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Nov 05. 2023

공부는 머리가 좋아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난 어렸을 때 내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이런 착각을 하고 산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장남에 대한 기대가 컸고 어머니는 내가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했다. 그런 착각에 힘입어 초등학교에서는 꽤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다. 중학교에서도 어느 정도는 잘했기에 이런 착각이 이어질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내 반등수가 중학교 때의 전교등수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이런 착각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많았다. 난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내가 들어왔던 말이 똑똑하다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공부 잘함'은 '똑똑함'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믿음에 금이 간 것은 대학원에 다니면서다. 


 대학원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고 2인1실로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해야 했다. 

 내 첫번째 룸메이트는 저녁 11시에 실험을 마치고 들어와 새벽 1시~2시까지 기타를 치며 놀았다. 매일 같이. 그리고 시험 기간엔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도서관에서 살았다. 가끔 옷갈아입고 샤워하러 아침에 들어올 때를 빼놓고는 도서관 지박령이 되어 공부를 했다. 

 두번째 룸메이트도 늦게 들어오긴 마찬가지였다. 자주 술을 마시고 밤새 놀다 들어오기도 했다. 이 친구는 학회 기간이 되면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회 발표자료에 쓸 데이터가 모자라서 1~2주 동안 밤새 실험을 했다. 

 난 명문대 대학원에 다니는 석박사 학생들은 재지가 넘치는 천재들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실상은 체력 좋은 독종들의 모임이었다. 물론 이들 모두 자신의 연구 분야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영감이 번뜩이고 남들은 죽어도 따라가지 못할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 일명 천재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사람을 가끔 보기는 했다. 일례로 내 2년 후배 중 한 명은 거의 논문 제조기처럼 impact factor가 높은 논문을 찍어냈었다. 그냥 학생의 탈을 쓴 교수님이었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데 일머리도 있어 후다닥 실험을 하면 짜잔 하고 좋은 논문이 나오니 웬만한 교수님들 보다 나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실제 이 친구 덕분에 그의 지도교수님의 위상이 격상하기도 했다. 


 내 대학원 생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타고난 능력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머리 좋음, 천재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그냥 꾸준히 열심히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니 당신의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고 천재일 것이라 착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냥 뭔가를 끝까지 해내는 근성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도 사실 매우 매우 갖기 힘든 능력다.) 반대로 공부를 좀 못하더라도 꼭 머리가 나쁘거나 천재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천재성이라는 것이 학문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실재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팀의 팀원들을 보면 명문으로 이름 높은 대학의 석박사들이다. 이들이 공부를 잘했다는 것에 이의를 재기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현재도 높은 학습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천재들이냐고 한다면 글쎄요. 천재성은 둘째치고 일머리라도 좀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공부 잘하는 것과 일 잘하는 것의 상관관계도 가끔 의심스러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궁금하실 수 있겠다. 난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사방에 널린 독종들처럼 밤새서 공부할 수도 없다. 아니 보통 평범한 사람들 대비 더 체력이 안좋은 편이었다. 그럼 나의 생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앞서 말한 대로다 꾸준히 열심히 오랫동안 하는 것. 남들이 시험기간에 몰아서 할 것을 나는 시시때때로 꾸준히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이 밤새서 하는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것이 시험이든 실험이든 나는 그냥 아침부터 밤까지 꾸준히 했다. 그래서 겨우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나의 무기는 독함이 아니라 질리지 않는 끈기였다. 범재가 살아가는 방법이 뭐 특별한 것 있겠는가?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것뿐. 내가 중용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이다. 나 같은 범재도 할 수 있다고 토닥여 주지 않는가? 이전에 한번 인용한 적이 있지만 너무 좋아해서 한번 더 인용한다.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

남들이 한번에 해 낸다면 난 백번을 하고, 

남들이 열번에 해 낸다면 난 천번을 하여 해 낼 것이다. 

-      중용 20장 애공문정(哀公問政)

 

 조금 위안이 되었는가? 그렇길 바란다. 인간과 인간의 한계를 긍정하고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긍정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이과 남자의 감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