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도구를 배우는 것에서 그리는 것으로 익숙해질 시기 즈음
지난 글의 연재 이후 글을 오래 쉬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며 몰두하던 여름이 지나고,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쉼'이 필요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모든 열정을 담았던 것들을 잠시 내려두었다.
그래서 글조차 쉬어 버렸나 보다.
하지만,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었다.
그림 도구에 익숙해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 시간에 익숙해지니, 그림은 좀 더 좋아졌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렸던 그림을 오랜만에 꺼내 들어..
이상한 나라 엘리스를 그릴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디즈니 만화에서 봤던 모습으로 그려야 할지, 아니면 원화의 모티브를 가지고 그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스케치는 쓱쓱 금방 그렸지만, 고양이는 한 다섯 번 정도 다시 그렸다.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구성을 했던 그림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그래서 이 그림은 내 휴대용 태블릿의 잠금화면으로 쓰고 있다.
그 이후로 동물의 털을 그리는 기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뭔가 어둡고 조폭처럼 그렸었는데, 선생님이 눈을 좀 더 크게 그려보면 귀여워질 것 같다고 해서 눈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주둥이는 좀 작게 그렸더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라면 봉지에서 막 튀어나오는 느낌으로 그려 봤다.
이 작품은 그려서 함께 그림을 배우던 동기분들께 보여줬을 때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그렸던 작품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작업이다.
캘리그래피와 그림이 주는 질감을 표현해 보려 했는데, 쉽지가 않더라.
결국에는 배경에 좀 더 치중하다가 시간에 쫓겨서, 사람이 좀 어색하게 그려져 버렸다.
캘리그래피가 주제라서, 캘리그래피에 집중하다 보니 균형이 약간 깨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만족하며 마무리했다. 이것이 내가 그림 수업을 통해 함께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림 수업에서 나만 남자였지만,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뭐랄까, 서로가 서로의 아바타처럼 비슷한 성격과 꿈이 있었고, 그리고 분위기가 있었다. 선생님 조차 그랬기에 더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그림을 배우고, 또 그렸다.
비록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같은 열정과 즐거움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팬을 잡는 시간도 확실히 줄긴 했다. 바쁘다, 지쳤다, 지금 더 중요한 게 있다는 핑계를 대 가면서 결국 그때보다 더 뒤로 물러서고 있다.
당연하게도 열정은, 상황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꾸준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