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팰럿Pallet Aug 13. 2018

운과 노력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정확히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도 1학년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어떤 논술 쓰기 대회가 있었고, 참여자가 생각처럼 많지 않았는지 그 논술 주제에 맞게 급하게 글을 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난 생각나는 대로 그냥 줄줄 써서 글을 냈는데, 말도 안 되게 그것이 우리 구 전체 중학교의 논술에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웠는데, 그 일로 학교 신문과 교지에 내 논술이 실렸고, 그 덕에 아마 나는 학교 편집부 위원으로 발탁도 된 것 같다.

운은 거기까지 였다.

책을 많이 읽은 것도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던 내가, 한 번의 입선으로 인해 '착각'에 빠졌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착각'.

하지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내 편집부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문장력이나 표현력이 부족함을 깨닫게 된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책을 많이 읽고, 사춘기 시절의 소년들이 흔히 하는 멋져 보일만한 생각을 머리에 채우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잠깐의 노력 아닌 노력에 대해 확인받고자,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가을에 있었던 시화전에 두 편의 시를 적어서 내었는데, 한 편은 내가 가진 감정과 생각들을 고민하고 고민하여 담았던 시였고, 다른 한 편은 오래된 학교 문집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시를 일부 인용하여 작성한 표절 시였다. 

결과는 여지를 두지 않았다. 표절 시를 나에게 건네며, 이걸로 시화전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국어 선생님의 말씀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 시는 내 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제출하지 않고 포기했다.

난 그 이후에 어떤 대회에도 입선하지 못하였다. 

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운'이 있었다.

'운'이 있고 난 뒤에 노력을 했다면, 아마 그때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으로 돌아와 보면,

가끔 치기 어렸던 십 대의 착각에 빠져 있는 경우를 목격한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일상을 보낸다고 해서 성장하는 게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흘려보내는 시간은 사람을 노화시킨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할 때는 살이 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