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May 21. 2023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할 뿐

역경은 의지를 단련시킨다 - 맹자

 지인 중에 한 분이 사주를 배우셨다. 사주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는데 흥미진진했다. 심심풀이로 나와 와이프의 사주도 봐주었다. 뭐 결과는 평범했다. 

 지인은 본인의 사주도 알려주었다. 


 “제 사주는 굴곡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높이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는 사주라고 해요. 처음에는 약간 실망했는데 사주선생님이 이런 사주가 제일 좋은 사주라고 하더라구요.”


 예전 20대였다면 이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정상에도 올라봐야지 내리막길을 갈 것이 걱정되어 올라가는 것을 무서워해서야 되겠는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십대가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런 평탄한 삶이 얼마나 얻기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평탄한 삶이 부러울 따름이다. 


 내 삶도 나름 평탄한 편이었다. 평범한 부모에 평범한 학창시절, 때에 맞추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정말 머릿속에 그린 평범이라는 말에 딱 맞을 삶을 살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독 회사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첫번째 직장에 들어가서 한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 문제는 리더가 바뀌면서 발생했다. 업무 스타일이 달랐던 리더가 나를 좋지 않게 보았고 결국 다른 그룹으로 쫓기 듯 옮겨가게 되었다. 

 이동한 그룹에서 나름 인정 받아서 이른 나이에 팀장도 되었다. 그럭저럭 버텨 나가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리더가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다. 리더와 업무 스타일이 다를뿐더러 내가 아직 팀장의 직무를 잘 해낼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았다. 내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주면 좋겠지만 회사라는 곳이 학교도 아니고 언제까지 기다려주겠는가? 결국 나는 팀장에서 좌천되어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첫번째 직장의 직종은 원래 내가 전공했던 화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내가 희망했던 연구 직무도 아닌 공장에서의 업무는 적성에 맞지도 않아 결국 이직을 하게 되었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은 원래부터 내가 다니고 싶어했던 곳이기에 업무적으로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여러 번의 부침을 겪었다. 프로젝트는 수시로 중단되었고 팀 자체가 와해되기도 했다. 특정 프로젝트에 소속되지 않은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느라 고생한 적도 있다. 

 가장 빛났던 때는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정식 팀으로 선정되었을 때였고, 가장 절망스러웠던 때는 그 프로젝트가 5년도 못 채우고 중단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로 아득한 느낌이 든다. CEO의 통보, 소주를 마시고 한밤중에 오피스에 들어와 울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고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필선고기심지, 노기근골, 아기체부, 궁핍기신, 행불란기소위, 소이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

- 맹자 (홍익출판사, 박경환 옮김, p355~356) (孟子, 告子 下)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쓰린 기억들이 그 뒤를 이은 바쁜 일들로 인해 쓸려나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슬퍼할 시간도 여유 있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빴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나고 보면 그때의 시련 덕분에 웬만한 시련에는 무덤덤해 질 수 있었다. 또 그때의 실패로부터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 연구 리더가 되어서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연구와 사업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연구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것이다. 회사의 연구과제는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얼마나 참신한지 세상을 놀라게 할 훌륭한 기술인지 보다는 자연스럽게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몰이해는 소통의 부재를 불러왔고 자연스레 프로젝트는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연구원이라면 괜찮겠지만 연구리더로서는 실격이었다. 

 지금은 사업부서와 소통할 때 왜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왜 이 문제를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늘어질까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경험은 바보들의 학교니까. 


 하늘이 나를 장차 크게 쓰기 위해 큰 시련 따위를 내리지는 않았다. 소소한 시련들이 돌부리처럼 나를 넘어지게 하고 상처 입힌 정도다. 아픔과 상처에 조금 절둑거리기는 하지만 못 일어날 정도도 못 걸을 정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에 돌부리를 만나면 피해가는 요령이 생겼고 또 넘어져도 툭툭 털고 금새 일어날 강단도 생겼다.  그러므로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 그것이 나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나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 Friedrich Nietzsch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