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가을 하늘이 너무 맑고 해가 쨍하다. 게으르기 짝이 없어 집밖을 나가는 일이 없는 집돌이도 코에 바람을 넣고 싶게 만드는 날씨다. 늦잠 자고 빈둥거리기 딱 좋은 일요일 아침에 차를 몰고 나간 이유다. 와이프가 전부터 가보자고 졸라대던 스타벅스 더 북한산.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차로 30분도 안걸리는 곳이지만 집돌이인 나는 굳이 커피마시러? 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것이다.
하늘도 햇살도 바람도 너무 좋은 가을날 일요일 아침, 8시 밖에 안됐는데 주차장은 만차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니 2층 곳곳에 빈자리기 보이지만 좋은 자리는 벌써 주인이 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마침 나가는 사람이 있어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문을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데 오호 여기 디저트 맛집이다. 다른 스타벅스에서는 못보던 다양한 디저트가 나를 유혹한다. 커피만 먹을 수는 없지. 커피와 디저트를 바리바리 싸들고 2층 창가에 가족들과 같이 앉아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책을 읽었다. 문득 바라본 창 밖으로 커다란 활엽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리듬에 맞춘 듯 흔들리는 나무가 아름다웠다. 꽃도 아닌 나무가 아름답다니. 뭔가 다른 표현을 찾고 싶지만 내 짧은 어휘력에서 마땅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더 정확히 그때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바람에 흔들리는 그 패턴이 너무나 황홀했다고나 할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때로는 햇볕을 반사하고 때로는 그늘지는 그 모습이 어떤 배경음악도 없이 춤을 추는 듯 느껴졌다. 그런데 “패턴”이라니. 뭔가 더 적당한 단어나 표현은 없는 걸까? 이 빈약한 단어들의 모음을 어쩌란 말인가?
마침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작가 유시민씨가 떠올랐다. 이분이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문과의 감성으로 표현했다면 좀 더 멋진 표현이 나오지 않았을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이다. 난 문과 남자가 과학을 공부하고 느낀 점과 자신이 알아낸 지식에 대해 풀어나가는 책이라 짐작하고 읽었는데 일부는 맞았지만 주 내용은 과학책을 읽으며 알아낸 지식을 인문지식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책에 가깝다. 그러니까 과학적 지식이 인문학적 지식을 얼만큼 더 폭넓고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그런데 문과라도 유시민 작가의 책은 조금 건조한 편이다. 실용적인 학문인 경제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논리적이고 간결하다. 그래서 내용전달은 잘 되지만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꾼은 아닌 듯 하다.
몇 년 전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유시민 작가와 김영하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여행 관련 책을 낸 적이 있다. TV를 워낙 재미있게 봤고 두 분의 입담에 반해있던 터라 둘 다 읽어 보았다. 책의 내용이 어떤지는 일단 떠나서 어느 책이 더 재미있었냐 묻는다면 김영하 작가의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똑같은 여행을 주제로 했지만 김영하 작가의 책은 내 친구가 여행 갔다와서 썰 푸는 느낌이라면 유시민 작가는 견문록 그러니까 독자에게 여행에서 얻은 지식과 느낌을 보고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에 약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한다. 말이라는 것이 지식 따위를 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우리는 함께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한다. 그 입담 좋은 유시민 작가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가와는 비교가 안되는구나. 그러니 흥미진진한 이야기 따위를 만들어본 적도 앞으로 할 계획도 없는 이과남자인 내 글이 재미있고 술술 읽히기는 영영 어려울 듯 하다.
내가 카페의 창 밖을 바라보며 느낀 그 감정이 문과남자 유시민 작가나 소설가 김영하작가 보다 작지 않을 진데 어찌 입 밖으로 뱉어지는 말이나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은 이다지도 멋이 없는지. 아니 어쩌면 느끼는 것도 다를지 모르겠다. 나뭇잎의 움직임에서 패턴 따위나 찾고 있으니 내 뇌는 이미 글러먹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표현이 서툴러도 느끼는 것이 다르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과 남자도 가을 하늘과 햇볕과 나무와 서늘한 공기에 감동을 받고 감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 그냥 조금 이런 감성에 모자란 사람 정도라고 생각해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