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냐는 질문은 보통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는 의미로 통한다. 대부분 이런 질문은 어린 시절 받기 마련이다. 다 큰 어른에게 “자네 꿈이 뭔가?”라고 묻는다면 뭔가 이상하다. 맥락상 “넌 도대체 뭔 생각으로 사는 거니?”라는 냉소적 의미로 들릴 수도 있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고 묻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다 큰 어른에게 “너 무슨 직업을 갖고 싶어?”라고 묻는 것은 좀 이상할 테니까.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나는 자신 있게 “제 꿈은 의사 입니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피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심함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 이미 그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이후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내 나이 또래가 어린 시절 갖는 가장 흔한 꿈인 대통령도 의사도 판사도 과학자도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렇게 흘러 흘러 어쩌다 보니 남들처럼 취직해서 연구직으로 먹고 살고 있다.
큰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물어봤다. “넌 꿈이 뭐야?” 큰 아들은 작가, 작은아들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큰아들은 밥벌이가 쉽지 않은 직업을 갖고자 하니 걱정 작은 아들은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으니 걱정 이래저래 걱정이다.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루기 힘들어 걱정, 꿈을 이뤄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 할 까봐 걱정이고, 꿈이 없으면 도대체 뭐를 하고 살아갈지 막막하기 이를데 없으니 또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부모의 쓸데 없는 걱정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뭔가 되고 싶은 것이 없었어도 그럭저럭 잘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쓸데 없는 걱정 같기도 하다.
꿈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꿈이 있다고 꼭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꿈이 없으면 또 어떤가? 없다는 것은 무한한 것과 통한다. 딱히 없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 좋다. 무수한 선택지 중 내키는 대로 가도 되고 안되어도 큰 미련이 없을 테니 (꿈이 아닌데 뭔 미련이 있겠는가?)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아! 이 길은 여기에 연결되어 있구나. 재미있었어. 하지만 내 길은 아닌 것 같아.”
안녕을 고하고 전혀 다른 길을 가도 되고 그 길에 연결된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이중 절반은 전공과 연관 있는 일을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미 20년 넘게 그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쪽 전문가가 되었다. 그냥 흘러가도 걱정한 것처럼 삶이 엉망진창이 되지는 않는 듯 하다.
꿈을 가졌지만 안 이루어진 경우는 조금 힘들 수 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면 더더욱. 그러나 무언가를 직업으로 생각할 정도의 나이 즉 스스로 밥벌이를 걱정할 나이면 대부분 이미 어른이다. 그럼 좀 더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나와 내 꿈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꿈이 야구선수나 화가라면 재능이 없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나 예술의 영역은 재능이 어느 정도 필요한 분야니까. 내 재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둘 중 하나다. 포기하거나 그래도 가거나. 어느 선택을 해도 괴롭지 않으면 된다. 포기해서 괴로울 것이면 취미로라도 하면 된다. 계속 하는 것이 괴롭다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닐 것이다.
나이 오십이 되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 꿈은 뭐였지?” 그 꿈이 없어서 불안한 나날을 보냈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고민도 많았는데 이제 많은 시간 지나고 보니 꿈이 없었어도 구체적이지 않아도 그리 불안할 필요는 없었던 듯 하다. 어쩌면 그 불안을 버티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면역이 생겨 그럴 수도 있다.
나이든 지금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냉소적, 비꼼 등등은 아니다.)
“너 꿈이 뭐야?”
이건 아마도 이렇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인생 무엇을 위해 살고 싶어?”
글쎄 내 꿈이 뭘까? 우습게도 내 어린 시절 그렇게 고민해도 찾을 수 없던 꿈이 지금은 너무나도 많아서 걱정이다.
기타를 배워 연주회 한번 해보고 싶다. 베이킹을 배워서 근사한 베이커리를 차려보고 싶다. 내 이름을 딴 양조장을 하나 운영하며 유니크한 전통주도 빚어보고 싶다. 펜화나 수채화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을 더 멋지게 찍고 싶고 책도 몇 권 내고 싶다. 여행을 좋아하니 2~3년 여행을 하고 책하나 내는 거다. 하나하나 나를 설레게 한다. 점점 게을러져 가고 쉽게 지쳐가서 죽기 전에 다 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작해 보고 싶다.
가슴이 설렐 때 시작해야겠다. 손발이 떨리면 못할 일이 태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