않더라도, 충분히 너의 글에 공감할 거야.”
정작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까?’보다 ‘그래서 언제 회복이 끝나는데? 이제 그만하라고.’ 할까 봐 겁이 난다. 잔뜩 겁이 난 상태로, 마음을 잠그고 위험한 것이 없는지 주변을 확인한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보수하지 않고, 맞아야만 하는 비를 대비한다. 태풍을 그리려면, 실체를 알아야 하는데 나는 태풍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러니 빗속에서 물감과 붓을 들고, 비에 젖은 사람만 그리려고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는 도무지 어려운 태풍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서 끝이 없는데, 시작도 없다.
제주에 태풍이 왔다. 며칠째 비가 온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불난 데 부채질, 엎친 데 덮친 격인 사건을 겪고도 또 나는 외면하고 도망쳤다. 눈물이 나려고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보통 사람을 연기한다. 이 와중에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미쳤다고 할 일인데 최후의 도피처 같은 느낌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독립서점을 찾았다.
“어떤 책 찾으세요?”
“우울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우울도 종류가 많은데, 인간관계나 직장 어떤 부분에서 우울한 이야기일까요?”
“흠..”
아이가 아프다고 전화 오기 전까지 1시간.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면서 잠시. 보통 사람이 되었다. 비를 맞아도 난 그대로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가 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올 것 같은 비도 잠시 그쳤다. 돌아가는 길에는 잃어버린 우산도 필요가 없다. 다음날 비가 오더라도, 나는 비 맞은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난 고통을 느끼기는커녕 어떤 부분에서 우울한 건지 숨기기에 급급하니까.
가족들과 여행 중에 혼자 서점을 가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서점에 오면, 모든 복잡한 회로가 멈추고, 쌓인 책들과 커피, 보통 사람만이 남는다. 서점을 들러 읽을 책을 고르는 것도 재미이자 시간을 꽤 써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책 추천으로 시작된 서점 주인분의 이야기가 유익해서 책을 고르는 것보다 듣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해주시고는 서점에 있던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인데, 누구를 흉내 내고 있나요?”
“무엇을 쥐고 있어서, 내 삶이 없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삶은 누군가를 따라 하는 삶이 아니며, 스스로가 답을 찾아가는 삶이라는 것.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아무것도 아닌 무엇을 놓아버리고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인간이라는 직업’을 추천해 주셨다.
일상에서 감당하는 상처로부터 나타나는 싸움과 기쁨은 끊임없이 외친다. 다시 시작하라고, 노력을 계속하라고, 다시 행진하라고, 허약함 위에 뭔가 계속 쌓아 올리라고. 거듭거듭, 사람들은 그 상처가 극복되길 바란다. 사람들은 서두르고 싶고 어서 페이지를 넘겨 다음 장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상처는 다시 나타나 실존을 꿰뚫는다.... 그릇된 확신에 꽉 매달리고, 스스로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끝없는 전투가 일으키는 공포를 피하려 하리라.
인간이라는 직업 126p
책을 읽고, 다시 읽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전에, 답안지 해설을 먼저 읽어 본 기분이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이 이런 걸까? 내 마음속 정리되지 않았던 하나의 서랍을 꺼내 정리한 기분이다. 회복이 언제 끝나는지 조급해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제주에 맑은 날이 계속되니, 태풍도 보지 않고 끝없는 전투를 끝내고 싶었다. 나는 손에 회복을 쥐고 살았나 보다.
그,래,서. 지금부터의 문단은 글쓰기로 안 해본 걸, 아니 내 삶에서 한 번도 안 해본 걸 써보려고 한다. 어떤 것으로부터 회복인지 입을 닫고, 과거의 이야기만 늘어놓을지라도. 어색한 문장과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글밖에 못쓰더라도. 나는 나를 칭찬하고, 격려한다. 힘든 일이 계속 겹쳐도 글을 쓰려고 하는 것, 정리가 되지 않은 마음을 책을 통해 조금씩 들여다보는 것, 비가 와도 책방을 찾아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 모두 잘하고 있다고. 나로부터 시작해서 너를 돌보고, 우리를 회복시키는 길일 거라고. 아니, 끝내 회복되지 않아도,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